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표적된 코인]②법망 피하는 가상화폐 사기꾼들...피해자들은 속수무책
재물 아닌 물건으로 봐 단죄 어려워
"가상자산법에 단죄 명확히 규정해야"
"곧 OOO 거래소 상장됩니다." 가상화폐 열풍이 불던 2020년 말, A씨(50)는 지인을 통해 'ㅂ코인' 수천만원치를 사들였다. 지인은 ㅂ코인이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 상장을 앞두고 있고 상장하는 순간 시세가 뛸 것이라고 했다. A씨는 비상장주식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투자했다. 하지만 ㅂ코인은 1년 가까이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았고 A씨는 지인에게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지인은 "나 역시 돈을 잃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A씨는 재단이 문제라고 생각해 사기죄로 고소하려 했지만 변호사들은 손사래쳤다. ㅂ코인을 발행하던 초기부터 기망할 의도가 없었다면 사기죄 적용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다들 가상화폐가 미래 먹거리이자 주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투자했지, 사기를 당할 줄 몰랐다"며 "한국 땅에서는 사기꾼 처벌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18일 경찰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가상화폐 사기는 전형적인 다단계 사기 형식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화폐를 발행한 재단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지인을 통해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투자자들을 모집한 사람들은 재단으로부터 보상을 받았다. 새로운 투자자를 데려오면 투자금의 10%를 수수료로 지급하거나 다단계의 최상위에 오르면 시계나 비트코인을 지급한다는 업체도 존재했다. 경찰 관계자는 "억 단위 가상화폐 사기 피해자도 많지만 수천만원, 수백만원 등 비교적 소액인 피해자들이 대다수"라며 "투자할 만한 여력이 없더라도 돈을 긁어모아 지인을 통해 투자하는 전형적인 다단계 형식을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상화폐를 통한 다단계 사기는 죗값을 물기 힘들다. 형법 제347조에 따르면 사람을 기망해 재산상 이익을 취할 경우 사기죄 처벌을 받게 되는데, 가상화폐 사업 내용을 설명한 백서를 만드는 등 관련 사업 계획을 이행하고 있거나 사업을 확약하지 않는다면 기망에 해당하지 않는다.
지난 1월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재판장 강규태)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사기 등 혐의를 받은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의장은 2018년 10월 김병건 BK메디컬그룹 회장에게 공동경영을 제안하며 빗썸코인을 발행해 상장시키겠다며 계약금 명목으로 1120억원가량을 받았다. 하지만 빗썸코인은 상장되지 않았고 김 회장은 잔금을 못 내 공동경영도 무산됐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전 의장이 코인 상장을 확약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면서 "계약서에 상장을 확약한다는 내용도 없고 김 회장는 주식투자 및 가상화폐 업계 관련 경력이 상당하고 관련 지식도 갖추고 있어 이 전 회장 말만 신뢰해 착오에 빠질 정도는 아니다"고 밝혔다.
가상화폐를 재물이 아닌 물건으로 본다는 점도 단죄를 어렵게 한다. 지난 2월27일 서울중앙지검 공판3부(부장검사 이정렬)는 가상화폐 전문가 B씨(43)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를 제기했다. B씨는 사업 인수 실패한 피해자에게 투자금 해결해주겠다며 가상화폐 14억1400만원치를 가로채고 채무변제에 사용했지만 재판부는 횡령으로 보지 않았다. 판례에 따르면 가상화폐는 형법상 횡령 대상인 재물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사기 피해자는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2년 1~11월 동안 특경법상 사기 위반 건수는 2733건이다. 2019년 2436건, 2020년 2572건에서 2021년 2073건으로 주춤했지만 다시 사기 피해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가상화폐 사기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단죄하기 위해 사기죄뿐만 아니라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전자상거래법 등 여러 법리를 찾는다"며 "결국 알맞는 법리를 찾지 못해 소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가칭)에 가상화폐 관련 사기를 단죄할 수 있는 명확한 규정이 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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