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우생순 “인기 없어도 내가 좋으니 괜찮다”
김민서(19·삼척시청)는 2004년생이다. 한국 여자핸드볼은 그해 아테네올림픽에서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신화를 썼다. 결승에서 유럽 최강팀 덴마크와 연장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부상과 체력적 한계를 이겨낸 여자 핸드볼의 투혼에 온 국민이 갈채를 보냈다.
그 후 18년이 지난 2022년 8월, 한국 여자핸드볼은 세계청소년선수권 결승에서 덴마크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비유럽 국가로는 최초로 우승하는 역사를 쓰면서 선배들의 한을 풀었다. 당시 황지정보산업고 3학년이던 김민서는 바로 그 대회 MVP로 뽑혔다. 아시아에서 온 키 1m60㎝의 단신 공격수가 평균 신장 1m74㎝의 덴마크 선수들을 제치고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 것이다. 김민서는 “현지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대회가 끝날 때는 모두가 우리를 보며 술렁였다. 뿌듯했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도 김민서는 두 달 뒤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7순위로 이름이 불렸다. 지난해 2위 팀인 삼척시청의 지명 차례가 올 때까지 6개 팀이 김민서를 패스했다. 역시나 1m60㎝의 작은 키가 문제였던 거다. 그래도 김민서는 “하나도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팀에 갈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는 “원래 어릴 때부터 작은 편이었다. ‘키가 더 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은 중학교 때 그만뒀다”며 “고등학교 때부터는 키에 신경 쓰지 않고 내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김민서가 가세한 삼척시청은 지난 16일 끝난 2022~23 SK핸드볼코리아리그 여자부에서 16승 2무 3패로 정규리그 1위(승점 34)를 차지했다. 김민서는 전매특허인 반 박자 빠른 슈팅과 센스 있는 패스를 앞세워 펄펄 날았다. 142득점으로 2위, 어시스트 97개로 4위에 오르며 신인 돌풍을 일으켰다. 2013년 이효진이 경남개발공사 소속으로 남긴 역대 여자부 신인 한 시즌 최다 득점(133골)과 어시스트(66개)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정규리그 MVP 투표에서는 9표를 받아 강경민(광주도시공사·17표)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민서는 “성인 무대는 처음이라 어렵기도 했지만, 언니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며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잘하고 싶다”고 했다.
김민서는 강원도 태백 출신이다. 황지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핸드볼부 감독의 권유를 받았지만, 부모의 반대로 마음을 접었다. 그러나 1년 뒤, 절친한 친구 신재연(한국체대)이 “같이 핸드볼 하자”고 제안했다.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함께 공을 잡았다. 김민서와 신재연은 그 후 최고의 콤비가 됐다. 세연중과 황지고의 주축 멤버로 활약하면서 전국을 제패했다.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도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고 우승을 합작했다. 신재연은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했지만, 둘의 우정은 여전하다. 이계성 삼척시청 감독은 “김민서가 학창시절에 우승을 많이 해봐서 그런지, 이기는 법을 안다”며 “핸드볼 자체를 이해하고 플레이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득점도 잘하지만, 어시스트가 많다”고 칭찬했다.
삼척시청 입단이 김민서에게 행운인 이유 중 하나는 ‘리빙 레전드’ 김온아(35)의 존재다. 국가대표 간판이자 같은 센터백인 김온아는 김민서의 롤 모델이다. 김민서는 “온아 언니 곁에서 운동하면서 배울 게 많다”며 “확실히 시야가 넓고 경기 조율을 잘하신다. 경기 중 내 플레이만 하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언니가 알려주셔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핸드볼은 여전히 ‘비인기 종목’으로 불린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종합 대회에서 반짝 관심을 받고, 그마저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뒷전으로 밀린다. 과거 많은 선수가 서러움을 토로했다. 김민서는 어땠을까. 그는 “내가 핸드볼을 정말 좋아해서 괜찮다”고 했다. “핸드볼은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재밌는 종목이다. 핸드볼을 하는 순간이 늘 가장 좋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핸드볼은 김민서의 기쁨이자 꿈이다. 김민서는 “나도 ‘우생순’ 선배님들처럼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따는 게 목표”라며 “한국 선수들은 체격은 작아도 발이 빠르고 다부지다.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 ▶김민서는...
「 생년월일=2004년 1월 8일
신체조건=키 1m60㎝, 몸무게 58㎏
등번호·포지션=23번·센터백
출신학교=황지초-세연중-황지정보산업고
데뷔=2022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7순위)
시즌 기록=21경기 142득점 97어시스트, 슛 성공률 67.3%
경력=2022 세계여자청소년핸드볼선수권 우승·MVP
2022-2023 SK핸드볼코리아리그 득점 2위, 어시스트 4위
」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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