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엠폭스 발진·물집, 단순포진·매독 증상과 구분 필요
주로 손·얼굴·입·항문 등에 발진
강도높은 신체 접촉 있어야 감염
산발적 발생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일반 집단 대규모 감염은 없을 듯
최근 해외 여행력이 없는 국내 엠폭스(옛 명칭 원숭이두창) 감염자가 연이어 나오고 있어 경각심이 요구된다. 지난해 6월 첫 확진자 이후 지금까지 13명이 확인됐는데, 6번째부터 양성 판정을 받은 8명은 모두 지역사회 감염자로 추정돼 추가 발생이 우려된다. 질병관리청은 각 사례별 감염원과 접촉자 조사를 통해 전파 차단에 나섰으나 역학조사가 쉽지 않아 숨은 감염자 파악에 애를 먹고 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7일 “엠폭스의 산발적 발생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감염병은 초기 역학조사를 기반으로 감염원과 접촉자를 신속히 확인하고 추가 노출을 막는 것이 확산 방지의 관건인데, 코로나19 등 호흡기감염병과 달리 익명성으로 이뤄지는 감염경로(성 접촉, 밀접한 피부 접촉) 때문에 고위험군의 자발적인 신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애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인수공통감염병인 엠폭스는 원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쥐·다람쥐·프레리도그 등 설치류, 원숭이)과 사람의 혈액·체액·피부병변, 또는 바이러스에 오염된 물질(린넨·의복 등)과 접촉할 경우 옮는다. 태반을 통해 엄마에게서 태아로 수직 감염도 가능하다. 코나 구강, 폐포에 있는 감염 비말(작은 물방울)에 의한 사람간 직접 전파나 바이러스가 포함된 미세 입자(에어로졸)를 통한 공기 전파도 있을 수 있으나 매우 드물다. 엄 교수는 “비말 등으로도 전파 가능하나 같은 사무실에서 감염자와 단순히 근무하는 등 일상적 접촉으로 감염되진 않는다. 성 접촉이나 강도높은 신체 접촉이 있어야 옮는 만큼, 일반 인구집단에서의 대규모 전파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아울러 고위험 행위를 하지 않거나 의심 정황이 없는데 피부에 뭔가 발진이 생겼다고 엠폭스가 아닌지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엠폭스는 평균 6~13일 잠복기를 거친 후 대개 발열과 오한, 림프절 부종(목·겨드랑이·사타구니 등이 부음), 피로, 근육통 및 요통, 두통, 호흡기 증상(목통증·코막힘·기침 등)을 먼저 보인다. 피부 발진은 이런 전구 증상이 있고 1~4일 후 나타난다. 전구 증상 없이 피부 발진이 생기기도 하는데, 아프리카 등 풍토병 지역이 아닌 곳에서의 유행 사례에서 상대적으로 흔하다. 발진은 얼굴 입 손·발 가슴 항문·생식기 등에 주로 돋고 반점으로 시작해 좁쌀 크기 구진→수포(물집)→농포(고름)→가피(딱지) 순서로 진행된다. 초기에는 뾰루지처럼 보일 수 있고 통증과 가려움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런 임상 증상 때문에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단순포진이나 매독 수두 홍역 옴 등과 구분이 필요하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이시형 교수는 “특히 엠폭스처럼 성인에서 주로 발생하는 양상인 단순포진이나 매독과의 감별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단순포진은 미국의 경우 전체 성인의 절반이 잠복 감염돼 있을 정도로 흔하다고 보고된다. 바이러스가 몸 속에 숨어있다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질 때 입술(1형)과 생식기·항문(2형) 주변에 발진으로 발현된다. 붉은 반점들이 500원짜리 동전 크기 미만의 군집을 이뤄 다닥다닥 돋는 게 일반적. 초기 감염인 경우 발열 두통 근육통 권태감을 동반할 수 있고 재발땐 이런 전구 증상이 경미하거나 없다. 이 교수는 “초기 감염의 경우 전구 증상이 나타나고 피부 발진이 수포 농포 딱지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엠폭스와 유사할 수 있으나 피부 병변이 특정 부위에 군집을 이루고 재발인 경우 전구 증상이 거의 없다는 점, 손·발바닥 침범이 흔치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조언했다. 엠폭스는 수포나 농포 등이 몸 전체에 산발적으로 발생한다.
