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영화들 공통점은? 감독-배우 N번째 만남
전도연이 킬러로 변신해 화제가 된 넷플릭스 ‘길복순’(감독 변성현)부터 올해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거미집’(감독 김지운), 할리우드 최고의 연기파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가 캐스팅된 ‘호프’(HOPE, 감독 나홍진)까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이들 영화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각 영화의 감독들과 과거 이미 합을 맞춘 이력이 있는 배우들이 재차 캐스팅됐다는 것. ‘길복순’에서 복순(전도연)이 속한 청부살인업체 대표 차민규를 연기한 설경구는 변성현 감독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 ‘킹메이커’(2022)에 이어 세 번째로 합을 맞췄고, ‘거미집’의 송강호는 김지운 감독 작품에 벌써 다섯 번째 출연이다.
나홍진 감독의 오컬트 영화 ‘곡성’ (2016)에서 무속인으로 분했던 황정민은 ‘호프’에선 경찰 역할에 캐스팅됐다. 영화계에서 감독이 자신의 영화 세계를 대변하는 소위 ‘페르소나’와 같은 배우를 두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화제작들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이어지면서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유명 감독·배우 콤비 사례가 계속해서 누적되는 건 기본적으로 한번 합을 맞춰본 사이에서 신뢰도 싹트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의 인연은 두 사람 모두 영화계 초년병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감독은 장편 데뷔작 ‘조용한 가족’(1998)에 당시 영화배우로 갓 데뷔했던 송강호를 조연으로 캐스팅했고, 자신의 두 번째 장편영화 ‘반칙왕’(2000)에 단독 주연으로 내세웠다. 이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과 ‘밀정’(2016)까지, 코미디·서부극·시대극으로 변화무쌍하게 장르를 넘나들며 송강호란 배우를 꾸준히 출연시켰다.
대학(중앙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관계인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 역시 다섯 작품을 함께한 경우다. 윤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부터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2012), ‘군도’(2014) 등 내리 네 작품을 함께 찍었고, 지난해 넷플릭스 ‘수리남’으로 첫 OTT 시리즈물에도 같이 도전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윤 감독과 하정우는 서로를 향해 “내가 가장 잘 아는 배우” “나를 가장 잘 아는 감독”이라 표현하며 친근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한번 형성된 감독과 배우 간 신뢰는 신진 감독에게 자신의 영화 세계를 구현할 든든한 동력이 돼준다. 예컨대 장편 데뷔작 ‘도희야’(2014)에 이어 ‘다음 소희’(2022)에서도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담은 정주리 감독은 두 작품에서 잇달아 배두나를 경찰 역으로 캐스팅했다. 저예산 영화 ‘도희야’에 개런티 없이 출연했던 배두나는 정 감독이 구상 때부터 자신을 떠올리며 쓴 ‘다음 소희’ 역시 시나리오에 담긴 주제의식에 공감해 읽자마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각광받은 젊은 감독 변성현은 슬럼프에 빠져있던 설경구를 ‘불한당’을 통해 ‘지천명 아이돌’로 탈바꿈시킨 데 이어 걸출한 정치인(‘킹메이커’), 사랑에 빠진 킬러(‘길복순’) 등으로 캐릭터를 바꿔가며 자신의 세계에 등장시켰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페르소나가 있는 감독들은 대개 연출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각본도 쓰는, 일관된 영화 세계가 있는 경우”라며 “이들은 자신의 영화적 주제나 색깔을 가장 잘 이해하고 구현해낼 수 있는 배우와 작업하길 바라기 때문에 특정 배우와의 협업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처럼 반복되는 콤비가 관객들에게는 자칫 기시감을 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같은 조합이라도 변주를 주는 데 성공한다면 관객들이 흥미로워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저 감독, 또 비슷한 거 찍었네’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변 감독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설경구-변성현 조합은 그만 봤으면 좋겠다’는 글을 봤다. 정말 그만 하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청개구리 심보가 있어 ‘그럼 더 해봐야겠다’ 싶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허 평론가는 “지금 한국 영화에서 페르소나로 거론되는 배우들은 모두 옛날부터 잘 나가던 이들이라는 점에서 세대 다양성이 아쉽다”며 “20~30대 배우들도 한 감독과 꾸준한 협업 하에 활약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의 영화들이 나와야 해외 작품에 빼앗긴 젊은 관객층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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