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미래]널빤지 같던 ‘성냥갑 아파트’ 사라진다…바뀌는 도시의 얼굴

류태민 2023. 4.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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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는 대부분 단조롭고 비슷하게 생겨서 미관상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유럽처럼 건물 외관이 잘 꾸며진 외국 도시들을 볼 때마다 부럽죠." (서울시민 유호연(31) 씨)

서울 한복판에 우뚝 솟은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 전망대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도심 내에 자리 잡은 아파트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수백 동의 아파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판상형 구조를 가진 ‘성냥갑 아파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유 씨는 "개성 없는 서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아쉬움이 느껴진다"면서 "앞으로는 특색 있는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계 도시 중 7위에 오른 서울의 종합경쟁력 순위와는 달리 그동안 도심 아파트는 여전히 ‘닭장’이라는 굴욕적 평가를 받을 만큼 미학적 요소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이제 서울의 얼굴이 달라질 채비를 갖추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성냥갑 모양 도시 외관을 바꾸기 위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일명 ‘성냥갑 아파트 퇴출 2.0’을 추진하기로 했다. 2007년 8월 오 시장이 재임 시절 선보였던 ‘성냥갑 아파트 퇴출’ 정책이 다시 시동을 거는 것이다.

그는 차별화한 디자인을 적용하는 건물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당근 정책’을 통해 서울의 디자인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그동안 서울에 세계적 명소가 되는 건축물을 짓는 데 걸림돌로 작용해온 고도 제한·용적률 상한 등 규제는 대폭 완화한다. 세계 주요 도시들은 혁신적 디자인 건축물을 지역 명소화하고 있지만, 서울은 그동안 규제와 복잡한 심의 과정으로 혁신 디자인 건축물이 들어서는 데 제약이 있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2월 오 시장은 서울시청에서 열린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 방안’ 기자설명회에서 "그동안 서울은 ‘엄근진(엄격·근엄·진지)’ 도시였다면, 앞으로는 매력적이고 즐거운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디자인 혁신 방안"이라며 "아름다운 한강과 산이 있고 매력적인 건축물이 어우러진 도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도시를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에서 바라본 아파트 일대 전경. [사진=류태민 기자]

디자인 혁신으로 도시의 얼굴을 확 바꾼다

먼저 획일화된 ‘성냥갑 아파트’와 ‘사각형 회색 빌딩’ 건설을 막기 위해 디자인 특화 건축물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해 건축 디자인을 개선한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 특화 디자인 설계를 도입하면 용적률 상한을 1.2배까지 늘려준다. 예컨대 새로운 아파트 1000가구가 들어설 지역에 1200가구까지 늘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종 일반주거지역 아파트도 특화된 디자인으로 재건축할 경우 용적률 상한이 300%에서 360%까지 늘어난다.

여러 심사 단계에서 디자인이 변경·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도시·건축·교통·환경 평가를 통합 심의한다. 디자인을 최우선시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오 시장은 “그동안 복잡한 심의 과정에서 디자인이 당초 그린 것과 다르게 왜곡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다”면서 “용을 그렸는데 뱀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디자인 콘셉트가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 시장은 통합심의를 통하면 의사결정 속도를 높여 신속한 건축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인센티브는 디자인의 예술성과 공공성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위원회를 통해 결정된다. 예컨대 아파트의 경우 동 형태가 반복되지 않는 다양한 외관이나 2~3개 층 복층 설계, 3m 높이의 층고 등이 가이드라인 예시로 꼽혔다. 오 시장은 “아름답다는 느낌은 주관적이지만 결국은 사람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최대한 객관성을 담보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겠다”고 설명했다.

건축에 대한 인식 변화에도 나선다. 세계적인 건축가로 심사위원을 구성해 ‘서울시 건축상’을 내실화한다. 수상자에게는 설계공모전에 참여할 때 가산점을 부여할 계획이다.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를 통해서도 건축 문화의 저변을 확대한다.

