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시간은 너무 쓰잖아요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다보니 로스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섞어 커피를 내립니다. <기자말>
[이훈보 기자]
▲ 아이들이 등교하는 길. |
ⓒ 이훈보 |
아무튼 8시 30분에 문을 열기 위해서는 늦어도 1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합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환승을 두 번 하기에 오전 7시 30분 무렵에는 집을 나서야 하죠. 그렇게 출근을 하고 6시에 문을 닫은 후 다시 원래의 출발점으로 돌아올 즈음이면 오후 7시 30분이 됩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 날인가 시계를 봤더니 오후 7시 30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12시간 만에 제 자리로 돌아오고 있구나.'
대단히 이른 출근 시간도 아니고 야근을 한 것도 아닌데 제게 주어진 하루의 절반을 일을 위해 사용하고 있더군요. 당연히 양손을 펼쳐 셈을 해봅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12시간씩 일을 위해 사용하면 60시간에 토요일은 11시부터 6시까지 문을 여니까 출퇴근 시간을 더하면 얼추 69시간.'
'흐음.'
네, 한동안 화제였던 마법의 69시간이 제 손바닥 위에 있었습니다.
12시간 만에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걷고 있으니 69시간 근무는 '할 수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됐다는 생각이 바로 듭니다. 저야 속을 썩이는 관계자도 없고 사고가 터지지 않으면 거의 제시간에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데 저희 손님들이 겪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조금만 회의가 길어지고 마감이 늦어지고 받아야 할 것이 도착하지 않으면 지연은 일상이 됩니다. 업무와 관계가 고도화된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예상치 못하는 일이 더 잦아지죠. 그다음에 찾아오는 회식도 반갑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준선을 69시간쯤에 둔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앞뒤로 셈한 출퇴근 시간은 업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지나친 업무로 출근 도중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도 업무상 재해로 본다는 판례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일을 해야 하기에 서둘러 나가야 하고 그 출퇴근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말이 '트래픽 전쟁'이라는 것은 출퇴근이 이미 경쟁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사실 문밖을 나서면서부터 경쟁을 하는 셈이죠. 당연히 경쟁은 대부분 스트레스로 누적됩니다. 손의 먼지처럼 비누를 이용해 단숨에 씻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새살이 돋아나지 못하고 곪아가는 상처에 가깝습니다. 천천히 안전하게 회복해야 하지요.
왜 이런 철 지난 이야기를 느지막이 하냐고요?
커피는 사람을 각성시키기 때문이겠죠. 제가 마시는 오늘의 커피가 철 지난 이야기를 새롭게 곱씹게 합니다. 그리고 또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꽤 느긋하더라고요. 뜨거운 커피는 뜨거워서 그렇고 아이스는 잔을 빙빙 돌리며 잘그락거리는 얼음 소리를 듣는 맛에 느긋해집니다.
느긋한 만큼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대충 넣어둔 이야기를 꺼내보게 합니다. 다른 분들은 바빠서 남겨두지 못한 이야기를 제가 조금 담아두었다 적어두는 셈이죠. 그래서 이제는 그냥 안 한다는 말로 얼버무려 화제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한 줄 적어봅니다.
창밖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덜 피곤한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도 30ml 정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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