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경기 침체, 나쁜 경기 침체 [임상균 칼럼]
개장 초반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됐다.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 예상치 5.2%보다 낮았고, 전월 6%보다 많이 내려왔다. 증시는 환호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 지속적인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고 득의양양했다.
하지만 장 후반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이 공개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올 하반기 미국 경제가 완만한 침체기에 접어들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부 위원은 은행 위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금리 인상의 중단을 확신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증시에는 갑자기 매물이 쏟아졌고 결국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마이너스로 마감됐다.
시장 시선은 이미 ‘금리’에서 ‘경기’로 옮겨 있었다. 긴축의 중단은 당연한 거고, 경기 침체(Recession)가 어떤 강도로 올지를 주목하고 있다는 얘기다. 흔히 ‘인플레는 경기 침체의 씨앗’이라고 표현한다. 물가 상승이 본격화하면 이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금리 상승은 소비와 기업 투자의 위축으로 연결되며, 기업 실적이 악화되면서 고용을 줄이면 다시 소비가 줄어드는 경기 침체기에 진입한다.
미국의 3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2.7%로 예상치(3%)를 밑돌고, 전월(4.9%)보다는 크게 낮아졌다.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 역시 23만9000건으로 전주(22만8000건)보다 크게 높아졌다. 연준 의사록은 이번 경기 침체가 2년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이미 경기 침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통상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분기 연속 감소하면 경기 침체에 들어갔다고 판단한다.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4%였다. 민간 소비가 0.4% 감소하고 특히 수출이 5.8% 줄어들며 부진했던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올 1분기 GDP 성장률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전분기 대비 역성장이 확실하다. 수출 부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경기 침체의 질이 중요하다. 경기 침체의 정의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경기 하강 국면으로 들어서는 전환 단계, 즉 경기 후퇴의 초기 국면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본격적인 경기 불황(Depression)에 비하면 완만하고 골짜기도 얕다.
다른 측면에서는 경기 순환 사이클의 한 국면으로 최고 호황기에서 정점을 찍은 후 생산 활동 저하, 실업률 상승 등이 발생하며 침체기로 들어선다고 해석한다. 이 분석에 따르면 불황(Depression) → 회복(Recovery) → 호황(Prosperity) → 후퇴(Recession)로 이어지는 순환 과정의 하나다.
분명한 것은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위기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이다. 일본이 겪었던 장기간 제로 물가-제로 성장이 거듭되는 디플레이션(Deflation)과도 구별해야 한다.
경기 침체가 불황이나 경제위기, 디플레 등으로 연결될 수 있는 초입인 것은 분명하다. 더 악화되지 않도록 사전 작업을 전개해 회복기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몫은 중앙은행과 정부다. 5월 FOMC가 주목되는 이유다. 좋은 경기 침체냐 나쁜 경기 침체냐를 판단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5호 (2023.04.19~2023.04.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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