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도 "재미있는 경기"... 승격팀들의 즐거운 반란
[이준목 기자]
2023시즌 초반 K리그1의 최대 화두는 단연 '승격팀 돌풍'이다. 지난 시즌까지 2부리그에 머물러있던 대전 하나시티즌과 광주FC가 나란히 선전하며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 K리그1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민성 감독이 이끄는 대전은 지난 4월 16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3' 7라운드 홈 경기에서 울산 현대를 2-1로 물리치며 올시즌 최대의 이변을 연출했다.
개막 이후 6연승의 파죽지세를 이어가던 선두 울산이 당한 올시즌 첫 패배였다. 울산은 수원 삼성(1998년)과 성남FC(2003년)가 보유한 K리그 개막 최다 7연승 기록이 대전에 막혀 좌절됐다. 대전은 2011년 8월 20일(1대 0 승) 이후 무려 12년 만에 울산을 제압하며 기쁨이 두배가 됐다.
대전은 이로써 4승 2무 1패, 승점 14점을 기록하며 3위에 올랐다. 경기수가 같은 선두 울산(승점 18)과 4점 차, 2위 포항(승점 15)과는 단 1점 차에 불과하다. 아울러 지난 K리그2 35라운드부터 기록했던 홈 무패(7승 3무, 올시즌 3승 1무) 행진을 10경기로 늘렸다.
같은 날 광주도 대구를 난타전 끝에 4-3으로 격침시켰다. 광주는 3골 차로 앞서나가다가 대구의 거센 반격에 동점까지 허용하며 위기를 맞이했으나 후반 41분 터진 하승운의 결승골로 값진 승리를 거뒀다. 4승 3패를 거둔 광주는 승점 12점으로 5위에 올랐다.
시즌 초반 강호 전북(9위, 승점 7)을 비롯하여 수원(12위, 승점2), 강원(11위, 승점3), 대구(10위, 승점 6) 등 K리그1의 터줏대감들이 나란히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신 승격팀들의 선전이 신선한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는 평가다. 몇몇 인기구단들에게 화제성이 편중되었던 상황에서 K리그 흥행에도 큰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 환호하는 대전 16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프로축구 K리그1 울산 현대와 대전 하나 시티즌의 경기에서 승리한 대전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대전은 전신인 시민구단 시절부터 우승권 강호는 아니었지만, 끈끈하고 아기자기한 팀컬러를 내세워 홈구장에 많은 관중을 끌어모으며, '축구특별시'라는 애칭까지 얻었던 바 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부실한 구단 운영으로 도마에 오르고 승강제 도입으로 2부리그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동안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대전은 2020년 하나금융그룹이 대전광역시로부터 구단을 인수하면서 다시 기업구단으로 전환되었고, 2022년 K리그2 2위로 승강PO(김천 상무)를 거쳐 마침내 8시즌 만에 1부리그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대전은 1부리그 복귀 후 지금까지 모든 경기가 나름의 사연을 지닌 더비 매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즌 첫 홈 개막전 상대였던 강원(2-0 승)은 바로 2년 전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볼보이 논란' 등 각종 구설수를 일으키며 아픈 상처를 남겨준 팀이었고, 5라운드에서는 후반 막판에 터진 극장골로 무려 18년 만에 FC서울(3-2 승)을 잡는 이변을 일으켰다.
수원FC전(3-5 패)에서는 비록 첫 패배를 당했지만 올시즌 K리그1 최다인 8골을 주고받는 화끈한 난타전을 펼치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여기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울산전 승리까지 이민성호는 매경기가 구단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정효 감독이 이끄는 광주는 지난 시즌 K리그2 우승팀이었다. 1, 2부를 통틀어 K리그 역사상 최다승점(86점, 2018년 전북과 동률)을 기록하며 당시 2위 대전(74점)을 12점 차로 여유있게 따돌렸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창단 이래 1, 2부리그를 오르내리며 부침이 심했던 광주는 1부리그에서는 번번이 한계를 드러내곤 했다. 2년 만에 돌아온 K리그1에서 2, 3라운드 서울과 전북에 2연속 무득점 0-2 패배를 당할 때만 해도 역시 수준차를 절감하는 듯했다.
하지만 4라운드에서 인천을 5-0으로 대파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며, 달라진 광주의 축구가 1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히 올시즌에는 이기든 지든 화끈하게 결판을 보고야마는 '남자의 팀'으로 불리우며 축구팬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이번 시즌 K리그1에서 무승부가 아직까지 한 번도 없는 팀은 선두 울산과 광주, 단 두 팀뿐이다.
▲ 선취골의 주인공 16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프로축구 K리그1 울산 현대와 대전 하나 시티즌의 경기. 선취골을 넣은 대전 이진현이 환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이러한 대전과 광주의 선전이 매력적인 또다른 이유는 2부보다 수준이 한 단계 높은 1부팀들을 상대로도 '정면승부'를 펼친다는 데 있다. 2부리그에 있었던 지난 시즌에도 대전은 70골, 광주는 68골로 나란히 득점 1, 2위를 차지하며 경쟁팀들보다 월등한 화력을 과시한 바 있다. 올시즌 1부리그에서 대전은 16골로 선두 울산(14골)보다도 앞선 팀득점 1위다. 광주는 12골로 전체 4위다.
두 팀 모두 디테일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추구하는 방향성은 비슷하다. 강팀을 상대로도 여간해서는 라인을 내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량과 전방압박으로 상대의 패스를 차단하여 역습으로 득점을 노린다.
물론 그만큼 선수들의 체력부담이 커지고 미드필더와 수비진의 간격이 멀어져 실점 위기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대전이 12실점으로 최다 2위고, 광주는 9실점(6위)을 허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팀이 확고한 철학을 고수하는 것은, 수비에만 치중할 때보다 오히려 공격적으로 대응할 때 선수들의 집중력과 자신감이 더 살아난다는 결론 때문이다.
이처럼 언더독 팀들이라고 해서 '지지 않는 축구'만 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나 '이기는 축구'를 추구하다보니 팬들 입장에서는 이기든 지든 재미와 감동을 느낀다. 대전-울산전과, 광주-대구전은 경기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패장인 홍명보 울산 감독마저 "졌지만 재미있는 경기를 했다. K리그가 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방향이라 생각한다"며 대전의 스타일을 인정했을 정도다.
물론 대전과 광주는 아직 '빅클럽'과는 거리가 있다. 1부리그 강호들에 비하면 선수층이 얇고 투자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지금의 상승세가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확고한 축구철학, 높은 홈경기 승률, 화끈한 공격축구, 규모는 작아도 충성도높은 팬덤과 홈관중 동원력까지, 탄탄한 중소구단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두 승격팀의 즐거운 반란이, 정체된 K리그의 흥행에 새로운 기폭제가 될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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