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면 시동도 못 걸게 하자”… 주목받는 운전 잠금장치
고(故) 배승아(9) 양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사고 이후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술을 마신 운전자는 아예 차량에 시동을 걸 수 없게 하는 장치다. 다만 이 장치를 의무화할 경우 차량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은 있다.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설치한 차량은 시동버튼을 눌러도 바로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운전자가 장치 측정부에 숨을 불어 넣은 후 혈중알코올농도 측정 결과가 기준치 이하일 경우에만 시동이 걸린다. 술을 마신 운전자가 자동차를 운행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거다.
이 장치를 차량에 설치해야 한다는 논의가 한국에서 처음 시작된 건 2009년이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사람이 신규 면허를 취득하려면 이 장치를 3년간 의무적으로 차량에 장착해야 한다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이를 막았다. 충분한 사전 연구와 국민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후 다양한 연구가 진행됐다. 전체 음주운전 사망자 수는 줄고 있지만 음주 재범률은 2019년 43.8%에서 2021년 44.8%로 오히려 늘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2021년 설문조사 결과는 국민 여론도 음주운전 시동장금장치 도입에 긍정적이란 사실을 보여준다. 당시 이 장치 도입에 찬성한 응답자는 95%에 달했다. 당시 권익위는 이런 결과를 근거로 경찰청에 음주운전 재범자에 대해 장치 도입을 권고했지만 관련법이 없는 상황에서 논의는 또 다시 벽에 부닥쳤다.
미국과 유럽 등 교통선진국 중엔 음주운전 시동장금장치를 도입한 국가가 많다. 미국은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현재 36개 주에서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이들은 이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으로 정해 놨다. 이후 음주운전 사망자 수가 약 1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는 2번 이상 혈중알코올농도 0.15%(26세 이하는 0.07%)를 넘은 음주운전자가 다시 면허를 취득하려면 차에 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완성차 업체에게 지난해 7월 이후 출시하는 모든 차량에 장치를 쉽게 장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했다.
국내 대표 음주운전 시동장금장치 제조사인 센텍코리아 관계자는 “이런 EU의 방침은 내년이나 내후년부터 각 유럽 국가에 본격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 업체가 신차에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적용하면 거기에 측정부만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도 유럽 수출용 차량에는 이 시스템 탑재를 위한 기술개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센텍코리아가 생산하는 제품은 전부 수출용이다.
한국에서도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도입을 더 이상 늦춰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다만 풀어야 할 숙제는 있다. 우선 장치의 규격을 마련하고 인증 심사를 담당할 기관이 필요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이 장치를 만드는 업체도 없었고 기술력도 부족해 전반적인 관리를 맡길 기관을 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런 점도 관련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원인이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음주 여부를 측정해 시동을 거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대안도 필요하다. 차량 가격 인상도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 생산되는 장치의 가격은 200만~250만원이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EU가 2013년에 디젤차 배기가스 규제 기준인 ‘유로6’를 도입했을 때도 매연 절감 장치를 부착하느라 자동차 가격이 크게 올랐었다”고 말했다. 다만 한 경제학 전문가는 “차량 가격 인상보다 음주사고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를 막고 경제적인 손실을 예방하는 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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