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육군호텔 이름 뭐길래…"韓·호주 FTA냐" 조롱 쏟아졌다
육군이 최근 새로 문을 연 육군호텔을 놓고 정작 주인인 육군이 소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억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만든 이름에선 육군의 정체성을 찾아보기 힘들면서다. 민간 논리를 앞세우면서 장병 쉼터라는 본연의 기능까지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용사의 집’으로 불리던 육군호텔은 지난 7일 ‘로카우스’라는 이름의 4성급 호텔로 재탄생했다. 용산역 앞 용사의 집 자리에 2059억원을 들여 새로 지어진 이 건물은 연면적 4만266㎡에 지하 7층, 지상 30층으로 이뤄졌다. 여기엔 274개 객실과 대형 연회장 2개, 미팅룸 8개, 직영 식음업장 3개, 피트니스룸, 수영장 등이 들어섰다.
당초 용사의 집은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전방으로 향하는 장병들 편의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1969년 건립됐다. 이 건물을 54년 만에 최신식 호텔로 탈바꿈해 장병과 일반 국민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게 육군의 취지였다.
'외부의 외부' 용역, 9900만원 들여 '로카우스' 새이름 탄생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육군은 뒷전으로 밀린 형국이다. 명칭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장성 출신 육군 원로는 “로카우스라는 이름과 육군의 정체성을 연관 짓는 게 쉽지 않다”며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가 직관적인 이름인데 로카우스는 이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있다”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새 이름을 짓는 데 육군이 소외된 결과라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송갑석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로카우스라는 명칭은 ‘외부의 외부’ 용역으로 지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육군호텔의 위탁운영사인 파르나스 호텔이 광고 업계의 한 컨설팅사에 의뢰했는데 여기에 든 육군 예산이 9900만원에 달했다. 컨설팅 결과 후보군으로는 로카우스 외에 ‘아미테온’ ‘그랑아미’ ‘로카토’ ‘로카사31’ ‘포르레스트’ 등 모두 6개가 올랐다고 한다. 이후 3성 장군, 인사사령부, 전문가, 위탁운영사 등 4개 그룹이 설문조사로 의견수렴을 한 뒤 최종 로카우스가 낙점됐다.
육군 원로들이 로카우스 이름에 대한 반대의견을 내놓자, 육군은 재검토했지만 결국 로카우스로 최종 결정됐다.
육군이 명명 과정에서 온전히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향후 민간 수익 사업을 염두에 두고 이름에서부터 군의 색을 최대한 빼다보니 국적불명의 외래어 조합이 난무하게 됐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ROK와 AUS 합성어 같아…한-호주 FTA냐"
이에 육군은 “로카우스는 집을 의미하는 ‘하우스’로도 발음돼 '용사의 집'의 역사성을 직접 표현하여 계승한다는 의미”라며 “영문 ‘ROKAUS’는 ‘ROKA(대한민국 육군)’ ‘US(우리, 국민 함께하는 육군)’의 합성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국 출신의 짐 불리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는 “로카우스는 원어민에게 이상하게 들린다”며 “ROK은 한국(Republic of Korea)이고, AUS는 호주(Australia)를 뜻해 마치 한-호주 FTA를 떠올리게끔 한다”고 말했다.
군 내부에선 새 육군호텔의 태생적 한계 또한 이 같은 육군의 열외 현상에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각한 노후화에 2016년 12월 문을 닫은 용사의 집은 당초 육군복지기금으로 재건립이 추진되다가 재정 문제가 불거지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국유지 위탁 개발 방식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육군은 30년 동안 매년 100억 가까운 돈을 캠코에 준 뒤 소유권을 되돌려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 출신 육군 예비역 인사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육군이 육군호텔 운영에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병사 이용 쉽지 않을 듯…모호한 운영 방침 역시 논란
‘남의 돈’으로 세워진 육군호텔은 과거와 달리 호텔전문기업이 위탁 운영을 맡는다. 수익이 중요한 요소가 됐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병사 중심의 장병 복지 시설이라는 해당 시설의 원래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스탠다드 객실의 경우 현역 장병은 1박 7만~12만원 수준에서 이용 가능하지만 예약 우선권이 없어 병사들이 이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과도한 고급화 콘셉트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가장 비싼 객실의 1박 요금은 일반 165만원, 현역 장병 29만~39만원, 예비역 31만9000~42만9000원이다. 정체성뿐 아니라 이용 대상을 놓고서도 모호한 운영 방침 역시 장병 복지에 얼마나 기여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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