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장애인 탈시설 정책, 시설 선진화와 병행돼야
장애인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보면 우리가 더 많이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눅 14:12~14)이다. 크리스천이라면 장애인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나와 생활하는 탈시설 정책과 관련해 찬반 입장을 살펴보면 탈시설의 근거가 되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19조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다르다. 찬성 쪽은 시설 폐쇄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반대 쪽은 거주지와 동거인을 선택할 권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자기 결정권에 대해서도 찬성 쪽은 당사자가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 위원회를 통해 탈시설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반면 반대 쪽은 시설을 선택할 결정권이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 생각을 정리해봤다.
첫째, 탈시설 정책은 탈시설화 정책으로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탈시설 정책이 장애인 시설을 완전히 폐쇄하는 정책이라면 탈시설화 정책은 거주시설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오스트리아는 우리나라보다 탈시설화 정책을 앞서 추진했지만 아직 탈시설화 정책이 완료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는 거주시설을 16인 이하 시설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기존 시설은 예외다. 거주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시설에 살고 싶은 이를 강제 퇴소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독일 스웨덴 등 다른 선진국도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지원하기 위해 탈시설 정책이 아닌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거주시설을 완전하게 폐지한 나라는 없다. 시설을 소형화하고 다양화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가정과 같은 환경을 제공하는 그룹홈, 돌봄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케어홈 등이 대표적이다.
둘째, 탈시설화 정책은 모든 장애인에게 적용하기 어려우므로 장애 특성을 반영해 탈시설과 시설 선진화를 병행 추진해야 한다. 탈시설을 통한 지역사회 자립은 중요한 목표이지만 중증발달장애인에겐 실효성이 없다. 시각, 청각, 지체 등 신체장애인은 자립이 가능하므로 탈시설은 좋은 정책이다. 그러나 중증발달장애인의 경우 의사소통이 힘들고 일상적 생활에 어려움을 겪기에 자립이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도 지역사회 내 지원 주택에서 활동지원사에게 돌봄을 맡겨 자립하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복지 증진이 아니라 복지 실종이다. 중증발달장애인의 경우 특성과 욕구를 반영해 시설 운영 모델을 개혁하고 시설 유형도 다양화해야 한다. 생활실을 1~2인실로 바꾸고 사생활을 보장한다면 정상화(Normalization)와 사회 통합이 가능하다. 거주지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다운 삶이다.
셋째, 탈시설화 정책은 합리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당사자를 비롯해 부모, 전문가, 공무원 등이 참여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탈시설 정책은 진보적 운동 단체의 전유물이다. 장애인복지의 프레임을 바꾸는 중대한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졸속으로 추진하는 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관련 정보와 자료를 왜곡해선 안 된다. 일부 정치인은 탈시설 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운동권 단체의 강력한 주장에 영향을 받아 일방적 방향으로 추진하는 우를 범했다고 생각한다.
탈시설화 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추진은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배치된다. 자기 결정권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 핵심은 장애인이 행복하고 장애인 가족이 수용할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탈시설 정책은 탈시설화 정책으로 바꿔 자립이 가능한 장애인에게는 탈시설을 지원하고, 시설이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삶의 질이 담보될 수 있도록 거주시설을 선진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 않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하신 말씀은 제도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이념과 제도에 함몰돼선 안 된다.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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