'인간실격'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
[조소영 기자]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인간실격>, p.13, 민음사
▲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민음사 출판 |
ⓒ 민음사 출판그룹 |
이 책은 이해할 수 없지만 계속 읽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수기의 주인공인 요조가 매우 솔직한 인물이라는 점. 자신의 나약함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어 많은 독자의 공감을 산다는 점이 이 책의 인기 비결일 것이다. <인간실격>은 온라인 서점 사이트의 고전부문에서 10위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항상 순위를 다투고 있는 책이다.
인간실격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의 소설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 허구처럼 담아내기도 한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등이 그 예시이다. 그래서 독자들이 허구 속 진실에 더욱 빠져들어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고리대금 업자인 부유한 아버지를 두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로 부를 축적하며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자신의 집안이 몹시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좌익운동에 가담하며 자신의 집을 좌익운동의 본거지로 삼기도 했다.
그는 평생 다섯번의 자살시도를 했고 마지막 자살시도로 목숨을 끊는 데 성공한다. 작품 속의 '요조'라는 인물 역시 세 번의 자살시도를 하고 약에 중독되어 정신병동에 입원하기도 한다. 요조는 작가가 자신의 삶을 투영한 인물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라는 존재를 알 수가 없어졌고, 저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웃 사람하고 거의 대화를 못 나눕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 p.17
첫번째 수기에서 주인공 '요조'는 먹고 사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괴로움에 공감하지 못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민과 그들을 지키기 위한 처세술과. 스스로를 진심으로 드러내지 않고도 아무 탈이 없는 관계들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요조는 항상 궁금해 한다. '사람들은 저것으로 괜찮은 걸까?', '저것으로 충분한 걸까?', '나만 이런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 괴로워 하는 것인가?'
요조는 자신의 음울한 면모를 감추기 위해 익살이라는 가면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때로 익살이 가짜라는 것이 들통날 때마다 자신의 정체를 들키게 될까 괴로워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정현종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나는 이 시가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음과 동시에 단절되고 싶은 욕망'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섬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지만 섬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요조는 섬에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을 간직한다. 하지만 그 욕망이 쉽게 좌절되리라는 것 또한 모두가 자각하고 있다. 이 사실을 자각했을 때 오는 고독함과 외로움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요조의 독백은 이 마음에 함께 공감해준다.
고난에도 힘없이 휩쓸려가고마는 인간의 나약함을 그대로 보여주며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음에도 그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견디고 버텨내는 요조를 보며 독자들은 위로를 얻는다. 주인공을 향한 연민이 나아가 독자의 삶에 대한 연민과 응원으로 전환된다.
"그나저나 네 난봉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複數)일까요.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것이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도 여태껏 살아왔습니다.
(중략)
그 때 이후로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하는 생각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중략)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라며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의 환영에 겁먹는 데서 다소 해방되어 예전만큼 이것저것 한도 끝도 없이 신경 쓰는 일은 그만두고...(후략)
-p.96
요조는 자신을 끝없이 공포로 몰아넣었던 '세상'과 '인간'이라는 넓고 실체 없는 개념이 '개개인'을 의미하고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세상이 널 용서하지 않을거야'라는 호리키의 말에 그는 속으로 '그건 네가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미 아니야?'라며 반문한다. 이 부분에서 요조가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실체 없는 개념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즉, 아버지, 맏형, 친구 호리키, 아내 요시코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조에게 인간의 자격을 갖춘 인간은 '세상을 무리 없이 살아가는 보통의 인간'. 즉, 진심을 다하지 않는 인간관계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며 세상의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넘길 수 있는 부끄러움 없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자신은 평생을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왔다고 했으므로 요조는 스스로를 인간의 자격이 없는 인간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비합법 활동을 하고 여성들과 문란한 관계를 갖던 친구 호리키가 번듯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나,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음에도 큰 문제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요시코와, 요조의 문제를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아버지 등. 매번 자신의 사소한 치부들을 가벼운 것으로 넘기지 못하고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순수한 요조에게는 닿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요조를 정신병동에 입원시켰을 때 요조가 자신이 인간으로서 자격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요조가 보통의 삶조차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나약한 인간이라는 선고를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요조는 매번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 그들과 요조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게 된다. 평생을 닿아보려고 애썼던 '보통의 인간의 삶'에 대한 노력이 완전히 좌절되는 순간이다.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고 말하는 요조는 사실 누구보다 인간다운 인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부끄러움을 알고, 자신의 치부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그는 언제나 노력했다. 작가는 스스로를 '인간실격'이라며 자조하는 동시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싶었던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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