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모기지
집을 담보로 받은 대출. 한국말로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다. 뜻 그대로 단어가 됐으니 복잡할 게 없다. 그런데 영어로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주택담보대출은 영어로 모기지(mortgage)다. 정확하게는 집이나 땅 같은 각종 부동산을 담보로 삼고 내주는 대출 모두를 묶어 모기지라고 한다.
이 단어의 어원이 사뭇 의미심장하다. 모기지는 죽음을 뜻하는 ‘mort’와 약속이란 의미의 ‘gage’가 붙어 탄생했다. 중세 프랑스와 영국 법률에서 쓰이던, 말 그대로 죽음의 계약이란 단어에서 출발했다.
이런 살벌한 용어가 부동산담보대출이란 뜻으로 발전한 원리는 17세기 영국 법률가인 에드워드 코크가 쓴 『영국법 제요』에 상세히 나와 있다. ‘만약 돈을 제때 갚지 않으면 담보로 잡혀있는 땅을 영원히 빼앗겨 채무자의 권리가 소실(dead)되고, 잘 갚으면 채권자의 담보권이 소실(dead)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채권자든 채무자든 누구 하나의 권리가 영원히 사라져야 끝나는 계약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현 제도와 별다를 게 없는 원리지만, 주담대 ‘족쇄’에 묶인 영끌족이라면 간담이 서늘할 뜻풀이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올해 3월 말 주담대 잔액은 800조원을 넘어섰다. 주춤하는 듯하던 주담대가 다시 늘기 시작해, 한 달 새 2조3000억원이 더 쌓였다. 고금리 충격에 지난해 주택가격이 급하게 무너지기 시작하자 정부는 정공법 대신 빚을 내 빚을 막는 ‘돌려막기’ 전략을 선택했다.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특례보금자리론을 풀었다. 은행을 압박해 대출금리도 낮췄다. 은행권 대출금리(하단 기준 연 3.6%)가 한은 기준금리(3.5%)와 맞먹는 기묘한 상황까지 연출됐다.
정부 전략은 통했다.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멈췄고, 거래에도 숨통이 트였다. 늘어난 대출이 뒷받침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모기지는 언제나 이름값을 했다. 건실한 대출자에겐 집과 땅과 부를 안겼지만, 아닐 때는 모든 걸 앗아갔다.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터진 일본이 그랬고,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도 경험했다. 최악으로 부풀고 있는 한국의 가계 빚이 그냥 사그라들 리 없다. 머지않아 맞닥뜨릴 심판의 날이 너무 혹독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조현숙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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