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하고 1억 매출 올렸지만..." 그 뒤 벌어진 희한한 일
[권성훈 기자]
▲ 서울 시내 한 버거킹 매장의 모습. |
ⓒ 연합뉴스 |
지난 5일, '이차돌·버거킹 횡포 방지법'이라는 독특한 명칭의 법안이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이처럼 법안에 특정인의 이름 또는 특정한 명칭을 넣는 것을 '네이밍 법안'이라 한다. '네이밍 법안'의 특징은 법안에 영향을 주었던 어떤 사건이 사회적으로 크게 공론화되고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 법안의 이름으로 쓰인 두 회사는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다. 따라서 시사에 그다지 관심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이 법안이 프랜차이즈 기업을 대상으로 하였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당 기업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들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법안이 발의되었을까?
브랜드가 법안의 이름이 되기까지
먼저 버거킹 경우,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바와 같이 본사가 가맹점을 상대로 시중가보다 비싼 가격의 원부자재를 강매하고 심지어 할인 프로모션 비용과 배달비 상당액을 점주에게 부담시켜 가맹점이 월 6천만 원 이상의 고매출을 올려도 '적자'가 났다고 점주들이 주장하고 나선 사건이다(관련기사 : 월 6천만원 매출인데 적자?... 버거킹 가맹점주 속타는 사연 https://omn.kr/236vs).
'이차돌' 또한 이와 유사하다. 지난 3월 초 <한겨레>의 최초 보도에 따르면 본사가 가맹점 운영에 필요한 원부자재 대부분을 강매한 것은 물론, 판매가에 폭리 수준의 이윤을 붙였다는 것이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6500원짜리 고기(우삼겹 1kg)를 1만 5천 원에 공급했다고 하니 '폭리'라는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을 듯싶다. 더욱이 일상 소모품인 냅킨, 물티슈조차 시중가보다 비싸게 강매했고 가방 고리와 같은 홍보/판촉물도 점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납품했다고 한다.
더욱이 이차돌의 경우 분쟁이 기사화된 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직권조사에 착수했지만, 본사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4월 10일 자 <한겨레>의 후속 보도에 따르면 본사가 오히려 가맹점주들을 더욱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이차돌 본사는 해당 보도를 통해 "언론보도와 공정위 직권조사 등과 관련한 보복 조치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고기를 시중가보다 2배 비싸게 공급하고, 여러 물품을 강매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축육 시세는 예측이 어려워 안전재고 확보를 위해 구매 당시 시세가 높더라도 매입하므로 시세가 급락해도 납품가 인하는 불가하다"라면서 "로고가 인쇄된 비품과 판촉물은 필수품목이기에 판매 강제가 문제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 프랜차이즈 기업 이차돌 홈페이지 |
ⓒ 화면캡처 |
이차돌 가맹점주 A씨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일련의 상황에 대해 아래와 같이 심경을 밝혔다.
"처음 개업하고 흔히 말하는 '개업 효과'로 1억이 넘는 매출을 올렸어요. 그런데 정산하니 남는 게 없는 거예요. 문제는 그 뒤로는 매출이 계속 떨어지고… 현재 점주 단체에서 활동하는 모든 점주에게 본사가 내용 증명을 보냈어요. 가맹점 쓰레기통을 뒤져서 자점매입(식재료를 본사로부터 구매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구매하는 행위)이 의심된다며 부가세 매입자료를 보내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본사지만 개인 세무 자료를 내라고 압박하고 심지어 이미 계약 해지를 당한 점주에게도 내용증명을 보냈더라고요. 그리고 가맹점 계약 해지 후 전업한 점주와 자점매입이 확인된 점주들에게는 계약을 위반했다며 억 단위의 손해배상 소송을 거론하며 겁박하고요.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필자도 프랜차이즈 분쟁을 직접 겪어본 적이 있지만, 이차돌 본사의 거칠 것 없는 행보가 솔직히 놀라웠다. 6년 전인 2017년 '프랜차이즈 갑질'이란 키워드를 단 기사들이 쏟아진 적이 있었다. 한식, 피자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분쟁은 다수의 점주를 희생시켰고 결국 해당 본사들은 여론의 질타는 물론 공권력의 제재를 받았다. 그리고 일부지만 법 제도의 개선까지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겨우 6년이 지난 현재, 이차돌 본사는 이 모든 과거의 교훈을 잊은 듯하다.