성 접촉 과정에 박테리아로 전파되는 매독은 감염 2~3주후 약 30~51%에서 통증 없는 궤양이 주로 생식기 주변에 보통 1개 혹은 다발성으로 발생하며 3~8주 후 자연 소실된다(매독 1기). 매독은 엠폭스처럼 수포나 농포 등 병변이 선행되지 않는 궤양이라는 점과 전구 증상이 없다는 점, 생식기 주변 외에는 발진이 없거나 뚜렷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엠폭스와 차이가 있다.
문제는 매독도 감염 후 4~10주가 지나면 2기로 진행되며 이땐 미열과 불쾌감 목통증 림프절염 체중감소 근육통 두통 등의 전구 증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또 전신에 발진이 돋으며 반점, 구진, 결절(딱딱함), 농포 등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엠폭스와 헷갈릴 수 있다. 이 교수는 “엠폭스는 잠복기가 최대 3주이므로 의심되는 성 접촉이 있었던 경우 그 시점으로부터 어느 정도 지나 전구 증상 및 전신 발진이 생겼는 지 확인하면 두 질환을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매독은 근래 미국과 캐나다 일본 등에서 환자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조기 매독(1·2기) 진료 환자도 2019년 5954명에서 2020년 6099명, 2021년 6293명으로 3년 연속 증가했다.
수두와 홍역은 예방접종의 보급으로 성인 보다는 소아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어 엠폭스와 감별 대상 질환으론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역시 증상이 유사해 간과해선 안된다. 수두는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 감염 후 발열 두통 근육통 요통 식욕부진 권태감 등이 나타나는데, 성인에서 심하고 소아에서는 상대적으로 없거나 경미하다. 전구 증상이 있고 2~3일 후부터 피부 발진이 있으며 가려움증을 동반한다. 전구 증상이 비슷하고 반점 수포 농포 딱지 순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엠폭스와 오인될 수 있다. 다만 엠폭스의 특징 중 하나인 림프절 비대와 전체의 75%에서 발견되는 손·발바닥 병변이 수두에서는 흔히 관찰되지 않는다. 또 성인의 경우 어릴적 잠복돼 있던 수두 바이러스에 의해 면역력 저하 시 대상포진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몸 한쪽에 띠 모양 피부 발진 형태로 나타나 역시 엠폭스와는 구분된다.
백신 접종 국가에선 드물게 발생되는 홍역도 고열 불편감 콧물 기침 등 전구 증상이 있고 붉은 반점과 구진이 귀 뒤와 앞 이마에서 시작돼 목이나 몸통으로 퍼지고 손·발에도 나타난다. 이 교수는 “엠폭스처럼 발열 등 전구 증상이 있고 초기에 홍반이 나타나는 점이 유사하나 수포 농포 딱지 같은 형태로 변하지 않고 4~5일 지나면 나타난 순서대로 사라지는 특징이 차이점”이라고 했다.
옴 진드기에 물리거나 감염자 혹은 오염된 침구·옷 접촉으로 감염되는 옴도 홍반 구진 수포 농포의 형태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엠폭스와 유사하지만 수포와 농포 보다는 홍반과 구진 딱지 등이 주로 나타나고 전구 증상이 없다는 측면에서 다르다. 손가락이나 손목 등 접히는 곳, 생식기 부위에 잘 생기며 밤에 잠을 자기 힘들 정도로 가려움이 심해 감별 포인트가 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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