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영계 반발에 후퇴하는 ‘한국판 삭스법(K-SOX)’

김혜원,신재희 2023. 4. 1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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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재무제표 기준 내부회계관리제 ‘최장 5년 유예’ 검토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 도입한 ‘신(新)외부감사법’(이하 신외감법)이 뒷걸음질친다. 경영계 반발에 부딪혀 시행 5년 만에 ‘누더기법’으로 전락하고 있다. 신외감법의 큰 뼈대인 주기적 지정 감사는 물론 내부회계관리 제도도 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회계 개혁의 상징으로 꼽히는 ‘한국판 삭스법(K-SOX)’이 후퇴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7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9월 금융위원회에서 기업·회계업계·학계 등과 꾸린 ‘회계개혁 평가·개선 추진단’은 직전 사업연도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의 상장사를 대상으로 먼저 도입한 ‘연결 재무제표 기준 내부회계관리 제도’의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유력한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자산 규모에 따라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자산 5000억원 이상~2조원 미만 상장사에 대한 제도 도입을 최장 5년 유예하는 게 첫 번째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내부회계관리 제도는 금융당국에서 지난 2021년 시행을 일괄적으로 1년 유예했었다. 다시 미뤄지면 사실상 폐지하는 효과를 낸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영계 요구가 많아 1년, 3년, 5년 단위로 시행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추진단이 마련한 다양한 방안 가운데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추진단은 2분기 안에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두 번째는 대형 상장사를 중심으로 해외 종속회사만이라도 연결 재무제표 기준 내부회계관리 외부감사 대상에서 면제해달라는 경영계 목소리를 수용하는냐이다. 연결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상장사는 자산 규모가 클수록 해외 종속회사 수가 국내보다 많다. 관련 법규나 결산, 감사 환경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지배회사가 떠안을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다. 한 회계사는 “기업의 주요 재무정보인 연결 재무제표를 제외하고, 보조지표인 별도 재무제표에만 내부회계관리 제도의 외부감사를 수행하는 것은 모순이다. 특히 국내 기업의 해외 자회사는 회계 인프라가 부족하고 소규모 인원으로 운영돼 자금 관리 등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신외감법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내부회계관리 제도는 2018년 11월 첫발을 디딜 때 모든 상장사와 자산 1000억원 이상 비상장 주식회사로 대상을 광범위하게 설정했다. 하지만 비용 부담을 호소하는 경영계 요청과 코로나19에 따른 경영난이 맞물리면서 올해 별도 재무제표 기준 내부회계관리 제도 도입을 앞둔 1000억원 미만 상장사를 대상에서 빼는 등 ‘면죄부’를 점차 확대해왔다.

또한 대형 비상장사 범위를 자산 1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대폭 올리면서 면제 기업 수는 80%나 늘었다. 외감법과 시행령을 수시로 고치며 수천여곳의 상장사가 내부회계관리 외부감사를 받지 않도록 길을 다시 열어준 셈이다. 예외에 예외를 더하면서 회계 투명성 제고라는 본래 취지를 잃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경영계는 내부회계관리 제도와 함께 주기적 지정 감사제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난색을 표하고 있어 추진단을 중심으로 차선책을 찾는 중이다. 주기적 지정 감사제는 상장사 등이 6년 동안 감사인을 자율 선임하면, 그다음 3년은 정부에서 지정하는 감사인에게 감사를 받아야 하는 제도다. 기업과 감사인 간 유착을 끊고 회계 투명성을 높이려는 회계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기업들은 정부가 지정한 감사인이 자율 수임 대비 높은 보수를 요구해 비용 부담이 늘었다는 입장이다. 반면 해외와 비교해 관행적으로 낮았던 감사 보수를 합리화하는 과도기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주기적 지정 감사제의 경우 현행 ‘6+3’을 유지할지가 관건이다. 경영계는 ‘9+3’을 요구하고 있고, ‘6+2’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라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업에서 ‘12+3’ 이야기를 꺼낼 만큼 이해당사자 간 이견이 크다”면서 “어떤 제도를 도입하면, 한 주기가 돌고 나서 효과성 평가를 거쳐 부작용이 있다면 개선해야 하는데 다소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김혜원 신재희 기자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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