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도의 퍼스펙티브] 사우디와 이란의 데탕트…중동에 부는 ‘차가운 평화’
중동에서 존재감 알린 중국
“미국 잃을 것 없다” “체면 구겼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가운데 두고 사우디와 이란 외교장관이 우의를 다지는 사진이 국제사회에 던진 파문은 컸다. 2차 대전 이후 중동의 굵직굵직한 일에는 항상 미국이 나섰는데, 이번에는 중국이 미국의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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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간 앙숙 관계 사우디와 이란, 중국 중재로 국교 정상화
사우디 편들던 미국 곤혹…겉으론 평가절하, 속으론 충격
아랍연맹 10개국과 시리아, 카타르와 바레인도 화해 무드
“더 싸우기에는 출혈 너무 크다” 암묵적 동의 당분간 갈듯
」
사실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로 미국이 잃을 것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 늘 사우디에 요구하였던 예멘전 종식이 현실화할 판이니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의 중재가 별거 아니라고 평가절하하면서도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다. 중국이 최대 외교 역량을 발휘해 페르시아만 양안에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니, 미국이 체면을 구겼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미국이 사우디와 이란의 화해를 주선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란 핵 개발을 막는 트럼프의 최대 압박 정책을 바이든 정부가 풀지 않은 상황인 데다 이스라엘이 결코 이란에 좋은 일을 하도록 미국을 놓아줄 리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와 이란, 뿌리 깊은 종교 갈등
순니파 사우디와 시아파 이란의 불협화음은 1926년 종교 문제로 터져 나왔다. 그해 4월 21일 사우디는 메디나의 바끼으 공동묘지 내 시아파 이맘의 안식처를 여럿 파괴하였다. 이란에서 항의하자 이란인의 메카 순례를 막았다. 1929년 우호조약을 맺으며 관계가 호전되는가 했으나, 1943년 몰래 들여온 오물로 카바 성원을 더럽혔다며 메카 순례 이란인을 처형하면서 다시 사이가 험악해졌다.
이란은 자국민이 카바를 7번 도는 예식 중 더위를 먹고 구토를 하였으나, 성원을 더럽힐까 봐 토사물을 옷으로 받아 냈는데,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주변 순니파 순례자들은 이란인이 성원을 더럽힐 목적으로 오물을 들여왔다고 오해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란은 성급한 사형 집행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요구하였으나, 사우디는 문제의 이란인이 성원을 더럽히려는 시아파 조직의 우두머리였다고 주장하였다. 사건의 여파로 1948년까지 이란인의 성지 순례길이 막혔다.
그러나 1955년 압둘 아지즈 국왕이 이란을, 1957년 모함마드 레자 샤가 사우디를 방문하면서 양국은 종교 갈등을 봉합하였고, 1966년에는 파이살 국왕이 이란을, 1968년에는 바레인 위기로 양측이 긴장 관계에 들어갔음에도 샤가 사우디를 방문하면서 양국 관계는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
이란의 우월감, 사우디의 불안감
사우디와 이란은 냉전 시대 페르시아만에서 미국을 뒷받침하던 ‘쌍둥이 기둥’이었다. 미국의 후원으로 1963년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 뜻의 백색혁명(세속적 근대화 개혁)에 나선 이란을 미국은 전통문화에 꽁꽁 묶여있는 사우디보다 더 편하게 느꼈다. 근대화에 매진하면서 자신감이 붙은 이란의 샤는 사우디 국왕 파이살에게 근대화를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다.
“형제여, 근대화하십시오. 국가를 개방하십시오. 남녀공학 학교를 세우십시오. 여자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게 하십시오. 디스코장을 여십시오. 근대화하지 않으면 왕좌를 지키실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파이살 국왕은 이렇게 답하였다. “폐하, 충고에 감사합니다. 폐하가 프랑스의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엘리제궁에 사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란에 계십니다. 폐하 국민의 90%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샤는 이란이 사우디보다 선진국인데 둘을 동급으로 보는 미국을 언짢게 생각하였다. “닉슨은 우리를 중동 전체에서 가장 후진국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싶어한다. 사우디를 우리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않고 왜 우리를 사우디 수준으로 낮추려 하는가?”
