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준 103조원 떼일 판…시진핑 일대일로, 中경제까지 타격

이승호 2023. 4. 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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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9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환영 행사에서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과정에서 개발도상국들에 내 준 빚 중 회수가 어려운 악성대출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대일로로 인해 많은 개발도상국이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부채의 덫(Debt Trap)’ 비판을 의식한 중국 정부가 빚 회수에 소극적으로 임하며 나타난 현상이지만, 악성대출 급증은 중국 은행의 재정 악화 등 중국 경제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컨설팅회사 로디움그룹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올해 3월까지 일대일로 프로젝트 과정에서 중국이 세계 각국에 도로·철도·항만·공항 및 기타 기초 사회기반시설(인프라) 건설을 위해 제공한 부채 중 785억달러(약 103조원)가 탕감되거나 재협상을 통해 상환 기간을 연장했다. 이는 지난 2017부터 2019년 말까지 3년 동안 탕감·재협상이 이뤄진 부채(약 170억 달러)의 4배가 넘는 규모다.

지난해 8월 중국이 제작한 고속철도 열차 차량이 산둥성 칭다오항에서 선적되고 있다. 이 차량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에서 운행될 예정이다.인도네시아 고속철 사업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가운데 하나다. 신화=연합뉴스

일대일로는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인프라를 짓거나 자본을 투자해 경제·외교 관계를 강화해 온 정책이다. 육상 실크로드(중앙아시아~유럽)와 해상 실크로드(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유럽~남미)를 건설해 해당 국가들과 중국과의 경제 공동체를 표방해 왔다.

지난 2013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지시로 시작돼 올해로 출범 10주년을 맞은 일대일로에 중국은 약 1조 달러를 쏟아부었다. 중국 푸단대 녹색금융개발센터의 ‘2022 일대일로 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에 투입한 금액은 총 9620억 달러(약 1240조 원)다. 다만 공짜는 아니다. 중국은 일대일로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융자를 제공하는 형식으로 인프라를 짓고 자본을 투자했다.


OECD “117개국, 일대일로로 경제 위기”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일대일로 사업에서 중국이 회수하기 어려운 악성대출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은 중국 정부가 개발 도상국에 빚을 갚으라고 강요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과 개발도상국들은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부채의 덫’을 놨다고 비판하고 있다. 중국의 자금을 지원받은 개발도상국 상당수가 불어난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국가부도 위기에 처해 있어서다. 애초에 진 빚도 많은데 지난해 발생한 미국발 금리인상으로 중국에 진 빚의 규모는 더 커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 약 150개국 중 117개 나라(중국 포함)가 일대일로 사업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등 서방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등은 중국이 부채 탕감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위기를 막아야 한다고 압박해왔다.

이에 중국도 최근 들어 개발도상국 부채 해결에 역할을 하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IMF·WB 춘계총회에서 논의된 잠비아와 가나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가채무 재조정에 동참 의사를 보였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동안 서방의 요구에도 개발도상국 부채 해결에 의지가 없었던 중국 정부가 입장 변화를 시사한 것”이라며 “중국이 부채 탕감에 나설 경우 개도국 부채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IMF만큼 구제금융해 달러 패권 도전


지난 10일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는 IMF·WB 춘계총회에 참석중인 이강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지15일 미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은 부채 탕감에서 그치지 않고 빚더미에 오른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구제금융을 해주는 ‘큰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미국 윌리엄앤드메리 대학 에이드데이터(AidData) 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이 지난 2000~2021년까지 22개 채무국에 총 2400억 달러(약 311조원)의 구제금융을 벌였는데, 특히 최근인 2019~2021년에 1040억 달러(약 135조원)가 집중됐다.

중국의 긴급 구제금융 대출은 2010년만 해도 제공액이 전혀 없었지만, 2021년 한해에만 405억달러로 같은해 IMF의 구제금융 대출(686억달러) 규모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NYT는 “구제금융과 일대일로 등을 통해 중국은 이미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 됐다”며 “중국은 구제금융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자신들을 미국과 IMF를 대체하는 ‘최후의 대부자’로 각인시키고 위안화 대출로 달러 패권을 제한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개도국 빚더미, 중국 경제에 큰 걸림돌


2018년 콩고공화국 수도 브라자빌에 지어진 대형 종합운동장의 모습.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차원에서 지어졌다. 신화=연합뉴스
하지만 중국의 움직임엔 한계도 크다. 중국은 IMF나 미국보다 훨씬 높은 금리로 개발도상국에 돈을 빌려주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일괄 적용하는 해외 채권 금리는 5%로, IMF의 장기채권 금리(2.5%)나 미국의 단기채권 금리(1%)보다 이자 부담이 크다.

늘어나는 개발도상국 빚은 중국 경제에도 부담이다. FT는 “악성대출 급증은 중국은행의 재정에 타격을 주며 중국 금융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NYT는 “중국은 여전히 부동산 부실대출 등으로 인한 국내 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며 “개발도상국의 부채 탕감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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