▲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렉스아파트를 1대1 재건축한 래미안 첼리투스

다채로운 스카이라인 도입…‘제2의 첼리투스·트리마제’ 나올까

한강 변에 조화로운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도시 경관을 향상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경관, 조망, 한강 접근성, 저층부 개방, 입면 특화, 수변특화 디자인 설계 등 특화 디자인을 설계할 경우 고도 제한에서 제외해 건립을 허용한다. 아파트 최고 층수의 경우 35층 이하, 한강 변 인근은 15층 이하로 제한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디자인 조건만 충족한다면 높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이를 통해 ‘제2의 첼리투스, 트리마제’ 등의 초고층 아파트가 건립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각각 56층, 47층 높이인 용산구 래미안 첼리투스와 성동구 트리마제는 강북 한강 변 스카이라인을 바꾼 대표 건물로 통한다. 획일화된 성냥갑 구조 대신 시원하게 뻗은 현대적인 건축물이 한강 변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이들 단지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9년 과거 재임 시절 부지 25% 이상을 기부채납하는 정비사업에 대해 최고 50층까지 건립할 수 있도록 한강 변 전략정비구역의 층수 규제를 완화해주면서 탄생할 수 있었다. 오 시장이 내걸었던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 등의 미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지로 꼽힌다.

대신 한강 접근성을 높이는 보행교 등 시설물을 공공기여로 받는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최고 65층, 2500가구로 짓는 대신 문화공원을 공공기여로 받는 게 대표적이다. 원효대교 진입 램프와 차도로 접근이 어려웠던 한강으로의 연결성을 강화하기 위해 문화공원과 한강공원을 연결하는 입체 보행교도 신설한다.

서울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도 도시 디자인 사업에 나섰다.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도 획일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확보해 설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김헌동 SH공사 사장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도 성냥갑 아파트처럼 짓지 않고 100년 이상 사용 가능하고 판매용 분양 주택과 똑같이 지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첫 번째 토지임대부 주택으로 최근 사전분양을 진행한 고덕강일3단지의 경우 최고층수를 7~29층으로 다양화한다는 방침이다. 한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스카이라인의 변화에 발맞춘 것이다. 건물 외관 역시 박스 형태의 획일적 건축물을 지양한다는 것이 SH공사 측의 설명이다.

'세계적 명소' 서울에 만든다…첫 시범 사업지가 된 노들섬

서울시는 첫 시범 사업지로 '노들섬'을 선정하고 추후 공공분야뿐만 아니라 민간, 주거 분야에서도 다양한 디자인의 건축물이 세워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노들섬 사업은 이미 기획 디자인 공모 절차가 진행 중이다. 세계적으로 검증된 국내외 건축가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디자인 공모 경쟁을 벌이고 있다. 토머스 헤더윅(영국), 위르겐 마이어(독일), 김찬중(한국), 나은중·유소래(한국), 신승수(한국), 강예린(한국) 등 국내외 건축가들이 참여 중이다. 올해 안에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투자심사 등 절차를 밟는다.

이처럼 서울시가 디자인 혁신에 무게를 실은 것은 해외 도시들이 디자인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네덜란드 로테르담은 연간 관광객이 약 1000만명, 관광 수입이 8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현대건축의 전시장으로 불리는 로테르담은 전통시장과 공동주택을 독특한 건물 안에 모아놓은 ‘마켓 홀’과 부교 위에 모듈식 목재 건물을 만든 ‘폴’ 등의 개성 넘치는 건축물을 자랑하고 있다.

이밖에 서울시는 제2세종문화회관, 성동구치소, 수서역 공영주차장 복합개발 사업을 공공 분야 디자인 혁신 시범사업으로 추진한다. 민간 분야에 대해서도 올해 상반기 중에 시범사업 대상지 공모를 받는다. 선정된 시범 사업지에 대해선 용적률, 건폐율을 대폭 풀어줄 계획이다.

류태민 기자 righ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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