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우생순' 김민서 전성시대, "김온아 선배처럼 더 성장할게요"

배영은 2023. 4. 1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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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19·삼척시청)는 2004년 생이다. 한국 여자핸드볼은 그해 아테네올림픽에서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신화를 썼다. 결승에서 유럽 최강팀 덴마크와 연장 명승부를 펼친 끝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부상과 체력적 한계를 이겨낸 여자 핸드볼의 투혼에 온 국민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최근 청주 SK호크스아레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여자 핸드볼 삼척시청의 김민서. 프리랜서 김성태


그 후 18년이 지난 2022년, 한국 여자핸드볼 청소년 대표팀은 세계청소년선수권 결승에서 덴마크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비유럽 국가 최초로 우승하는 역사를 쓰면서 선배들의 한을 대신 풀었다.

당시 황지정보산업고 3학년이던 김민서는 바로 그 대회 MVP였다. 아시아에서 온 키 1m60㎝의 단신 센터백이 평균 신장 1m74㎝의 덴마크 선수들을 제치고 가장 높은 곳에 섰다. 김민서는 "현지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대회가 끝날 때는 모두가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뿌듯했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도 김민서는 두 달 뒤 열린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7순위로 호명됐다. 지난 시즌 2위 팀인 삼척시청의 지명 차례가 올 때까지 6개 팀이 김민서를 패스했다. 역시나 1m60㎝의 작은 키가 걸림돌이었던 거다.

그래도 김민서는 "하나도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팀에 갈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는 "원래 어릴 때부터 작은 편이었다. '키가 더 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은 중학교 때 그만뒀다"며 "고등학교 때부터는 키에 신경 쓰지 않고 내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최근 청주 SK호크스아레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여자 핸드볼 삼척시청의 김민서. 프리랜서 김성태


그 결과는 더할 나위 없는 '윈윈'이었다. 김민서가 가세한 삼척시청은 지난 16일 끝난 2022-2023 SK핸드볼코리아리그 여자부에서 16승 2무 3패로 승점 34를 얻어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김민서도 특유의 반 박자 빠른 슈팅과 센스 있는 패스를 앞세워 펄펄 날았다. 142득점으로 2위, 어시스트 97개로 4위에 오르며 '무서운 신인' 돌풍을 일으켰다. 2013년 이효진이 경남개발공사 소속으로 남긴 역대 여자부 신인 한 시즌 최다 득점(133골)과 어시스트(66개)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김민서는 정규리그 MVP 투표에서도 9표를 받아 강경민(광주도시공사·17표)에 이은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성인 무대는 처음이라 어렵기도 했지만, 언니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자신감도 붙은 것 같다"며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하고 싶다"고 했다.

최근 청주 SK호크스아레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여자 핸드볼 삼척시청의 김민서. 프리랜서 김성태


김민서는 강원도 태백 출신이다. 황지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핸드볼부 감독의 권유를 받았지만, 부모의 반대로 마음을 접었다. 그러나 1년 뒤, 절친한 친구 신재연(한국체대)이 "같이 핸드볼 하자"고 내민 손은 뿌리치지 못했다. 함께 공을 잡은 두 친구는 그 후 최고의 콤비가 됐다. 세연중과 황지고의 주축 멤버로 활약하면서 전국을 제패했다.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도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우승을 합작했다. 신재연은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선택했지만, 둘의 우정은 변함없이 끈끈하다.

이계성 삼척시청 감독은 "김민서가 학창시절에 우승을 많이 해봐서 그런지, 이기는 법을 안다"며 "핸드볼 자체를 이해하고 플레이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득점도 득점이지만, 어시스트가 많다"고 흐뭇해했다.

김민서가 삼척시청 입단을 행운으로 여기는 이유 중 하나는 '리빙 레전드' 김온아(35)의 존재다. 국가대표 간판이자 같은 센터백인 김온아는 김민서의 오랜 롤 모델이다. 김민서는 "온아 언니 곁에서 운동하면서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언니의 경력과 경험에서 배우는 게 많다"며 "확실히 시야가 넓고 경기 조율을 잘 하신다. 경기 중 내 플레이를 하다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언니가 잘 알려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최근 청주 SK호크스아레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여자 핸드볼 삼척시청의 김민서. 프리랜서 김성태


핸드볼은 소위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된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종합대회에서 반짝 관심을 받고, 그마저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뒷전으로 밀린다. 과거 많은 선수가 이와 관련한 서러움을 토로했다. 김민서는 어땠을까. 그는 그저 "내가 핸드볼을 정말 좋아해서 괜찮다"고 했다. "핸드볼은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재미 있는 종목이다. 늘 핸드볼을 하는 순간이 가장 좋았다"는 거다.

핸드볼은 김민서의 기쁨이자 꿈이다. 그는 "나도 '우생순' 선배님들처럼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따는 게 가장 큰 목표"라며 "한국 선수들은 체격은 작아도 발이 빠르고 다부지다. 자신감을 갖고 그날까지 더 열심히, 즐겁게 하겠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청주=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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