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수련회 가는 동생, 군대 앞둔 오빠의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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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자 기자]
올해 중학교에 올라간 딸아이는 하루하루가 신난다고 했다. 얼마나 신나는지 학교에서 오면 조잘조잘 이야기도 잘했다. 내향적인 성격의 딸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신학기 적응을 잘해 다행스럽기도 하다.
하루는 딸아이가 가정통신문을 꺼내 사인을 해달라기에 보니까, 1학년 전체 수련회 관련 참가 요청서였다. 장소는 충남 부여로 일정은 2박 3일이었다. 며칠 전,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과도 상담했던 터라 수련회 관련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무려 4년 만에 수련회를 재개했다는 이야기도 상담 때 들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못했던 합숙 수련회가 다시 개재 된 것이다. 딸아이는 장기자랑으로 나갈 댄스 대회를 위해 열심히 춤 연습을 하며 수련회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니, 내 여고 시절 수학여행을 기다리던 때가 생각나기도 해 웃음이 절로 났다.
"좋겠다. 넌."
그때, 아들이 거실로 나와 툭 던지듯 말했다. 곧 군대를 가야 해서 대학 휴학 중인 아들 녀석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살짝 안쓰러움이 들었다. 군대 때문에 안쓰러운 게 아니라, 아들은 수련회도, 졸업여행도, 수학여행도 하물며 대학 MT도 간 적이 없었다.
딸과 제법 나이 차이가 나는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졸업 여행을 앞두고 그만 취소되었다. 바로 그해 터진 세월호 참사 때문이었다. 다음 해 중학교에 올라간 후에도 수련회는커녕 소풍은 단체 영화 관람으로, 중학교 졸업 여행은 역시 놀이동산 견학으로 대신 했다.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 당연히 가야 하는 수학여행도 겨울에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취소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매년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에 아들 녀석도 은근 기대했는데 코로나19는 수학여행도, 제대로 된 동아리 활동은 물론 학교생활도, 문화생활마저도 사라지게 했다.
최소한의 동선으로 학교와 학원만을 오가는 지루한 고교 시절을 보낸 아들은 그나마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합격한 것으로 위로를 삼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코로나19 때문에 대학 오리엔테이션도 줌(ZOOM)으로 진행되었고, 신입생 환영식도, 강의도 절반 이상 비대면으로 받아야 했었다. 당연히 MT도 없었고, 동아리 모임도 없었다. 고등학교와 달라진 건 수업 내용과 학교 이름뿐이었다.
남편과 내가 겪어보지도 않았던 학창 시절을 내 아들은 겪고 있었다. 남편과 내가 당연히 했던 고등학교 수학여행, 대학교 MT, 대학의 꽃이라 불리는 축제가 아들에겐 없었다.
아들에겐 학창 시절의 추억이 없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순 없었으나, 아들로선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아들이 입대하기 전, 몇몇 마음 맞는 친구들과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 했다.
어디로 갈 거냐 묻는데, 제주도이고 자전거 여행이라고 했다. 힘들지 않겠냐고 하니, 힘드니까 더 많이 기억나고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하며 웃는다. 이제 겨우 스물한 살, 만으로 스무 살밖에 안 된 아들이 유독 어른스러워 보였다. 엄마인 나도 모르는 사이 아들의 마음은 훌쩍 커버린 듯했다.
졸업여행도, 수학여행도, 대학 MT도 못 갔지만 속상해하지 않고 친구들과 또 다른 추억을 쌓으려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비록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학창 시절 단체 여행 사진은 없어도 친구들과의 추억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아들의 학창 시절은 성공했다 할 수 있겠다.
남편과 나 그리고 딸과는 다른 학창 시절을 보낸 아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기특해 보였다.
"아들, 잘 자라줘서 고마워."
툭툭, 등을 두드리는데 아들이 멋쩍게 웃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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