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과 기만’…절멸 위기 빠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지난 10여년간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투자 ‘큰손’들로부터 각광받았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기업들이 올 들어 절멸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신기술이라는 명목으로 그럴 듯한 수익모델만 제시하면 한꺼번에 엄청난 투자자금을 모았던 그동안의 관행이 연이어 철퇴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이제 과장과 기만의 시간은 끝났다’는 제목으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당면한 위기를 조명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 2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를 계기로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 큰 돈을 투자했던 ‘큰손’들이 이미 투자한 자금을 거둬들이는 한편, 새로운 투자 계획도 연달아 백지화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자들이 이들 기업이 전면에 내세웠던 ‘신기술’과 수익모델들이 실제 사업화하기 부적절하거나 산업으로 구현되기 불가능한 일종의 ‘사기’ ‘과대광고’ ‘포장술’에 지나지 않았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2주전 재정 전문 신기술 스타트업 기업 ‘프랭크’의 창립자인 찰리 재비스는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고의로 수정하고 본래의 사업 목적이 아닌 곳에 이용한 혐의 등으로 체포됐다. 광고 전문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아웃컴 헬스’ 창립자인 리시 샤 역시 투자자와 고객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다.
오지 미디어 대표 칼로스 왓슨과 슬링크 소프트웨어 창립자 크리스토퍼 커치너, 헤드스핀 공동창립자 매니쉬 라크와니 등은 투자자들에게 사기를 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이밖에도 실리콘밸리를 터전삼아 각종 스타트업을 차렸다가 사기 등 혐의로 체포·구금 또는 기소된 기업인들은 차고도 넘치는 상태다.
투자·금융 전문 마케팅사이트인 피치북에 집계한 데이타에 따르면, 2012~2021년까지 지난 10년간 미국내 스타트업 기업들이 끌어모은 투자금은 무려 3440억달러(451조1216억원)에 달한다. 수만개에 이르는 스타트업들 가운데 1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이미 실현한 곳은 1200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스타트업들은 투자자들이 거의 원금도 회수하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이거나 처음부터 사기였던 셈이다.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에서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부터. 지난해 불거진 테라노스 사건은 계기였다. 혈액 검사 한번으로 모든 암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선전해 엄청난 투자금액을 모았다가 사기 혐의로 피소됐던 이 회사의 CEO 엘리자베스 홈스는 11년형을 선고받았다.
처음엔 조심스러운 회수 행보였지만, 가상화폐 거래 전문기업이었던 FTX의 엄청난 사기행각이 드러나면서 투자자들은 투자금 전부를 거둬들이는 방향으로 급선회해, 이제는 충분히 검증된 신기술과 사업모델을 가진 스타트업들도 자금을 마련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지금은 가장 성공한 숙박기업이 된 에이비앤비의 브라이언 체스키 CEO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은 마치 잘 나가는 나이트클럽에서 엄청난 조명을 켜놓고 밤낮없이 파티만 즐겼다”면서 “이제 이곳은 나이트클럽이 망해 아예 불도 안 켜지는 황무지가 된 듯하다”고 말했다.
한창 스타트업이 벤처기업으로 성장하고 다시 빅테크로 도약하던 시절, 투자자들은 이들 기업이 다소 과장된 사업모델을 제시하거나 위법 행위를 하더라도 눈 감아주기에 급급했다. ‘작은 실패’보다 ‘큰 성공’의 단맛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스타트업이 제시하는 수익모델과 신기술을 온갖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사전 검증하고, 사업이 시작되더라도 사사건건 스타트업의 경영과 주요 결정사항에 직접 개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하면서 연방 법무부의 기업 관련 수사 지침도 도널드 트럼프 집권 시절보다 훨씬 더 엄격해졌다.
NYT는 “검증되지 않는 신기술과 사업모델을 과장과 거짓으로 포장했던 스타트업들에게 투자자들은 관용과 신뢰 대신 냉정과 불신을 보내게 됐다”면서 “그동안 펀딩에만 올인하며 자기 배만 올인하던 스타트업 창립자들의 잘못된 관행이 미국 대륙에서 아예 ‘엔젤 투자’를 사라지게 할 판”이라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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