사우디는 근대화가 아니라 군사력 증강 때문에 이란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특히 1975년 3월 조카의 총에 맞아 파이살 국왕이 사망한 지 두 달 후 샤를 초청한 미국이 사우디 정정이 불안해지면 이란의 사우디 유전 장악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불안과 불쾌함을 느꼈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1976년 카타르 도하 석유수출국회의(OPEC)에서 미국 편에 섰을 것이다. 유가 인상이 절실했던 이란을 막고 유가 동결을 이끈 후 야마니 석유장관은 도하를 떠나면서 “서구, 특히 미국이 우리에게 고마워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1977년 새해 샤는 “국고가 비었다”고 최측근에게 토로하였다. 석유를 판 돈을 국내 산업 발전과 군사력 증강에 쏟아부은 이란은 유가가 오르지 않자 국가 발전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할 수 없었다. 결국 국민 불만이 늘면서 1979년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 혁명에 왕정이 무너졌다.
호메이니 “사우디 절대 용서 못 해”
이란 왕정을 “이스라엘과 미국을 위한 군사기지”라고 비판한 호메이니에게 사우디 왕정은 타락한 비이슬람 정권이기에 제대로 된 이슬람을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너뜨려야 했다. 사우드 가문 이름을 따 지은 우스꽝스러운 나라가 보낸 새로운 정부 건립 축하 서한도 모르는 체했다.
세계 최대 유전지대인 동부 시아파 국민을 이등 시민으로 취급한 사우디는 시아 무슬림들이 이란을 본받아 저항의 깃발을 들 수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안전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면서 왕국의 지도자를 주민이 직접 선출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시아 무슬림들이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므르 안-니므르를 2016년에 처형한 이유다. 이란혁명 직후 메카 순례에서 이란 순례자들이 시위하는 것을 보면서 종교 행사가 정치 선동의 장이 되었다며 분노한 것도 자국 시아파 주민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은 가장 위대하시고(아크바르), 호메이니는 지도자(라흐바르)” “신은 한 분(와히드), 호메이니는 지도자(까이드)”라고 외친 이란인들의 구호에서 라흐바르, 까이드를 아크바르, 와히드로 잘못 들어 “신은 가장 위대하시고, 호메이니는 가장 위대하시다” “신은 한 분, 호메이니는 한 분”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신성 모독 다신론자, 이단으로 몰아붙이기에 딱 좋은 구호로 들은 것이다.
이후 메카 순례는 양국의 격전장이 되었다. 1987년 7월 이란 순례자 275명이 사우디 보안군의 총에 맞아 숨지면서 실용주의 정치인 라프산자니마저 사우디 정권 전복을 주문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라크·이란 전쟁 8년 동안 사우디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원한 것도, 그러한 사우디를 이란이 용서하지 못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호메이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담 후세인을 용서할 순 있어도 사우디는 절대 용서할 수 없으리라. (중략) 사악하고 불경한 이들 와하비(사우디 이슬람주의자)는 항상 무슬림의 심장을 뒤에서 찌르는 단검과 같다. (중략) 메카가 이단자 무리 손에 놓여 있다.”
호메이니는 죽는 순간까지도 무슬림이라면 이슬람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사우디 독재 왕정을 저주하며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문하였다. 양국은 1988년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1991년에 복원하였다.
“피곤하니 더 이상 싸우지 말자”
사우디와 이란은 2011년 시리아 내전, 2015년 예멘 내전에서 반대편에 섰다. 그런데 이제 다시 화해하면서 시리아와 예멘이 내전 종식 단계로 들어섰다. 석유 없는 경제가 골자인 미래비전 2030의 핵심 네옴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사우디는 먼저 무엇보다도 2019년 아람코 유전을 파괴한 적이 있는 예멘 반군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다.
이란은 사우디가 2억5000만 달러(약 3260억원)를 지원한 이란인터내셔날이라는 매체의 반(反) 이란 여론전을 막아야 한다. 막대한 자금을 써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을 낱낱이 파헤쳐 알릴 뿐 아니라, 히잡 시위와 같은 반정부 움직임이 잠잠해지려고 하면 다시 불씨를 되살리는 이란인터내셔날을 막지 못할 경우 정권 안위가 위태로울 수 있다. 따라서 양국의 데탕트는 서로 피곤하니 더는 싸우지 말자는 암묵적인 동의 아래 이루어진 차가운 평화다.
사우디와 이란이, 아랍연맹 회원 10개국과 시리아가, 카타르와 바레인이 서로 화해의 악수를 하면서 중동이 요동치고 있다. 더 싸우기에는 출혈이 너무 클 뿐 아니라, 이제는 서로 싸울 기력조차 없이 모두 지쳤다. 힘을 충전하면 다시 으르렁거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지금 방전 상태가 심각하다. 모두 꽃길을 걸으며 웃을 수는 없지만, 꽃이 나오는 흙만은 당분간 망치지는 말자고 동의했다. 차가운 평화의 중동, 조심스레 지켜볼 일이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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