이처럼 뫼비우스의 띠처럼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와 악습을 반복하는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본사들의 모습을 보면 이런 의문에 빠진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의 프랜차이즈 기업가들의 후진적 경영철학 때문일까? 100년의 역사 속에서 점주들이 참여하는 '공동구매협동조합'이라는 선진적 시스템을 안착시킨 종주국 미국에서는 이제 이런 저열한 분쟁은 완전히 없어졌을까?
퀴즈노스 사건이 예언하는 우리 가맹사업의 미래
'퀴즈노스'는 샌드위치 브랜드다. 2007년 전 세계에 5천여 개의 가맹점을 개설하며 샌드위치 브랜드의 대명사인 '써브웨이'의 대항마로 거론되었던 이 전도유망한 브랜드에서 2006년 분쟁의 서막이 올랐다. 가맹점주들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이때 롱비치의 가맹점주(Bhupinder Baber)가 목숨을 잃는 불행한 사건까지 터졌다.
퀴즈노스 가맹점주들은 점주 단체를 결성하고 본사 말고는 어떤 가맹점주도 돈을 벌지 못했다며 본사가 가맹점주에게 지정한 업체에서만 필요 원부자재를 구매하도록 강요한 행위를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원부자재 납품가에 본사 이윤을 숨긴 기만적 행위를 '사기'로, 가맹점을 겁박했다며 '공갈' 등으로 최초 2억 600만 달러의 소송을 시작으로 2009년에는 9500만 달러, 2014년에는 4000만 달러 소송을 연이어 진행했다. 가맹점주들은 소송에서 퀴즈노스 본사의 부당행위로 가맹점 대부분이 상당한 재정적 손실과 심지어 파산을 겪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범죄입니다. 재산과 아내까지, 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지금은 퀴즈노스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 미시간주 Petoskey의 가맹점주 John Portrera(덴버포스트, 2013.3.15.)
퀴즈노스 사건엔 현재 분쟁중인 이차돌과 버거킹을 넘어 우리나라 프랜차이즈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게 담겨 있다. 사모펀드의 회사 매입, 본사의 이익을 숨긴 원부자재 강매, 가맹점에 무리한 판촉 비용 전가, 계약위반과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이유로 단체 가입 점주에 대한 강제 폐점과 맞소송 등... 흡사 우리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이 사례를 학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퀴즈노스 분쟁 사건은 미국 내 광범위한 관심을 끌었고 정부도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이후 퀴즈노스 본사는 가맹계약 약관을 변경하고 소송에서 가맹점과 합의했다. 합의에는 가맹점에 대한 피해 보상금과 비즈니스 관행을 개혁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브랜드가 회생하기에는 너무 멀리 간 듯했다. 2014년 퀴즈노스 본사는 파산 신청을 했고 가맹점은 지속적으로 줄어 2017년 300여개로, 2020년 229개만 남았다고 한다. 미국 CBS가 2010년 7월 2일 기사에서 "프랜차이즈 시스템의 필수 요소인 본사와 가맹점이 이처럼 장기간 강하게 대립을 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퀴즈노스 분쟁은 프랜차이즈 산업에서 규제 감독의 중요성, 그리고 프랜차이즈 기업이 불공정하거나 기만적인 행위를 할 때 사회에 얼마나 막대한 피해 끼치는지 보여준 극명한 사례였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이차돌과 버거킹 분쟁은 물론, 이전 언론을 통해 연이어 보도된 아디다스, 쿠쿠, 떡참, 투썸플레이스 등의 사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기관들이 빠른 시일내에 합리적인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미국 퀴즈노스와 같은 불행한 결말은 확정된 미래가 아닐까 한다.
"나는 18개월 동안 압도적 자본을 앞세운 본사에 끌려다녔다. 내게 정의는 없었다. 수백 명, 수천 명의 동료 가맹점주들도 유사한 상황에 갇혀 본사를 위해 노예처럼 일하고 있다. 퀴즈노스에 가맹한 것을 깊이 후회하고 이 회사를 알지 못했다면 이라는 헛된 희망을 한다." - 퀴즈노스 가맹점주 Bhupinder Ba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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