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2023. 4. 18. 03:0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나는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만큼 신에 관해 철저히 사고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의 위대한 장편소설들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 또한 그들이 만들려는 세상이 얼마나 허술한 기초 위에 놓여 있는지를 묘사하기 위하여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능을 가진 영(靈)이 있어서 신성을 동경하며 추구한다.

성령을 모신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의 영을 자극하여 그리스도께 마음을 열도록 할 사명을 가졌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는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만큼 신에 관해 철저히 사고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의 위대한 장편소설들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 또한 그들이 만들려는 세상이 얼마나 허술한 기초 위에 놓여 있는지를 묘사하기 위하여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죄와 벌’의 무신론자 주인공은 도덕적 규범을 뛰어넘는 초인(超人)이 되려고 했지만, 사람을 죽이고 난 후 정신적 분열과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어두운 삶으로 전락한다. 최고의 정치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악령’에서 혁명을 도모하는 무신론자들은 악령에 사로잡혀 바다로 달리는 돼지 떼같이 혼란과 공멸을 자초한다. 이 예언적 소설은 한 세대 후 볼셰비키 혁명에서 그대로 실현됐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무신론자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가책으로 정신착란을 겪는다.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이 대명제는 대한민국에서 절망적으로 증명되는 중이다. 넘지 못할 선은 없고 희미해지지 않은 경계도 없다. 정치의 금도가 무너지고 외교적 관례가 무시되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패륜이 일어나고 있다. 신을 죽인 사람들은 이번에는 사람을 닥치는 대로 처넣는 괴물로 흑화했다. 신이 없는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은 지하실의 ‘기생충’처럼 살고 치명적인 ‘오징어 게임’의 선수가 되었다. 폭력과 복수의 악순환에 인간의 ‘글로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눈떠 보니 다시 40년 전 야만의 시대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사람 안에 신을 추구하는 본성이 심겨 있고 도덕률이 별처럼 내재 되어 있으며 양심이 깜박깜박 신호를 준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능을 가진 영(靈)이 있어서 신성을 동경하며 추구한다.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모든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성령을 모신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의 영을 자극하여 그리스도께 마음을 열도록 할 사명을 가졌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영적 세계를 언뜻언뜻 본다. 이것이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는 못하여도 극단적 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한 사회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는 것을 늦출 수 있다.

상상해 보라. 사람들이 다시 초월의 세계를 그리워하며 영혼을 정화하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치인이 정치에 입문하던 때의 초심을 회상한다면, 판사와 검사가 피해자의 아픔에 마음이 저리다면, 기업인이 자기의 성공이 노력의 결과만이 아님을 겸비하게 인정한다면, 의사와 간호사가 자기들이 선서한 선서문의 정신을 되새긴다면, 교사들이 아이들의 맑은 눈 안에 있는 영혼을 들여다보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우리의 영이 살아 있어 사람들의 영을 깨우쳐야 한다. 세속적인 사람들이 양심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가책을 받고, 초월적 가치를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에 충격을 받아야 한다. 차별 없이 환대하는 그리스도인의 매력에 이끌리고 고통 가운데도 절망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소망의 이유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시대에 번영을 구가하던 러시아정교회는 빵과 기적과 권위로 백성을 우민화하고 억압했다. 해방의 복음을 선포하는 그리스도는 ‘대심문관’(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둘째 아들 이반의 독백에 나오는 인물)에 쫓겨 쓸쓸히 떠나셔야만 했다. 교회에 신이 없는데 어떻게 세상에 신이 있겠는가. 악령들이 날뛰는 세상, 결국 돼지 떼와 함께 모두 바다에 빠진 후 정적만 남을 것이다.

장동민(백석대 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