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1만 성도 파송 이후

이명희 2023. 4. 18.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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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이 코너를 통해 ‘어느 대형교회의 분화실험’이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더 높게, 더 많이 욕망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상당수 한국 교회와 달리 자기 교회로 찾아오는 성도들에게 제발 오지 말아 달라면서 기존에 있던 성도들도 29개 교회로 나눠서 내보내겠다는 목회자 얘기였다. 10년 전쯤 어느 새벽에 ‘너네 교회만 커지는 게 옳으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29개 교회를 맡을 목회자들을 뽑아 성도들을 떠나보냈다. 성도들은 울면서 떠나갔다.

1년 전 1만 성도 파송예배를 드리면서 “이제 분당우리교회는 잊어주세요”라고 울먹였던 이찬수 목사 얘기다. 원래 40개 교회로 나누려던 마음의 짐이 있던 그는 성도수 50~100명 이하의 작지만 건강한 교회를 살리는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조금만 도와주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11개 교회를 올해 안에 뽑아서 4억원씩 지원하고 설교와 목회 노하우도 전수한다. 이들 교회 목회자를 수요예배 설교를 시작으로 주일예배 3부 설교 강단에도 세울 예정이라고 한다. 올해 수도권에 이어 내년에는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일부 교회가 미자립교회에 재정적 지원을 하거나 젊은 목회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양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분당우리교회의 실험은 지원 금액이나 내용 면에서 파격적이다.

6만 한국 교회 중 미자립교회 비율은 70~80%에 달한다. 지금은 재정적 어려움이 있지만 미래에 자립할 수 있는 교회라는 의미로 미래자립교회라 부르기도 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사명감으로 나선 대다수 목회자들이 최저생계비도 못 되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이중직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국민일보가 연재하고 있는 개척교회 목사 얘기를 다룬 ‘개척자 비긴즈’ 스토리를 보면 눈물겹다. 네 번이나 교회를 개척했지만 모두 실패한 경우도 있고, 재정과 목회가 해결되는 카페교회의 정체성 혼란 얘기도 나온다. ‘개독교’라고 세상으로부터 온갖 욕을 얻어먹고 목회자가 동네북이 된 요즘에는 단 한 명을 전도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한 작은 교회를 살리고 한국 교회가 다같이 살자는 분당우리교회의 실험이 주목된다.

일부 정치 목사의 일탈 때문에 한국 교회 전체가 도매금으로 욕을 먹고 있지만 인간적·세상적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묵묵히 사역하는 목회자도 많다. 그만큼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다. 이 목사의 말대로 크리스천들이 ‘믿는 사람답게’, ‘생팔’을 잘라 드리는 헌신이 아니라 변화된 삶을 각자의 삶 속에서 드러내면 매력적인 기독교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베스트셀러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인 릭 워런 미국 새들백교회 목사는 최근 사랑의교회 특별새벽부흥회 영상설교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그리스도인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리스도인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자의 경우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하나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를 안 믿는다는 것이다.

19일은 추양(秋陽) 한경직 영락교회 목사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지 2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8년부터 10년간 영락교회 부목사와 수석 부목사, 대리 당회장 등을 지낸 오창학 신촌교회 원로목사는 얼마 전 영락교회가 발간하는 교회 소식지 ‘만남’에 ‘한경직 목사님과 설교’라는 제목으로 추모글을 실었다. 그가 회고하는 한 목사의 설교 특징 중 하나는 언행이 일치하는 것이었다. 오 원로목사 또한 지난 41년간의 목회를 통해 느낀 수많은 설교의 어려움은 설교 작성이나 전달 방법에 있었던 게 아니라 설교와 행동에 괴리가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토로했다.

한 목사가 1992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템플턴상을 받은 뒤 한국에 돌아와 서울 63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수상 축하행사에서 회개한 일화는 유명하다. “저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저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저는 신사참배한 사람입니다. 저는 죄를 많이 지어서 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뒤 그는 상금 100만 달러를 전액 북한 선교기금으로 헌금했다. 평생 통장 한 번 갖지 않은 그가 소천한 뒤 마지막 거처였던 남한산성 6평 남짓한 우거처에 남은 것은 40년 이상 사용한 낡은 침대와 옷장뿐이었다. 가을 햇볕처럼 주변을 따뜻하게 해주는 추양 같은 목회자가 더욱 그리운 때다.mheel@kmib.co.kr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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