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자신 쫓는 눈에 떠나…김정일 이어 김일성 참배도 생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태양절ㆍ15일) 금수산태양궁전에 있는 김일성의 시신을 참배하는 대신 딸 김주애와 함께 축구경기를 관람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김일성 생일 참배를 하지 않은 건 2020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북한 노동신문은 17일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태양절에 즈음하여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 사이의 체육경기 재시합이 진행됐다”며 “김정은 동지께서 경기를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이 공개한 사진 속 김정은은 딸 김주애와 함께 관람석 중앙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뒷줄엔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이 앉았고, 배우자 이설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지난 2월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광명성절) 때 딸과 함께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의 축구 경기를 봤던 것과 같은 패턴이다. 김정은은 당시에도 부친인 김정일 참배 대신 딸과의 축구 경기 관람을 선택했다.
자신의 3대 세습을 완성하고, 딸 김주애 세대로의 4대 세습을 준비하고 있는 김정은이 김일성ㆍ김정일에 대한 참배를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데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특성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김일성ㆍ김정일과의 연속성을 끊고 자신의 우상화를 시도한다는 일각의 해석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다만 김정은이 선대의 성과와 업적을 당대에 더욱 계승ㆍ발전시키고 있다는 전제를 지키면서 스스로 통치 철학으로 내세워왔던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주민들에게 강조하려는 측면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김정은은 김일성을 생일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김씨 일가’를 대동하고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의 시험발사 현장을 찾았다. 이어 태양절 다음 날인 16일 야간엔 화려한 조명과 축포 속에 진행된 화성지구 1단계 1만 가구 주택 준공식에 참석했다. 김정은은 화성-18형에 대해선 “우리의 전략적 억제력 구성 부분을 크게 재편시킬 것”이라고 했고, 주택 사업에 대해선 “안정되고 문명한 생활조건을 제공해주기 위해 당과 국가가 최중대사항으로 추진하고 있는 숙원사업”이라고 각각 평가했다.
태양절을 전후한 두 일정을 종합하면 선대의 과업에 기반을 두고 스스로 내세웠던 ‘국방ㆍ경제건설 병진노선’의 성과를 과시하는 의미가 된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이러한 정치적 메시지와 함께 김정은이 ‘동선 노출’에 따른 위험 부담 때문에 '태양절 참배' 등 특정일에 행해왔던 정해진 행보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미국은 수백㎞ 상공에서 15㎝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정찰위성 ‘키홀’(Key HoleㆍKH) 시리즈 등을 통해 김정은을 실시간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이 밖에 U-2 드래곤레이디, RC-135W 리벳조인트, E-8C조인트스타스 등의 정찰기를 수시로 띄워 북한을 정찰하고 있다. 김정은의 동선이 사실상 실시간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뜻이다.
휴민트(HUMINTㆍ인적 정보)를 통해서도 김정은의 동선은 파악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연말 김정은이 두문불출한 채 백두산 인근 양강도 삼지연(三池淵)을 방문했던 것도 이러한 정보 자산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김정은의 동선이 속속들이 파악되는 상황에서 금수산궁전 참배 등 특정일, 특정 장소에서 진행되는 동선은 김정은에 대한 경호의 측면에서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군사정찰위성 1호기의 발사를 예고하며 이를 독려하는 것도 자신의 동선이 한ㆍ미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데 따른 불편함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일종의 ‘참수 작전’ 등을 예상할만한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김정은을 절대 옹위해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선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며 “반복되는 참배 생략의 배경을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북한 정권이 혹시 모를 김정은의 신변에 위협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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