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의 이코노믹스] 미 혼자 아닌 우방 함께하는 ‘프렌드쇼어링’이 해법

2023. 4. 18.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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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지원법이 한·미 모두에 이익 되려면


김두식 테크앤트레이드연구원·상임대표·변호사
미국이 자국 땅에 반도체 제조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올인’하고 있다. 지금까지 주로 반도체 설계만 하고 생산은 대만이나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 의존해 오던 미국이 반도체 직접 생산을 크게 늘리겠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12% 수준인 미국의 시장점유율을 2030년경까지 20%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계획의 주된 실행수단이 ‘칩스(CHIPS)법’이라 불리는 반도체 지원법이다.

「 미국 반도체 생산비용 낮아지고
양질의 인력 있어야 생태계 가능

초과이익 환수는 투자 의욕 꺾어
무리한 기밀자료 요구 철회해야

한국의 대중 수출통제 유예하고
차세대 기술개발 실질 협력 필요

반도체 보조금 경쟁 부른 미국

이코노믹스

그런데 미국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미국 이외의 주요 반도체 생산국들도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미국 스스로 전 세계적인 보조금 경쟁을 촉발했다. 미국의 강력한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반도체 육성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위해 더 많은 보조금을 쏟아부을 기세다. 유럽연합도 반도체 산업에 430억 유로(약 62조원)를 지원하여 현재 10% 미만인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경기 남부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투자세액 공제 등을 통해 반도체 산업 지원에 나선 상황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았던 일본도 시스템 반도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부흥을 외치고 있다. 홋카이도에 건설하고 있는 라피더스 공장은 2㎚(나노미터) 초미세공장에 도전하고 있고, TSMC 구마모토 공장은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이미지 센서와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와 같은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누르고 혼자 주요 반도체 생산국으로 도약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 내부적으로 극복해야 할 장애도 많다. 527억 달러에 달하는 반도체 관련 보조금과 25% 세액공제 혜택만으로 미국 땅에 반도체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비용이 경쟁국 수준으로 낮아지고 양질의 반도체 인력이 공급되지 않는 한, 지속가능한 반도체 생태계가 구축되기 어렵다.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가진 한국 등 외국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의 반도체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초과이익 환수, 시장경제 원리 반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지금까지 공표된 반도체 정책을 되돌아보고 그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첫째,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대한 과도한 자료 제출 요구는 재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달 27일 발표된 반도체 보조금 신청 지침에서 미 상무부는 보조금 지원 대상 사업의 사업성을 평가한다는 이유로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 크기별 생산능력·가동률·연도별 생산량과 판매가격의 변화·예상 현금흐름 등 재무정보는 물론, 반도체 수율과 반도체 소재 및 소모품 내역 같은 핵심 기술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사업성을 평가하기 위한 자료라고 하기에는 과도한 요구다. 한번 제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측자료를 계속 미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미국 내에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기업 비밀이 보호되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무리한 기밀자료 요구는 철회되어야 한다.

둘째, 초과이익 환수 조건도 철회하는 것이 옳다. 미 정부는 지난 2월 상무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 고시를 통해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로부터 전망치를 넘는 초과이익 일부를 거둬들여 미국 내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애당초 기업의 이익 전망치를 기준으로 초과수익을 계산하여 이를 정부가 가져가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경기순환이 심한 반도체 산업에서 이익 전망치 자체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초과이익이 있으면 막대한 설비투자 자금으로 쓰이도록 해야 한다. 게다가 정부가 주주로서 이익 배당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단지 보조금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이익 일부를 가져가겠다는 것은 시장경제원리나 보편적인 회사법 원칙에 반한다. 마치 민간기업을 국영기업처럼 취급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은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는 초과이익 환수 조건을 거둬들여야 한다.

한국, 미 반도체 전략의 최적 파트너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셋째, 미국은 자국 중심의 반도체 리쇼어링(reshoring) 대신, 우방국과 함께 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정책으로 궤도 수정해야 한다. 미국은 반도체에 관한 모든 것을 미국 땅에서 혼자 다 하겠다는 목표를 공표했다. 하지만 이런 미국 중심의 리쇼어링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반도체 산업은 이미 국제 분업이 정착됐고 글로벌 분업과 협력의 효과는 검증됐다. 한국은 미국의 우방으로, 미국이 안보적 관점에서 취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전략에 기본적으로 동조하고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최강국으로 이 분야에서 미국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전 세계 최첨단 시스템 반도체의 92%를 공급하는 대만처럼 공급망을 독점하고 있지도 않다. 한국은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전략을 실현하는 데 최적의 파트너라 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을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로 인정하고, 한국과 반도체 분업과 공급망 구축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시각에서 미국의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양국에 함께 이익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미국이 한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면서 미국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프렌드쇼어링’이 될 것이다.

중국 내 생산 제한 대비할 시간 필요

이런 관점에서 미국은 한국업체들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이 급격히 위축되지 않도록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미·중 대립 속에서도 중국은 여전히 한국 반도체의 핵심 이익이 걸린 나라다.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플래시 제품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5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반도체 완제품·소재·장비 등 전 분야에서 우리의 최대 수출 대상국이다. 한국업체들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이 급격히 축소될 경우 한국은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은 작년 10월 18㎚ 이하의 D램 및 128단 이상의 낸드플래시 생산공정에 필요한 반도체 제조 장비 및 부품, 인공지능(AI) 연산 등에 사용되는 초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중국 우시 공장에서 15㎚급 D램을 생산하고 있는 SK하이닉스, 시안 공장에서 128단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수출통제 대상에 해당한다. 미국의 가드레일 규정안은 한국 업체들의 중국 내 생산능력 확대를 10년간 5% 이내로 제한하여 일견 현상 유지를 허용한 것 같지만, 미국의 수출통제로 기술적 업그레이드가 제약을 받으면 한국업체들의 중국 공장은 범용 반도체 공장으로 급속히 전락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국업체들이 중국 내 생산 제한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업체들이 작년 10월 1년간 유예받은 수출통제를 상당 기간 다시 유예해 주어야 한다. 유예기간은 기술 업그레이드 주기를 고려해 최소 3년이 되어야 한다. 수출통제를 유예하더라도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갈 리 없다. 한국 업체들이 미국에서 받는 보조금은 현지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 중국에 있는 메모리 공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미래 반도체 개발 참여 조건 명확해야

다음으로, 한·미 양국은 미국에서의 반도체 관련 기술 연구 개발에 한국 기업과 연구소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연구성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절차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미국의 차세대 반도체 기술 및 양자 컴퓨팅 연구에 한국 기업과 연구소 등이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다면 이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중요한 명분이 될 것이다.

미국은 국가 반도체기술센터(NSTC)를 설립하여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을 총괄하도록 할 계획이다. NSTC는 민간기업이나 연구소가 참여하는 민관 컨소시엄으로, 미래 반도체의 개발 로드맵과 표준을 정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은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내 연구 개발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반도체 기업이나 연구소의 연구 참여 절차와 조건, 연구 성과물에 대한 권리 공유 방법이나 범위 등이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을 명확히 정리하여 양국 간 반도체 기술 협력이 실질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양국 간 반도체 기술협력은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을 한·미 모두에 이익이 되도록 하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다.

김두식 테크앤트레이드연구원 상임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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