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9주기, 다투는 엄마들마저 응원하고 싶다
[김초롱 기자]
▲ 영화 <장기자랑> 스틸 이미지 |
ⓒ 영화사 진진 |
4월, 벚꽃이 만개할 때쯤이면 우리 엄마의 생신. '벚꽃이 만개하고 지기 시작하면, 자신의 생일이니까 나중에 늙어서도 잊지 마라'는 엄마의 말에, 시간이 흘러 엄마가 내 곁에 없는 봄날이 오면 벚꽃을 보며 엄마 생각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괜히 엄마에게 잔 짜증을 내버린 어느 봄날이었다.
벚꽃은 잠깐 왔다가 빠르게 사라져 버려서 찰나의 기쁨을 주고 가는데, 누군가는 그래서 의미 있다고 하지만, 그건 다 내년이 기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절은 돌고 돌아, 반드시 우리 곁에 온다는 약속을 해주니까. 그러니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집중해서 즐기자며 나서는 벚꽃 구경이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러나 계절과 달리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는, 잠깐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사라져 버린 벚꽃 같은 아이들이 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아이들.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가슴이 미어지는.
아이를 낳아 길러본 적은 없지만, 엄마의 생일 시즌 이야기를 곱씹으며 어렴풋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느낌이란 어떤 것일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벚꽃이 지고 꽃비가 되어 내리는 풍경을 보며 지난 4월의 어느 봄에 나는 영화 <장기자랑>을 향해 집을 나섰다.
"얘들아, 수학여행 가자 제주도로. 너네 엄마들이 데려가준대, 가서 너네한테 장기자랑도 보여준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결국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하고, 목포 앞바다에서 별이 되었다. 그런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들이 '연극'을 통해서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간다.
수학여행에 장기자랑이 빠질 수 없는 만큼 엄마들이 장기자랑을 준비한다. 연극에서의 배역은 모두 자신의 아이들을 대입해 아이의 꿈과 장기를 대변한다. 세월호 엄마들이 직접 출연하는 연극 <장기자랑>이 지난 몇 년 간 전국에서 공연됐다. 그리고 이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바로 <장기자랑>이다.
참사를 겪은 피해자들은 참사 이후 1년간은 현실감각 없이 그저 멍하니 지나다가, 진짜 고통은 1년 이후의 삶부터 찾아온다고 하는데 엄마들은 이 참을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의 시간에 '연극'이라는 새로움 꿈을 만난다. 그렇게 고통에서 한 걸음씩 빠져나와 일상으로 결국에 착륙해내고야 마는 '도전'을 유쾌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얼레리 꼴레리, 얘들아 너네 엄마들 싸운다 다 같이 구경하자 우리."
▲ 영화 <장기자랑> 스틸 이미지 |
ⓒ 영화사 진진 |
'나는 그냥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어요'라는 엄마의 말이 이 영화를 관통한다고 생각한다. 연극에 도전하며 운동도 하고, 노래를 배우고, 춤을 배우고, 그렇게 더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면서 서서히 고통보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지점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반가웠다. 그런 삶을 살게 되는 엄마들의 모습들 보며 나는 그저 '멋지다'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 없다. 사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엄마들이 정말 멋지다는 말을 가장 깊숙이 가슴속에 품었다. 그래서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더 평범하게 사세요. 보통 사람들처럼요. 보통 사람들은 막 욕심도 내고, 재테크도 하고, 싸우고, 갖고 싶은 것도 갖고, 먹고 싶은 거, 누리고 싶은 거 모두 바라고 꿈꿔요. 그러다가 문득 먹먹함이 급습해 슬퍼할 때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꼭 눈물만이 아니라는 다짐을 하며 지금처럼 그렇게 사시길 바랍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절대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영화 <장기자랑>을 보며, 온전히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그러나 애를 쓰면서라도 나는 4월 16일에 가서 닿고 싶다.
▲ 영화 <장기자랑> 스틸 이미지 |
ⓒ 영화사 진진 |
예진아, 동방신기 오빠들을 좋아했구나. 영화 속 너의 방에 남아있는 아이돌 사진을 보니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알겠다. 동방신기 오빠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참 좋겠네.
음악을 좋아했고, 뮤지컬 배우를 꿈꿨던 너를 위해, 너의 엄마가 연극 속에서 너 대신 너의 꿈을 펼치셔. 엄마 아빠가 사이가 너무 좋으시더구나. 너를 갖게 된 날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영화에 나와, 쑥스럽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하늘에서도 영화 보며 지켜봐 줘.
순범아, 생전에 키가 아주 컸구나. 네가 모델을 꿈꿨었다는 사실을 참사 이후에, 엄마는 알게 되셨대. 그래서 엄마는 연극 속에서 슈퍼모델을 꿈꾸는 학생으로 열연하신다. 엄마의 머리가 참사 이후 줄곧 노란 머리의 탈색모라는 사실이 엄마를 빛나게 하면서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아리게 한다. 연극 <장기자랑> 이후에 엄마의 꿈속에서 네가 다시 엄마의 뱃속으로 들어간 후, 다시는 꿈에 나타나지 않는대. 다시 한번 엄마를 보러 와주련, 그리고 엄마 담배 줄이시라고도 말해줘. 엄마가 너무 기뻐하실 것 같다.
생존해서 잘 자라준 애진아, 엄마는 유일하게 생존자의 엄마로 장기자랑에 나오시네. 네가 응급구조사가 되어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보고는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고 외쳤다. 매일을 4월 16일로 살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는 너의 엄마 말처럼, 여전히 그날처럼 살고 있는 너에게 깊은 사랑과 응원을 보내. 세상에 신이 있다는 말을 믿지는 않지만, 어쩌면 신은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는 사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널 위해 기도하는 사람 중 한 명이 꼭 되어줄게. 그래서 사는 동안 종종 신은 존재하는구나 하는 순간들을 맞이하길 바란다.
그날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아, 엄마들이 너네 데리고 수학여행 제주도로 가주신대. 가자 제주도로. 지상에서 영원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통해 나도 너희와 함께 수학여행 간다. 그리고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줄 거야. 부디 외로워 말고, 슬퍼말고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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