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우먼톡]의료계에도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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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첫 토요일, 광주행 고속열차에 올랐다.
역에 도착하니 중견 바이오기업 대표이자 한국여자의사회 지역 회장인 P 선생님이 환하게 반겨주신다.
한국여자의사회 장학생인 의학과 3학년 S가 와서 공손히 인사를 한다.
'빨강 머리 앤'의 남친이자 남편인 길버트가 의사였고, 역경 속에서 진정한 의사로서의 길을 찾아가는 '성채'의 앤드루, 뛰어난 외과 의사인 '개선문'의 라비크처럼 소설 속에서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이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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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첫 토요일, 광주행 고속열차에 올랐다. 역에 도착하니 중견 바이오기업 대표이자 한국여자의사회 지역 회장인 P 선생님이 환하게 반겨주신다. 중앙회 주최 지회주관의 하이브리드 학술대회와 리더십 워크숍의 방향과 진행을 의논하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운천저수지를 끼고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한국여자의사회 장학생인 의학과 3학년 S가 와서 공손히 인사를 한다.
어린 후배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며 나는 왜 의사가 되고 싶었는지 어떤 의사가 되고 싶었는지 떠올렸다. 50~60년 전, 전쟁 후 너도나도 살기 어려웠던 시절, 경제적으로 남성으로부터 독립해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빨강 머리 앤'의 남친이자 남편인 길버트가 의사였고, 역경 속에서 진정한 의사로서의 길을 찾아가는 '성채'의 앤드루, 뛰어난 외과 의사인 '개선문'의 라비크처럼 소설 속에서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이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어려운 사람은 무료로 치료해 주고, 온 마을 사람의 고민도 들어 주는 큰 어른 같은 동네 의사를 꿈꿨다. 예전에 꿈꿨던 그대로는 아닐지 몰라도 아픈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평생을 갈고닦아 실력이 녹슬지 않도록 하며, 진정한 의사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히 귀한 것이라 믿는다.
후배에게 혹시나 학교에 다니며 차별을 느낀 적은 없었는지 묻자 지금까지는 잘 모르겠다 한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고 다행이다. 다시 생각이 옛날로 돌아갔다. 4학년 졸업반 때였다. 졸업 후 학교 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시 누구나 다 원하는 바였다. 갑자기 학교 병원 인턴 모집 요강을 바꾼다고 통보가 왔다. 전체 경쟁률이 정해지면 남학생은 남학생대로, 여학생은 여학생대로, 각각 그 경쟁률을 적용하여 모집한다고 했다. 여학생들이 성적이 좋으니 너무 많이 들어오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공공연히 선언했다. 두드려도 반응 없는 단단한 벽이 앞을 막고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 동기 여학생들이 머리를 모았다. 선배 여성 동문을 찾아뵙고 이 모집 요강에 항의하는 서명을 받자고. 그 당시 국내에서 활동하시는 선배 여성 동문은 열 손가락 남짓한 숫자였고, 우리는 선배님들의 근무처를 한 곳씩 찾아다니며 서명을 받아왔다. 결국 병원이 모집 요강을 바꿔 여학생 전원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까지는 이 같은 노력이 필요했다.
양성평등 측면에서 과거와 비교해 많이 나아지기는 했다. 의대 입학 여학생 수가 3명 중 1명 이상은 되고, 여의사는 전체 의사 중 4명 중 1명을 조금 넘는다. 1980년 3000명이었던 여의사는 3만4000명으로 11배 이상 증가했고 13.6%였던 여의사 점유율도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런데 자료를 보니 2021년도 우리나라의 성별 격차지수는 매우 낮고, 특히 경제 부문 성 격차지수가 123위로 매우 낮았다. 고위 임원 및 관리직 여성 비율은 15.7%로 매우 낮아 세계 134위라 한다. 남녀 임금 격차 또한 31.5%로 선진국 중 가장 심하다.
과연 의사라서, 전문직이라서 양성평등이 실현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의사 단체, 병원과 대학의 장이나 주요 보직의 여성 비율은 여전히 매우 적고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한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양성평등으로 가기 위한 질적변화가 필요한 것은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S는 부디 성장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불이익을 받지 않으면 한다. S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편견 때문에 벌어지는 차별을 인지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백현욱 한국여자의사회 회장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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