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02시간 과로… 청년 의료인 “기피과 이유 있다”

김은빈 2023. 4. 18.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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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근무시간 ‘주 80시간’… 하루 16여시간 노동하는 전공의
전문가들 “주 60시간 근무, 심근경색 발생 4.5배 높여”
전공의협의회, 연속근무 24시간 제한 등 요구
사진=박효상 기자

고사 위기에 처한 필수의료 과목인 흉부외과 전공의(레지던트) 근무시간은 주 평균 102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 개편안으로 내놓은 ‘주 최대 69시간제’도 지탄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필수의료과 전공의들은 과로사 인정기준보다 장시간 근무를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젊은 의사들은 필수의료 과목 기피현상에는 이유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과도한 업무와 과로를 사실상 눈감아주고 있는 현행 제도 때문이다. 전공의의 법정 근무시간은 지켜지지 않고 있고, 이를 어겨도 제재가 가볍다. 특히 전공의의 장시간 연속근무는 환자의 안전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전공의의 근로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용기내야 겨우 필수의료과 지원… 희생 강요 어려워”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2030 전공의 간담회: MZ세대 보건의료인력 근무환경 개선’ 토론회에서 “전공의 대부분이 사실 과로사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실시한 ‘2022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전공의의 일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77.7시간이었다. 전공의의 52%는 4주 평균 80시간 초과 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목별로 보면 △흉부외과가 102.1시간으로 근무시간이 가장 길었다. △외과 90.6시간 △신경외과 90시간 △안과 89.1시간 △인턴 87.8시간 △정형외과 86.8시간 △산부인과 84.7시간으로, 필수의료 과목에서 80시간 초과 근무 사례가 특히 많았다.

흉부외과 전공의들의 주 평균 근무시간인 102시간은 주 5일일 경우 하루 20.4시간, 주 6일이어도 17시간 근무에 해당한다. 고용노동부의 과로사 인정기준은 4주 동안 주 평균 64시간 또는 12주 동안 주 평균 60시간이다. 전공의들은 과로사 인정기준을 훌쩍 넘는 수준의 근로를 해내야 하는 환경에 놓인 것이다.

현행법상 전공의 근무시간인 ‘4주 평균 주 80시간’도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강 회장은 “(법정 근무기준인) 주 80시간조차 적용을 받지 않고 있다”며 “향후 전공의 과로사와 정신건강 문제 예방을 위해 근로시간 단축이 단계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특히 필수 중증 의료 과목에 해당하는 분야 전공의들이 24시간 초과 연속 근무를 더 많이 하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열악한 근무환경은 전공의들이 지원을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필수의료 진료과목인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의 인력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전공의 충원율은 평균 77%에 그쳤다. 

한석문 젊은의사협의체 보건정책위원회 위원(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임상강사)도 “저도 많은 내적 갈등을 겪다가 용기를 내서 필수의료과인 순환기내과에 지원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젊은 세대 의사들이 과연 용기를 낼 수 있을지, 혹은 개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필수의료과에 지원하라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전공의의 업무 부담이 과중될수록 필수의료 분야 위기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재근·정춘숙 민주당 의원과 대한전공의협의회, 젊은의사협의체, 민주당 보건의료특별위원회와 함께 17일 국회에서 ‘2030 전공의 간담회: MZ세대 보건의료인력 근무환경 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은빈 기자

주 69시간도 많은데… ‘주 80시간’ 전공의 특별법 손봐야

청년 의료인들은 전공의의 법정 근무시간 조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공의들의 과로를 막기 위해 지난 2017년 시행된 ‘전공의 특별법’이 정한 주 80시간까지의 근로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주 80시간은 5일 근무일 경우 하루 16시간, 6일 근무여도 하루 13.3시간 근무에 해당한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주당 최대 69시간)과 비교해도 훨씬 길다. 전문가들은 주 80시간 근무시간이 전공의들의 건강권을 헤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형렬 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노동하는 의사가 갖는 건강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전공의 수련생으로서의 지위, 경영상 어려움 등을 이유로 근로자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이어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 이상 되는 경우 40~50시간 노동하는 사람에 비해 심근경색 발생 비율이 4.5배가량 높고, 노동시간이 길수록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전제로 전공의법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의 안전에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개선 필요성이 크다는 의견도 있었다. 진료 수행 중 환자 위해 사건이 발생했지만, 중재를 통해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덮인 경우를 경험한 전공의가 71.5%에 달한다. 이 같은 수치는 연차가 올라갈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인턴의 약 11.7%, 레지던트 1년차 약 16.9%가 진료행위로 인해 환자 위해 사건이 발생한 경우가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운영위원인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장은 “노동시간이 더 긴 저연차나 인턴에서 환자 위해사건 경험 비율이 높았다”면서 “전공의의 장시간 노동은 전공의 스스로에게, 또 환자들에게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환자 안전 확보와 필수의료 분야 근무여건 개선을 위해 ‘전공의 과로방지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근로기준법 특례업종 폐지를 통해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 80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단계적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전공의 과로방지법은 현재 최대 36시간(응급상황 시 40시간)으로 설정된 전공의 연속 수련시간을 24시간(응급상황 시 30시간)으로 낮추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함께 △36시간 연속근무 제도 개선 △급여 인상 및 포괄임금제 폐지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 근무 시 수당 지급 및 수련환경 보호 등 보호장치 마련 △전공의 1인당 환자 수 15명 내외 제한 △수련병원 내 전문의 수 확대 △상급종합병원 외래 진료 축소 등을 요구했다. 

전공의 특별법의 벌칙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석문 위원은 “여러 수련병원에서 마치 휴게시간을 준 것처럼 보고하는 사례 등이 많다”며 “전공의특별법의 벌칙규정이 벌금 500만원 정도로 낮다. 벌칙규정을 강화해 전공의법을 준수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상걸 경북대 외과 교수는 “전공의가 힘들다는 문제를 넘어 현재 한국 의료가 붕괴하기 직전”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돈을 쓰지 않고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나. 낮은 필수의료 수가가 높아지면 병원 경영에 여유가 생기고 자연스레 전공의의 수련환경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부도 전공의 근로 환경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기욱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 사무관은 “복지부는 다양한 회의체 등을 통해 현장 의견을 수렴하고 수련 교육을 내실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정책적으로 검토해 개선 방안을 내놓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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