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나쁘면 돈 안 받아요"...천덕꾸러기된 공모펀드 살릴까
"수수료는 높은데 수익률은 낮고 가입하기는 불편하다."
공모펀드에 대한 투자자의 냉정한 평가다. 2008년 이후 계속 내리막을 탔던 공모펀드 설정액이 최근 100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시장의 '천덕꾸러기'였던 공모펀드가 올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스타 ‘사모펀드’가 해결사를 자처하면서다.
19일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국내 공모펀드 설정액(머니마켓펀드·상장지수펀드(ETF) 제외)은 4월 말 기준 96조9000억원으로 100조원 밑으로 내려갔다. 펀드 전성기던 2008년 172조원과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의 부침은 더하다. 2008년 말에 80조원 달했던 설정액은 올해 4월 기준 21조원까지 쪼그라들었다.
공모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수익률은 낮은데, 수수료는 높기 때문이다. 공모펀드에는 운용보수 및 판매보수 수수료율이 붙는다. 판매수수료는 최대 1%까지 운용보수는 주식형 기준으로 0.045~0.75% 정도가 붙는다.
반면 수익률은 국내 대표 지수인 코스피보다 못할 때가 더 많았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주식형 공모펀드 수익률(ETF 포함)이 코스피 수익률을 넘은 것은 최근 13년간 6번에 불과했다. 수수료가 공모펀드의 10분의 1 정도인 ETF에 투자하는 게 낫다고 하는 이유다.
공모펀드 시장의 축소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설정액이 줄고, 스타 매니저를 찾기 어려워졌다. 대부분 보수가 좋은 사모펀드 업계로 떠났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업계도 최근에는 ETF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며 공모펀드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서 공모펀드를 운용하다 사모펀드로 옮긴 배준범 블래쉬자산운용 부사장은 “간접상품 시장에서 (액티브) 공모펀드의 비중이 감소하고 그 감소분을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펀드와 ETF가 채우는 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시장이 축소하며 대부분 펀드가 벤치마크에만 집착하는 등 운용 스타일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성과는 더욱 부진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공모펀드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스타 사모펀드 운용사가 공모펀드의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서면서다. 손실이 나면 보수를 받지 않거나 운용사가 먼저 손실을 떠안는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사모펀드인 VIP자산운용은 지난 2월 'VIP THE FIRST' 공모펀드를 처음 출시해 하루 만에 300억원 어치를 '완판'시켰다. 이 펀드는 손익차등형으로, 손실이 나면 운용사가 10%까지 먼저 떠안는다. 반대로 이익은 15%까지 고객이 먼저 가져간다. ‘손익차등’형은 정부가 출시한 뉴딜펀드를 제외하면 공모펀드로는 최초다.
VIP자산운용은 ‘손실이 나면 보수’를 받지 않는 'VIP 한국형가치투자 펀드'도 지난 3일 내놨다. 이 펀드는 직전 1년 펀드 수익률에 따라 다음 분기 운용보수가 연동된다. 기본 운용보수는 연 0.8%이지만 손실이 날 경우 회복할 때까지 운용보수를 받지 않는다. 다만 판매수수료가 별도로 붙는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이 펀드에는 출시 2주차인 14일까지 311억원의 돈이 들어오며 순항 중이다.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는 “결국 핵심은 운용사만의 색깔과 철학으로 시장을 이기는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라며 "수수료를 적게 받는 건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기본을 제대로 해 공모펀드 투자자들의 신뢰를 되찾겠다”고 말했다.
기존 공모펀드 운용사도 ‘성과연동형’ 펀드를 선보이고 있다. 신한자산운용은 지난달 13일 '신한얼리버드성과연동보수 펀드'와 '신한중소형주알파성과연동보수 펀드'를 출시했다. 설정 후 1년이 되기까지는 일반 주식형펀드 대비 약 60% 수준인 0.45%와 0.44% 운용보수를 각각 받는다. 1년 뒤부터 성과에 따라 0%에서 0.9%(중소형주알파펀드의 경우 0.88%) 사이의 보수가 책정된다. 다만 ‘절대수익률’에 연동하는 VIP자산운용과 달리 코스피 지수나 코스피 중소형지수 대비 상대 수익률을 기준으로 보수가 변동되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과거 스타 매니저도 공모펀드에 출사표를 던졌다. 과거 에셋플러스자산운용에서 '1조 펀드'를 운용했던 최광욱 더제이자산운용 대표가 올 초 ‘더제이 더행복코리아증권펀드’를 출시했다. 현재 250억원가량 설정액이 모였다. ‘은둔의 고수’라고 불리는 사모펀드 DS자산운용도 상반기 안에 첫 공모펀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시장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지만 공모펀드는 자본투자시장에서 중요한 한 축이다. 정용현 KB자산운용 실장은 “공모펀드, 특히 적립식 펀드는 장기투자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고, 간접투자금이 커지면 시장 변동성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최광욱 대표도 "책임감 있고 실력 있는 펀드매니저와 함께라면 공모펀드는 최소 투자 금액이 큰 사모펀드와 달리 소액투자자도 전문가에게 돈을 맡길 수 있는 좋은 투자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측에서도 공모펀드 경쟁력 강화를 올해 업무보고 과제로 정했다. 현재 금융위원회 내에는 ‘공모펀드 경쟁력 제고 태스크포스(TF)’도 운영 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공모펀드는 장기 투자 문화 정착 등을 위해 시장에 필요성이 있다”며 “다만 활성화가 아니라 ‘경쟁력 제고’라고 이름을 정한 이유는 수수료 등 근본적으로 공모펀드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공모펀드의 체질 개선 등을 위한 다양한 대책도 시장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한 운용사 대표는 “금융소비자법 이후 펀드 가입에 필요한 약관을 읽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며 “투자자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요식 행위는 없애고 판매사가 책임감 있게 파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용현 실장은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유인은 세금”이라며 “장기 투자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부동산처럼 장기 보유에 대해서는 세재 혜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펀드를 ETF처럼 증권화해 거래할 수 있는 방안도 거론된다.
김연주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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