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스타트업 직원은 어떻게 '빌라왕 피해자'가 됐나
[이성영 기자]
최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소식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미추홀구 건축왕'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30대 여성 박아무개씨는 17일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고, 병원 이송 중 사망했다. 현장에선 유서가 발견됐다고 알려졌다. 이는 지난 2월 28일, 4월 14일 또다른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사망 소식 이후 벌써 세 번째다.
이처럼, 2022년 하반기 깡통전세 물량이 급증하면서 전세사기가 부동산시장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지만, 해결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알려진 주택만 1139채를 보유한 '빌라왕' 김대성도 전세사기의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2022년 10월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그가 소유했던 주택에 거주하던 임차인들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지난 3월말 김대성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에서 활동하는 이철빈씨를 만나 전세사기의 자초지종과 피해자들이 원하는 대책을 들어보았다.
▲ 김대성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이철빈 씨 |
ⓒ 이성영 |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빌라왕 김대성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 이철빈이라고 합니다. 부동산 IT 스타트업에서 공간 대여 플랫폼 서비스 지원을 맡고 있어요."
- 전세사기 피해자가 됐습니다.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주신다면?
"2019년부터 셰어하우스에 살았는데 2021년부터는 혼자 공간을 쓰고 싶기도 하고,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기도 해서 전세 계약을 하려고 했어요. 전세 계약 준비하면서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 꼼꼼히 살피고, 공인중개사 끼고 계약하고, 은행 대출도 잘 살펴보는 등 흔히 알려진 것들 다 했고요. 경험 많은 지인들한테도 물어보고 계약할 때도 서류도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고 결혼도 미뤄졌습니다.
계약할 때는 서류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고 권리관계도 깨끗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세금 체납이 알려진 것만 무려 63억 원 이상 있었고 전세보증보험은 가입이 안 되는 상태였어요. 전세보증보험은 집주인이 가입하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까 제가 계약할 시점에는 이미 집주인이 보증보험 블랙리스트에 올라 가입 제한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애초에 가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어요.
제가 계약하고 입주한 시점이 2021년 11월이었는데요. 집주인이 계속 보증보험을 가입해주지 않았습니다. 독촉하다가 보증보험 가입이 차일피일 미뤄져서 2022년 2월 즈음에 등기부등본 한 번 더 떼봤어요. 혹시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세무서 압류가 딱 걸려 있더라고요. 집주인한테 전화해서 체납 왜 걸렸냐 문의했는데, '종부세가 너무 많이 나왔는데 납세하겠다'라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더라고요. 그 후로는 한 번도 통화에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 깡통전세, 전세사기 문제는 사회적 재난으로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많은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도 피해자가 되기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했습니다. 보증보험 딱 하나 못 했죠. 그건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전세사기를 당하고 나니까 제가 했던 게 다 부질없더라고요.
계약하기 전에 집주인이 세금을 얼마나 체납했는지 알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최근에 법이 개정되어서 일부 개선된 점은 있지만 아직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저의 경우는 아니지만 김대성 전세사기 피해자들 중에 3분의 2 정도는 김대성과 직접 계약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전 집주인들과 계약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유권이 처음 보는 전세사기범한테 넘어간 케이스입니다.
김대성이 체납한 세금이 수십억 원인데, 그가 집을 매매하거나 경제활동을 하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양도세, 종부세를 체납해도, 집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제재도 없었다는 것만 봐도 부동산 거래 구조가 얼마나 이상한지 알 수 있습니다. 임차인이 경매를 신청하면 체납한 세액을 최우선으로 변제해야 한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죠. 국가가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으면서 받아야 할 세금은 꼬박꼬박 다 받아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황당하죠."
(*기획재정부는 전세사기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 2022년 9월 ▲전세금에 대해선 경매·공매 단계에서 적용하는 세금 우선 변제 원칙에 예외를 두기로 하고, ▲주택임대차 계약일부터 임차 개시일까지 임차인이 임대인 동의 없이 미납조세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관련 내용을 담은 국세징수법 개정안 등은 지난 2022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 '사적인 임대차 계약에 정부가 왜 개입해야 하느냐'고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유독 부동산에 대해서만 너무 사적인 영역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에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집단 식중독이 발생했어요. 그러면 개인 간의 거래로 봐서 국가가 아무 일도 안 하나요? 아니잖아요. 식중독이 발생했으면 역학조사를 하고 식자재에 문제가 있었다면 가게에 대해서 행정 책임을 부과하잖아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원산지를 표기하고, 건강하게 위생 상태 유지하도록 관리 감독하잖아요. 그런데 왜 부동산에 대해서는 그걸 하지 않냐는 얘기예요. 특히, 부동산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올바른 시장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 국가의 책임 또한 막중합니다.
