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트&디자인] 후지와라의 ‘후(Who)’, 한없이 가볍고 또 무거운
만화 주인공 같은 곰이 남성 소변기 위에 몸을 담그고 있습니다. 개념미술의 창시자 마르셀 뒤샹의 문제적 작품 ‘샘’(1917)은 이 곰에게 안락한 욕조가 되었습니다. 일본계 영국 미술가 사이먼 후지와라(41)의 작품 ‘Who’s Whorinal’(2022)입니다.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후지와라의 개인전에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넘쳐납니다.
도대체 이 곰이 누구냐고요? 후지와라 작가가 자신의 ‘아바타’처럼 창조한 캐릭터로, ‘후더 베어(Who the Bær)’ 연작에 등장하는 주인공 ‘후(Who)’입니다. 후는 2021년 밀라노 프라다재단 전시에 처음 공개됐는데요, 그의 정체성이 애매합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니고, 흑인도 백인도 아닙니다. 후는 어디든 갈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형태를 마음껏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마티스 그림으로 들어가 나체 여성 대신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모습으로 관객을 응시하고,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에 몸을 던지기도 합니다. 뭔가 말도 안 되는 장난 같죠? 그런데 이런 후에게는 그만의 서사가 있습니다.
작가는 “후가 바라는 것은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며 “그처럼 궁극의 이미지가 되는 것이야말로 현 SNS 시대에 모든 사람의 욕망”이라고 말했습니다. 후는 이미지에 집착하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입니다. 작가는 후라는 캐릭터를 통해 SNS에서 온갖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스스로 이미지 자체가 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20세기의 걸작들을 작업 안으로 끌어들인 이유도 있습니다. 후지와라는 “과거 작품들을 소재로 인종·젠더·과잉 소비주의 등 지금 우리 삶에 대해 새로운 대화를 열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후는 캐릭터라기보다 철학에 가깝다”고 말한 그는 ‘후겐하임’ ‘후티크’ ‘후니버스’ 등의 신조어로 ‘후더 베어’의 세계관을 구축하며 조각, 스톱 애니메이션으로 작업을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캐릭터 티셔츠와 스티커, 가방, 러그를 만들어 갤러리 옆 상점에서 판매도 합니다. 어디까지가 작품이고, 또 상품일까요.
후지와라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에서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그는 “미술이라는 것이 미래에도 진지한 것으로 존재할지, 아니면 오락과 패션, 테마파크처럼 변화할지 스스로 묻고 또 물어왔다”며 “내 작업엔 미술의 미래에 대한 무거운 고민이 담겼다”고 설명했습니다. 혼돈과 부조리의 세계에 의문을 품은 작가는 차라리 그 세계에 ‘풍덩’ 몸을 담그는 것으로 응답한 것일까요. 아니면 가장 날카롭게 현대사회를 통찰한 것일까요. 대중문화와 순수미술의 경계에서 놀고 있는 이 ‘모순덩어리’ 존재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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