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선택 시도자 구해도 다시 할 확률 80% 일시적 아닌 지속적인 관심 갖고 돌봐야”
극단 선택 시도자 77명 살린
서울혜화경찰서 이범오 경감
국민일보 유튜브 채널 '더 미션'의 복음식당은 최근 서울혜화경찰서의 수사 심사관 이범오(51) 경감을 만났다. 이 경감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경찰청 사이버테러센터에서 재직하며 극단적 선택 시도자들의 생명(77명)을 구해낸 것을 계기로 극단적 선택 예방을 연구하고 공부해오고 있다.
극단적 선택 시도자를 구호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함께 일하는 동료 경찰관들의 생명까지 지켜내야 하는 이유가 됐다. 경찰청이 5년마다 실시하는 경찰공무원 복지 실태조사(2018년)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경찰(16명)이 직무 수행 중 사고로 순직한 경찰보다(11명) 많고, 경찰 자살률(19.8명·2014∼18년)은 전체 공무원 자살률(7.8명)보다 2.5배 높았다.
복음식당의 주인장 '홍카주'(홍익대학교 인근의 카페 주인을 닮은 이미지로 붙여진 별명)로 불리는 라이트하우스 서울숲 임형규 목사와 이 경감이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옮겨봤다.
홍카주(이하 홍)=안녕하세요. 죄지은 것도 없는데 경찰서는 괜히 긴장됩니다. 수사 심사관은 어떤 일을 하나요.
이범오 경감(이하 이)=고소인이나 고발인들이 누구를 고소했을 때 혐의가 있으면 검찰에 송치하고 혐의가 없으면 불송치 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불송치 전 최종적으로 한 번 더 점점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홍=어떤 계기로 경찰이 됐는지요.
이=초등학교 졸업식 때 경찰서 소장님이 오셨어요. 제복 입은 소장님을 보고 무서워서 도망가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커서 경찰관이 돼야겠다’ 생각했어요. 시험에 두 번 낙방 후 96년 7월 임용됐습니다. 파출소 지구대 수사 파트 등을 거쳐 경찰청 사이버대응테러 부서에서 극단적 선택 구호 업무를 담당하며 많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홍=극단적 선택 시도자들이 시그널을 보내고 이들을 구호하기까지 골든타임이 있는지요.
이=인터넷 게시판에 ‘청산가리’ ‘번개탄’ ‘노끈’ ‘수면제’ 키워드를 쓰면 위험군으로 분류합니다. 극단적 선택 시도자 내면에는 ‘두려움’과 ‘나를 살려달라’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찾아내야 하는데 요즘은 개인 정보 때문에 구호 활동이 많이 어려워졌어요. 구호를 해도 다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확률이 80%나 돼 이들에겐 일시적 관심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홍=구호자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이=학교 폭력을 당한 고등학생이 유서를 써놓고 가출을 했어요. 모든 경찰서에 비상이 걸렸죠. 오후 5시 즈음 그 학생을 찾아내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꿈이 경찰관이라고 하더군요. 군대 간다며 인사 왔는데 그다음부터 연락이 끊겼어요. 나중에 경찰이 됐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홍=공무원 중 경찰이 극단적 선택 고위험군 직군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얼마 전 저도 친한 동료를 잃었습니다. 나름 극단적 선택 전문가인데 동료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더군요. 극단적 선택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경찰들은 참혹한 사건 사고 현장을 수시로 목격하다 보니 트라우마 고위험군에 속합니다.
홍=트라우마를 겪는 경찰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갖춰져 있나요.
이=심리 상담과 치료를 전담하는 ‘마음동행센터’ 등 전문센터는 잘 갖춰져 있지만, 사실 적극적으로 활용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외국처럼 퇴직 후에도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면 좋겠습니다.
홍=마음이 아플 때 ‘그런 일 정도는 의지로 정신력으로 이겨내야지’라는 조직문화, 사회적 분위기도 작용한 게 아닌가 싶네요. 극단적 선택 유가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이=극단적 선택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과 사회적 편견에 숨죽여 웁니다. 그들을 불쌍하고 특별하게 바라보기보다 보통의,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 뒤에는 가족을 비롯해 직장동료, 친구 등 8명을 극단적 선택 고위험군으로 간주하고 관리돼야 또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홍=영화 ‘범죄도시’ 속 배우 마동석 같은 괴물 형사가 진짜 있나요.
이=그랬다간 징역 갈 겁니다.(웃음) 2018년 JTBC에서 방영된 ‘라이브’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했어요. 순경들이 파출소에서 좌충우돌하는 내용을 현실감 있게 잘 다뤄줬던 것 같습니다.
홍=사회와 이웃을 지켜내느라 경찰관들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가족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이=지난해 5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생일날 곁에서 함께 축하해 드리지 못했던 것이 떠올라 많이 울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딸에게 ‘사랑하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홍=어떤 은퇴를 꿈꾸시는지요.
이=은퇴 후에도 극단적 선택 예방 연구를 하며 사회적으로도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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