제가 정보를 모두 볼 수 있고, 그것들을 인지했음에도 계약을 했다면 그건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개인이 노력을 정말 많이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계약 과정에서 정보 비대칭이 너무 강하고, 임대인 위주로 운영되는 등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세금, 임대사업자 등록제도, 보증가입 의무 등 국가의 관리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전세사기범들이 편하게 전세 세입자들을 등쳐 먹을 수 있었던 구조였습니다. 때문에 이런 구조를 방치해 온 국가에서 책임감 있는 수습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봅니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세입자 증언대회에서 발언 |
ⓒ 참여연대 |
- 전세사기 피해 사례가 너무 다양해서 일괄적인 대책 마련이 쉽지 않긴 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정부에 꼭 요청하고픈 부분을 말씀해주신다면?
"정부가 제발 피해 현황부터 파악했으면 합니다. 지금 재난이 벌어졌는데 무슨 상황인지 누구도 정확히 몰라요. 저희도 몰라서 답답한데 정부는 자꾸 모른다고 합니다. 정부에서 알려고 하면 알 수 있어요. 등기, 전월세 신고, 구청의 임대차 신고 시스템, 국세청의 세무관리, 경찰 수사망, 허그 보증보험 가입 관리 체계들을 다 조합하면 알 수 있거든요.
피해자들이 피해 현황 파악해달라고 하면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어렵다고만 합니다. 개인 신상 정보를 대중들에게 공표하라는 게 아니거든요. 정부가 현황조사를 하지 않으니까 민간에서 그 일을 해요. 민간의 빅데이터 기업들과 연구팀들이 악성 임대인들이 전국에 얼마나 있고 이들이 소유한 주택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민간에서도 하는데 정보를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에서도 하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피해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유형별로 세분화해서 맞춤형 대책을 짜는 게 제일 기본이고, 상식입니다.
두 번째는 전세사기 임대인의 세금 체납 문제를 국가가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세금이 체납되면 무조건 경매가 개시될 때 최우선으로 세금을 떼어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법 개정안 시행을 통해) 4월부터는 일부 개선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약하기 전에 이미 집주인이 체납했던 세금이 있다면(주택 임차 보증금의 전세 확정일자 보다 먼저 발생한 세금) 이 세금은 나중에 제가 경매 신청을 해서 낙찰되면 여전히 최우선으로 가져갑니다. 문제는 집주인이 체납한 세액이 덩어리가 커서 몇 억, 몇십 억이 됐다고 하더라도 경매 낙찰 시 최우선으로 가져갑니다.
지금 제 경우도 집주인이 체납한 세액이 2021년 말 기준으로 63억 원이 넘는데요. 2020년 12월에 설정된 2억 5000만 원 체납세액에 대한 조세채권이 하나 있어요. 이 조세채권이 대부분의 김대성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보증금보다 크거든요. 그러면 경매를 해봤자 경매 주택을 팔아서 얻는 돈보다 세금이 더 많아서 경매 자체가 실익이 없습니다. 그러면 법원에서 경매를 진행시키지 않습니다. 경매가 취소가 되고 공매도 열리지 않아요. 그러면 저는 합법적으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습니다.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국가가 손을 놓고 있으면 그 사이에 대출 상환은 돌아오고 피해자는 피해를 모두 다 뒤집어쓰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험에 처합니다.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빚더미에 앉고, 집도 제 소유가 아니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조세채권으로 인해 경매가 진행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주셨으면 합니다.
세 번째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해 공공에서 매입하는 걸 적극적으로 검토를 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공공에서 제값 주고 다 사가라는 요구까지는 안 합니다. 피해자들이 임차 보증금을 일부라도 건질 수 있게끔 공공에서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안, 예를 들어 주택 자체를 매입하든지 아니면 임차보증금 채권을 공공에서 매입하는 방안을 찾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공공에서 피해주택을 매입해서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것이 장기적인 주거 안정 관점에서 확실한 방법이 됩니다.
네 번째로는 전세계약 제도에 대한 문턱이 높아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세사기를 당해보니, 정말 사람이 겪어서는 안 될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세계약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전세계약의 문턱을 높여야 되고 그 방안으로 전세계약금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계약금 전액을 임대인의 통장으로 바로 송금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보증기관에 계약금을 예치하고 보증기관에서 이 주택이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지 판단한 다음에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하다고 하면 임대인에게 이체하는 게 아니라 임차인한테 돈을 반환하라고 계약을 파기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면 전세 계약이 안 되게끔 구조를 짜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행진에 참석 |
ⓒ 참여연대 |
- 쉽지 않은 일을 겪고 있습니다. 자책하는 피해자들이 많을 텐데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세요.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사람들한테 솔직하게 털어놓고 위로 받으시고 도움을 받으셔야 됩니다. 혼자서 끙끙거릴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개인이 부주의하거나 못나서 겪는 문제가 절대 아니고 사회가 방치했던 문제에 정말 운이 나쁘게도 저와 여러분이 겪는 문제입니다.
개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국가에서 정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주변인들은 피해자를 정말 신경을 많이 써주고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셔야 합니다. 숨지 마시고 당당하게 나와서 얘기해 주세요. 전세사기 피해를 지원하는 시민단체도 좋고요, 정부나 각 지자체에서 설치한 지원센터들이 많이 생기고 있으니까 거기에 가서 털어놓으셔도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릴 거에요. 잘 먹고 잘 지내면서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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