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갈매기] 2년간 퇴근 후 매주 2회, 손을 풀면서 알게 된 것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 <편집자말>
[박은정 기자]
매주 2회 퇴근 후엔 피아노 학원으로 간다. 복도를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며 연습실의 미닫이 문을 연다. 아이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 있는 오래된 업라이트 피아노에 앉아 악보를 펼치고 손을 푼다. 선생님이 오시면 연습 내용을 확인하고 진도를 나간다. 조금 더 연습한 뒤 그날의 수업을 마치는 일을 2년간 반복하고 있다.
작년 가을,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학위 과정을 하면서, 아이를 챙기고 개인적으로 글까지 쓰면서 정신없이 지냈다. 마침 부서 이동까지 되어 새 업무를 익히는 일로도 힘든 시기였다. 사실 피아노를 칠 여유가 없었는데도 쉰다던가 그만둘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주 1회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 학원에 갔다.
'삶의 우선순위로 따지자면 피아노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왜 이렇게 시간을 만들어서까지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갸우뚱했다. 오래전 음악 전공을 권유받긴 했지만 못 이룬 꿈 때문은 아니고, 그저 좋아서라고 '퉁' 치기엔 석연찮은 무언가가 내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
'모차르트 소나타를 친다고 밥이나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난 왜 이걸 못 놓나?' 건반 위에서 손을 움직이는 순간순간,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얼마 전에야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에게 피아노는 하나의 은유였다는 것을.
▲ 피아노의 이유 삶의 은유로서의 피아노 |
ⓒ 박은정 |
그림책을 좋아해서 열심히 읽었고 공부와 활동도 해 왔지만, 쓰는 일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보고, 보지 못하고 놓쳤던 것들을 상상하며 챙겨야 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은 당연하게 쉽지 않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비해 더디고 힘겨웠다.
지금 치고 있는 체르니 연습곡이나 모차르트 소나타도 어린 시절 다 배웠던 것들이다. 그때는 손도 가볍고 뭐든 빨리 습득할 때라 그랬을까. 이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처럼 매일 연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손도 둔하고, 악보를 빨리 읽지도 못한다. 아는 곡이다 보니 마음은 앞서나가는데 손은 자꾸만 틀린다.
예전에 무엇을, 얼마나 쳤는지와 무관하게 지금의 나를 직시할 수밖에 없다. 마치 처음인 것처럼 오른손과 왼손을 따로 연습하면서 음들을 확인해 나간다. 점차 꼬이던 손가락들이 올바른 자리를 찾아 건반을 누르게 되고, 박자와 선율을 살리며 연주할 수 있게 되어 간다. 연습을 더 해 나가다 보면 곡에 감정을 실을 수도 있다. 지난한 연습을 반복하는 사이 어느덧 한 곡을 마치게 된다.
연습 시간이 부족하기에 짬짬이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찾아 듣는다. 귀로라도 곡을 조금 더 이해하고 친해져 보려는 것이다. 많은 연주 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가는 연주가 있다. 그것을 지향점으로 연습에 동기부여를 얻는다. 연주자에 따른 차이를 발견하면서 나는 어떤 스타일이 좋고, 어떻게 이 곡을 치고 싶은가에 대한 관점도 얻는다.
한 곡의 소나타를 반복해서 연습하는 사이, 서서히 쌓인 '직면'과 '획득'의 힘은 결코 피아노 치는 일에서 끝나지 않았다. 연습하면서 몸에 차곡차곡 쌓인 감각은 그림책을 쓰는 막막한 시간 동안 직간접적으로 지속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거의 모든 주제로 좋은 작품들이 나와 있고 쏟아지고 있는 마당에 또 하나를 보태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 쓰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한정된 시간, 표현할 능력에 대한 안타까움, 재능에 대한 비교로 자괴감이 밀려들 때면 피아노 연습을 떠올렸다.
아무리 적은 시간이라도 반복하다 보면 어제보다 한결 나아진다는 걸 피아노 연습은 은근하게 일러주었다. 그렇게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렸다. 뭐라도 일단 쓰자는 마음으로 매일 연습하듯, 출근해서 일하듯 일정 시간을 써 내려갔다.
짬짬이 좋은 연주를 찾아들었던 것처럼, 그림책들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내가 쓰고 싶은 주제를 써 본 다음, 그것을 다룬 책들을 찾아보고, 이 이야기를 왜 쓰고 싶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면서 다르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해 봤다.
책상 앞에 앉을 수 없을 때는 글감을 찾거나 진행 중인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매만지고 다듬었다. 귀로 들었던 연주와 연습실 내 연주의 차이를 실감하듯, 실제 글로 옮겨보면 엉성하기 짝이 없어도 틈틈이 고민한 이야기는 개미 손톱만큼이라도 나아졌다.
▲ 연습실에서 2년간 연습실에서 배운 것들 |
ⓒ 박은정 |
피아노는 입사 14년 만에 처음 맡은 일 앞에서 고전하던 회사 생활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일을 못하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통째로 까먹거나 실수를 남발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것이 불과 몇 개월 전이었다.
하지만 형편없는 시작일지라도 그만 두지 않는다면 변할 기회도 있다는 걸 피아노는 알려주었다. 이불킥을 하게 만들던 실수를 인정하고, 모르는 걸 열심히 묻고, 계속해서 배우고 반복한 결과 지금은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게 됐다.
콩쿠르에 나가 트로피를 받아오지 않는 이상, 피아노는 성장의 결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작은 연습실에서 보낸 2년의 시간 동안, 남들이 알아주든 아니든 피아노를 치면서 느끼는 행복과 성장의 기쁨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피아노를 쳐서 임윤찬, 조성진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한 곡을 보다 잘 연주를 하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 때문에 오늘 나의 서투름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남들의 인정이 없어도 작은 성장에 감사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은 아이를 키우는데도 한결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더디게만 여겨지던 아이를 보면서 조금 더 앞을 상상하는 여유를 품게 되었다. 내일을 낙관하는 힘을 얻었다.
멈춰 있는 것 같지만 아닌
물론 알고 있다.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걸. 노력과 과정이 분명 중요하지만, 결과를 필연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걸. 재능은 분명 작용하고,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좀처럼 잘 메워지지 않는다는 걸.
아무리 연습한다 해도 내가 임윤찬과 같은 수준의 연주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는 마음을 쏟고 시간을 들여 연습을 지속할 때, 내 능력 안에서도 아름다운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일에 얼마나 진심이며 즐기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실감은 그림책을 쓰는 기약 없는 여정과 살아가는 일의 막막함에서 힘겨워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일으켜준다.
물론 이 길에 완결은 없을 것이다. 다시 새로운 곡을 배우기 시작할 때처럼 쓰고 고쳐 나가야 하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하며, 여전히 기약 없는 날들과 거절의 시간이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 자리에 멈춰 있지 않다. 연습하고 조금 더 나아질 힘이, 이 과정을 즐길 여유가 내게는 있다.
내 두 손을 믿으면서 조금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연주할 미래를 상상하며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다. 책상 앞에 앉아 한 줄의 문장을 쓰고 또 고쳐 쓰고, 서툰 일들을 반복하면서 한 뼘 더 자랄 내일의 나를 기다린다. 멈춰 있는 것 같아도 제자리에서 조용하게 성장하고 있을 모든 존재에게 존경의 마음을 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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