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다니는 배낭여행객에게 필요한 것
[차노휘 기자]
▲ 이집트 카이로에서. |
ⓒ 차노휘 |
▲ 요르단 암만 올드시티 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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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남자가 넝쿨을 밟지만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넝쿨 가시가 스니커즈 천을 뚫고 남자의 발가락을 찔렀다. 그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신음을 뱉었다. 걱정이 된 나는 그의 발을 들여다보았다. 잠깐의 정적. 그게 문제였다. 궁전 뒷길은 군데군데 풀이 나 있는 마른 언덕이었다. Z자로 된 돌길이 위로 향했다. 한참 발아래에 건물이 있었다. 사람 그림자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태양만 뜨겁게 달아올랐다. 겨우 머리만 그늘에 넣을 수 있는 작은 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멈춰야 했다. 그때부터였다. 그 남자가 수작을 걸기 시작한 것이.
먼저 손가락에 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 입술이 예쁘다고 했다. 어깨를 끌어당기려고도 했다. 180cm 정도 키에 탄탄하고 날렵한 몸집, 부리부리한 눈과 매부리코. 남자의 신체 조건과 힘은 나를 제압하고도 남을 거였다. 하지만 그는 가시에 찔려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그가 달렸을 때 어느 정도 속도를 낼까.
▲ 요르단 페트라 |
ⓒ 차노휘 |
요르단은 남북으로 약 460km, 동서로 약 355km 뻗어 있다. 북쪽은 시리아, 북동쪽은 이라크, 남동쪽과 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은 이스라엘을 경계로 한다. 남쪽 아카바 만에 19km의 해안선을 끼고 있을 뿐 국토 5분의 4가 사막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사막을 지나야 한다.
어느 날은 지도에서 남동쪽인 카라크(Al Karak)로 향했다. 오래된 성채가 보고 싶었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 때였을까, 모래바람이 나를 반겼다. 온통 희뿌연 바람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차체도 흔들렸다. 비상등 켠 도요타 지프가 앞서 달려가지 않았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그 불빛을 따라 모래 안개를 벗어났다.
달리다 보니 마르고 거대한 산이 내 앞에 있었다. 구불구불 오르막 도로를 액셀러레이터 밟는 발바닥 강도를 달리하며 '그야말로 구불구불' 올라갔다. 가드레일 아래가 낭떠러지인데도 그 풍경에 취했다. 낭떠러지 밑도 메마른 땅이고 그 아래아래도 마찬가지였다.
태양에 빛나는 모래 둔덕에 비현실적으로 진한 녹색을 발견한 것은 산 중턱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차를 멈췄다. 호수였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반가웠지만 함께 환호성을 질러 줄 사람은 없었다. 차도 아주 띄엄띄엄 지나갔다. 특히 외곽에서는 차 구경하기가 더 힘들었다. 처음 공항에서 만난 우버 택시 기사 아멘이 내가 요르단을 떠날 때도 배웅했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은 고작 유명한 관광지를 연결하는 도로일 뿐인데 너는 방방곡곡을 다니더라며 놀라워했다.
그래서 그럴까. 현지인들은 이방인인 여자 혼자서 운전하는 것을 신기하게 보았다. 사막을 달리다가 마을로 들어설 때가 있었다. 마을 중심인 시장을 지나면 현지인들이 나를 향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했다. 그럴 때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모른 척해 버렸다. 이곳 시장도 이집트처럼 차와 사람이 뒤엉켰다. 끼어들기도 잘하고 클랙슨 소리도 빈번했다. 제법 넓은 도로로 빠져나오면 홍차를 파는 남자가 차 사이를 누볐다. 그는 신호가 걸렸을 때 길쭉한 주둥이가 있는 큰 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정차된 차를 향해 찻잔을 들이밀었다.
▲ 요르단. 메마른 땅에 오아시스 같은 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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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에서 호수 사진을 찍고 돌아설 때였다. 현지인 남자들로 앞뒤 좌석을 꽉 메운 차가, 차창을 다 내리고는 나를 보았다. 그들 모두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라 두 눈만 유난히 확대되었다. 그들이 내게 말을 걸면서 속도를 줄였다.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한 가지 상황에 몇 가지 결과가 나올 경우, 당황했을 때에는 제일 좋지 않은 결과로 귀결된다. 모른 척하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웬걸, 요 남자들, 아주 천천히 운전하면서 내 진로를 방해한다. "에라, 요것들!"
▲ 이집트. 바하리아 오아시스 사막에서 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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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여자 혼자 여행을 하면 남자들에 비해 여러 힘든 일이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특히 중동을 여행한다고 하면 십에 열은 모두 '미친 짓'이라고 한다. 위의 에피소드만 든다면 그렇다. 하지만 세상은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경험 상 잘 알고 있다.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타고 24시간 정도를 가야 도착하는 이집트를 두 번이나 다녀온 이유도 좋은 사람을 그곳에서 만났기에 가능했다.
▲ 이스라엘 텔아비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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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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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낭과 여행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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