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놓고 사우디와 멀어진 美, 그 틈새 파고든 中

이광수 2023. 4. 17.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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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왜 요동치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7월 15일(현지시간) 제다 왕궁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국제유가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은 단순히 원유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자의 손익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각국 중앙은행이 총력을 다해 잡으려는 인플레이션을 다시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우려가 크다. 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줄이는 과정에서 고금리와 실직 등으로 인한 고통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 13일 배럴당 83.26달러에 마감하며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한 후 줄곧 8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WTI는 지난해 11월부터 안정세를 보였다. 지난달에는 배럴당 60달러 선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단숨에 80달러 선을 넘어 거래되고 있다. 브렌트유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배럴당 70달러 선까지 내려갔던 브렌트유는 80달러 위로 치솟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OPEC+의 깜짝 감산 발표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 회원국은 지난 2일 기습적으로 자발적 감산을 발표했다. 당장 다음 달부터 하루에 116만 배럴을 감산하겠다는 것이다. 기간은 연말까지다. 감산을 주도한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해 이라크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8개국이 참여했다. OPEC+는 이미 지난해 11월 하루 200만 배럴의 감산을 발표한 바 있다. 내달부터 연말까지 OPEC+는 하루 316만 배럴의 감산에 돌입한다. 316만 배럴은 글로벌 원유 수요의 약 3%가 넘는 수준이다.


OPEC+의 이번 결정은 유가방어 차원으로 해석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와 경기 침체 우려로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에 대비해 산유국들이 선제 조치를 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는 인플레이션 감축에 안간힘을 쓴 미국 등 주요국 노력과는 반대되는 움직임이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물가 안정을 위해 유가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 바이든 정부에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라며 “미국과 비(非)미국 산유국들의 관계가 악화될 소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의 관심은 지금까지 산유국들의 정책에 간섭해온 미국의 입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4월 OPEC에 전화해 유가를 낮추라고 말했다. 산유국의 증산 여부와 무관하게 그가 OPEC에 전화했다는 뉴스만으로 국제유가는 하락했다.

균열 시작된 미국-사우디 동맹

하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달랐다. OPEC+의 감산 발표 다음 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OPEC+의 감산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중국과 가까워지는 사우디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미국의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사우디와 미국은 1974년에 ‘페트로달러(Petro dollar) 협정’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으로 가까워졌다. 이 협정은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사우디가 원유를 사고팔 때 미국 달러만 쓰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은 페트로 달러로 기축통화 지위를 한층 더 강화했다.

하지만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으로 사우디로부터 사들이는 원유 규모가 줄었고, 바이든 대통령이 2019년 언론인 카슈크지 암살과 관련해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를 배후로 지목하며 어색한 사이가 됐다. 그 사이 사우디는 중국과 가까워졌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 됐다.

사우디는 중국이 주도하는 안보 경제 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에 협상 파트너로 참여하기로 했다. 전 연구원은 “최근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회복, 중국의 중동 내 영향력 확대 등으로 중동 국가 간 연대가 강화됐다”며 “감산 움직임도 다소 수월하게 전개됐을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급등은 아니지만 상방 압력 높다

OPEC+의 감산 발표 이후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가 올해 말 배럴당 95달러, 내년 말에는 100달러까지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은행도 16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향후 국제유가 상방 압력이 다소 우세하다고 진단했다. 공급 부분에서는 서방의 러시아 제재 이후 석유 교역 구조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러시아산 원유 공급의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봤다. 또 수요 측면에서는 중국의 석유 수요 회복 규모가 유가의 추가 상승 폭을 결정하는 주요 원인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국내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감산이 국제유가 하단을 확인시켜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앞으로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밑돌면 현재 수준보다 더 강도 높은 감산을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며 “올해 국제유가 흐름은 ‘상저하고’ 흐름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만 비(非)OPEC 국가의 증산과 경기 둔화 등은 유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 산유국이 실제로 뜻밖의 증산을 해 OPEC+의 감산 충격이 완화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임환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세계 원유 수요는 경제성장률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에 따르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작년 3.2%에서 올해 2.6%로 둔화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올해 원유 수요 증가 속도 역시 둔화가 예상된다”면서 유가 급등 가능성은 작다고 전망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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