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놓고 ICBM 쏴도 韓 주식은 오른다…"이게 北 노림수"

정영교, 이세영 2023. 4. 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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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하에 고체연료를 사용한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8'을 발사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15일·태양절)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오전 7시 23분쯤. 북한은 평양 인근에서 신형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8형'을 시험발사했다. 한·미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중대한 도발이었다. 그런데 정작 바로 머리 위에서 벌어진 북한 '신무기 발표회'를 지켜본 한국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북한이 고체 연료 ICBM을 발사한 직후 개장한 주식시장에서 코스피는 상승세로 출발하더니, 전날보다 오히려 2.78포인트 오른 2550.64에 장을 마감했다. 과거 북한의 중대 도발 때마다 패닉에 가까운 자금 이탈 등으로 이어졌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사실상 사라진 장면이었다.

그러나 안보 당국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공포나 과잉 대응을 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북한의 도발에 대해 지나치게 무감각하게 반응하는 것은 자칫 북한의 의도에 휘말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익명을 원한 안보 당국 관계자는 17일 "한·미가 굳건한 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한 확장 억제 전략을 강화해 나가면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과잉 우려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국내외의 시큰둥한 반응 속에서도 북한이 도발을 지속하는 것은 한국을 사실상의 '핵인질'로 삼아 향후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수순으로 나아가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부터 무차별적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은 지난 한해 8차례의 ICBM 시험 발사를 포함해 모두 73차례의 미사일을 발사했고, 올해 들어서도 ICBM 3차례를 포함해 총 9차례 미사일을 쐈다. 그리고 국내에서 '도발의 일상화'란 말이 나올 정도로 경계 심리를 낮아진 상태에서도 북한은 도발의 수위를 급격하게 높여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미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을 비롯해 600㎜ 초대형방사포(KN-25), 북한판 애이태큼스(KN-24), 근거리탄도미사일(CRBM), 장거리순항미사일 '화살-1·2형', 핵무인잠수정 해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술핵탄두인 '화산-31형'의 탑재가 가능한 투발 수단을 선보였다. 지난 13일엔 최초로 고체연료 ICBM 시험발사를 마쳤고, 기존 액체연료 미사일 시스템을 고체연료 방식으로 전면 교체할 의지까지 피력한 상태다.

국내 여론이 무뎌진 사이 국제사회가 경계해왔던 핵 투발 수단을 개발해 이를 모두 공개했다는 의미다. 특히 북한이 최근 공개한 신무기 체계는 대부분 과거 '핵담판'을 시도했던 미국이 아닌 한국을 핵으로 직접 겨누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화산-31 핵탄두 탑재 예상 주요 단거리 미사일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북한 공개보도 등]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 주도의 제재에 협조하지 않는 상황을 활용해 최대한 신속하게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며 “전략핵보다 완성 단계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는 전술핵을 통해 한국은 물론 주한미군에 대한 실질적 핵 위협을 증강하며 한반도에서 상황을 주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김정은은 최근 '핵질주'에 가까운 도발을 이어가면서 한반도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중점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3가지 측면에서 분석한다.

우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무력화됐다는 점이다. 안보리는 유엔 회원국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런데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에 대해 비토(veto·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안보리는 북한 문제에 관해선 개점휴업에 가까운 상태다. 이로 인해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 '속도전'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다른 원인으로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역량을 대거 투입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 문제는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분석이다. 이 역시 북한이 미국의 개입이라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핵·미사일 고도화에 집중할 바탕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정은은 집권 초 집중했던 전략핵에서 전술핵으로 핵정책을 전환하고, 미국 본토가 아닌 한반도와 일본열도 등을 영점을 조정한 것도 미국의 관심을 상대적으로 더 낮추는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남한 지도 위 수도권 지역을 가리키며 “전쟁억제력을 공세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러한 국제 역학 관계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실질적 핵위협을 가파르게 높이고 있다.

실제 북한은 미국을 겨냥한 ICBM과 함께 한반도와 주변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다양한 투발수단을 선보이며 한국에 대한 실제 핵공격을 가능성을 부각하고 있다. 김정은이 군 관련 회의장에 펼쳐진 남측 지도에서 수도권 일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노출하거나 선제 핵공격을 명시한 '핵무력법'을 채택한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확대된 북한의 실질 위협에 오히려 무감각해지는 한국의 모순적 상황과 달리, 정치권과 외교가에선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핵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한반도를 직접 겨냥하고 있는 북한의 공세에 대비할 체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한민국 안보의 최대 위협은 북한의 핵 위협이고 김정은이 이를 계속 증강하는 한 코리아디스카운트는 없어질 수 없다"며 "북핵 위협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누적하고 있고, 언젠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패닉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런 상황에 안일하게 대응할 경우 '끓는 물 속의 개구리(Boiling frog)'처럼 직면한 위협을 인지하지 못한 채 어느 순간 북핵의 인질이 돼 버린 상황을 수용해야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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