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겨울의 행복한 북카페] 다름의 축복
책은 종종 방 한구석에서 사람을 노려보는 오래된 장난감이나 치우지 못한 빨래 같은 취급을 받는 것 같다. 언젠가는 처리해야 하는데 하는 부채감과, 일에 막상 착수하기에는 부족한 열정 같은 것이 손때처럼 묻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럴 때 세상의 샘물 같은 지혜를 지니고 있다는 책은 예비된 잔소리에 불과한 어설픈 존재가 된다. 그러나 책이 그러한가?
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책이 그런 존재가 아님을 안다. 책은 잔소리꾼이라기보다 속 깊은 수다쟁이에 가깝다. 혹은 대신 여행을 다녀와 종알종알 이야기를 들려주는 탐험가 같기도 하다. 행선지는 다양하다. 진짜로 먼 나라일 때도 있고, 지난 세기일 때도 있고, 다른 직업일 때도, 심지어 감옥일 때도 있다. 독서의 행복이란 곧 디뎌보지 못한 시간과 공간을 내 안으로 흘려보내 나의 구성 성분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데 있다.
『살아가는 책』(2023)은 책이 삶에 드나드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준다. 저자가 만나는 등장인물은 저자가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과 겹쳐지고 나눠진다. 마사 누스바움의 『감정의 격동: 사랑의 등정』 속에서 자신의 살림을 맡아주는 사람이,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 속에서 일에만 몰두하느라 좋아하는 일을 뒤로 미뤄둔 지인이 보인다.
이러한 만남은 바느질과도 비슷하다. “다른 사람에 다른 사람에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동안, 나는 다만 존재한다.”(한정원, 『시와 산책』) 혹은 길 잃기와도 비슷하다. “길을 잃으면 나를 잃고 (그런 두려운 처벌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얻는다.” 이때 책이란 비로소 다름의 축복을 내리는, 지겹고 어리석은 ‘나’를 흔들고 뒤섞는 신과 같은 존재다. 책을 읽을 이유를 반드시 꼽아야 한다면,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며, 책을 통해 잠시나마 다른 내가 될 때야 겨우 ‘나’의 삶에 질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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