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의 교회로] 단절된 삶 사는 농인 교인 일터로 초대… ‘복음과 떡’ 나눈다

장창일 2023. 4. 1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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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땅끝에서 희망을 외치다
① 포항 한숲농아인교회
안후락(맨 앞줄) 목사와 김소향(뒷줄 왼쪽 다섯 번째) 사모가 지난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수화식당’에서 직원들과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의 한 골목에 들어서자 ‘수화식당’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농인들의 언어인 수화를 사용하는 식당이라는 의미를 담은 식당은 2017년 한숲농아인교회(안후락 목사)가 세웠다. 겉모습은 여느 식당과 비슷했지만 “어서 오세요”라거나 “빈자리에 앉으세요”와 같은 보통의 인사가 없었다. 잠시 후 한 직원이 “이리 앉으세요”라고 안내했지만 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수화 주문하면 10% 할인

한쪽 벽에는 수화로 각종 메뉴를 주문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비장애인이 수화로 주문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배려다. 식당에서는 수화로 음식을 주문하면 식대의 10%를 할인해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틈을 좁히기 위한 시도다. 직원 중에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있다.

식당의 시작은 농인인 안후락 목사와 비장애인인 김소향 사모에 의해서였다. 장애 때문에 단절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복음과 떡’을 함께 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안 목사와 김 사모가 수화로 대화하는 모습.


직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홀에 손님이 많지 않았지만, 주문 들어온 도시락 포장과 배달 때문이었다. 안 목사와의 대화를 위해 김 사모가 수화 통역을 했다.

“농인들을 위해 어떤 목회를 할 것인지 늘 고민했습니다. 포항제일교회 농인부 교역자로 사역할 때부터였죠. 교인들이 직업이 없으니 생활도 안 되는데 취업 장벽은 높았습니다. 여성은 더 힘들더라고요.”(안 목사)

김 사모가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한 것도 농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였다. 궁리 끝에 2011년 포항제일교회 안에 만든 건 아동센터였다. 보통 부모가 농인이어도 자녀 중에는 비장애인이 많다. 자녀들이 자라면서 부모와의 대화가 없다보니 정서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김 사모가 센터장을 맡아 운영했던 아동센터는 농인 교인들의 관심 속에 안착했다. 이런 시도가 수화식당 창업으로 이어진 셈이다.

김 사모는 “2017년 한숲농아인교회가 창립할 때 우리 교인 중 90% 이상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면서 “장애가 있는 교인들에게 복음만 심는 건 한계가 크다는 걸 깨달았고 목사님과 떡도 함께 줄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고 말했다.

농인들의 일터 ‘수화식당’

수화식당 1호점은 개척과 동시에 교회가 입주한 건물 1층에 문을 열었다. 2호점은 그곳에서 150m 떨어진 또 다른 상가에 2020년 간판을 걸었다.

사모와 농인 교인 두 명이 시작한 사업은 금세 출장 뷔페로 커졌다. 직원은 1년 만에 8명으로 늘었고 적지 않은 매출도 기록했다. 장애인고용센터도 인력 지원을 해줬다. 2호점을 시작하자마자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도시락 수요가 급증한 것도 성장에 한몫했다.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반찬 배달과 홈파티 수요도 늘었다.

하지만 직원이 16명까지 늘면서 현상 유지가 버거워졌다.

‘수화식당’ 2호점 전경. 출입구에 영어로 수화식당이라는 간판 아래 분홍색 리본 문양의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결국 2호점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은 그날 밤, 식당 인터넷 카페에 1500명이 넘는 회원이 신규 가입을 했어요. 깜짝 놀랐죠. 다음날 전화기가 불이 난 거예요. 한 단골이 우연히 지역 맘 카페에 우리 식당을 소개하는 글을 올린 게 계기였습니다. 폐업하려던 날부터 매일 반찬 배달이 200건씩 들어왔습니다.”(김 사모)

농인들의 신앙 공동체가 자립하는 건 여러 장벽을 넘어야 한다. 험난한 장애물을 넘은 한숲농아인교회와 수화식당은 결국 복음과 떡을 나눌 수 있게 됐다. 이뿐 아니라 장학금과 선교비를 통해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안 목사는 “예장통합 총회농아인선교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서울 종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의 임대료와 간사 사례도 우리 교회가 부담하고 있다”면서 “교인들에게 일 할 기회를 주고 조금이나마 남는 수익으로 이렇게 나눌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라고 전했다.

손님과 직원들의 ‘사랑방’ 같은 식당

식당은 손님과 직원 모두의 사랑방과도 같았다.

단골 전경춘(65)씨는 “가까운 곳에서 빵집을 운영하는데 이 식당에 자주 온다”면서 “친절하고 음식에 정성이 가득하며 무엇보다 맛있다. 지인들도 자주 초대한다”고 했다.

지난 2월 식당에 입사한 안미정(48)씨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농인인 안씨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취직한 뒤 좋은 분들과 즐겁게 일하고 있다”면서 “잘 배워서 수화식당 3호점을 열고 싶다”며 웃었다.

직원 중에는 이성혜(24)씨처럼 비장애인도 있다. 행정팀장으로 일하는 그는 장애인 동료를 위한 각종 서류 업무를 하고 있다. 이씨는 “장애인들이 고립되기 쉬운 환경에 있는데 이 식당과 같은 곳이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면서 “장애인들이 많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나뿐 아니라 장애인 직원들도 성숙하는 걸 느낀다. 집에만 계셨을 분들이 큰 희망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안 목사 부부는 전국의 장애인 공동체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걸 알리는 ‘희망 전도사’다. 그는 “교회 공동체와 우리 직원들이 함께 일군 결과”라면서 “장애인 교인이 있다면 우선 성도를 이해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격려했다.

포항=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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