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진실규명결정 부정하는 검사, 공익 대표자 맞나
[최정규 기자]
검사 : 재심사유를 확인하기 위해 피고인의 가족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변호인 : 피고인의 가족도 국가폭력의 피해자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진실화해위) 결정을 무시한 채 국가폭력 피해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운다는 검찰의 증인신청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난 14일 오전 11시 2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24호 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인은 증인신청 문제로 맞섰다. 형사법정에서 검사와 변호인이 팽팽하게 맞서는 광경은 어느 법정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일 것이다. 그러나 이 날 아버지 대신 법정에 출석한 한경훈씨는 심한 분노를 느꼈다.
▲ 가을운동회, 가장 왼쪽이 장남 한경훈(당시 9세), 가장 오른쪽이 둘째 딸 한혜정(당시 13세) |
ⓒ 한혜정 |
고인이 된 아버지를 대신하여 형사재심청구를 한 건 바로 그 아홉 살 아이, 이제 환갑을 넘긴 한경훈씨, 이 날 재판에 참석하여 검찰이 자신과 누나(한혜정)를 증인으로 신청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분노를 느꼈던 건 올해 2월 14일 내려진 진실화해위 결정을 검찰이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2. 권고사항
이상과 같이 본 사건은 진실규명 되었으므로 과거사정리법 제34조에 따라 국가가 행할 조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국가는 고 한삼택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불법체포, 감금, 가혹행위 등에 대해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국가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피해와 명예 회복을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딱 두 달 후 열린 형사재심 심문기일에서 국가기관인 검찰이 사과는커녕 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무시한 채 자신과 누나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워 53년 전 일을 따져 묻겠다는 상황, 한경훈씨는 다시 아홉 살 소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어 쓸쓸했던 그 해 가을운동회처럼 이 날 법정에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가족에 대한 검찰의 증인신청, 꼭 필요했나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결정을 내린 건 그 당시 아홉 살과 열세 살 아이었던 자녀들의 진술 때문이 아니었다. 수사기록상 불법구금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구속영장발부는 1970년 10월 8일 이루어졌으나 이미 서울중부경찰서의 피의자신문조서 작성은 10월 6일에 이루어졌고,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위반 피의자 검거동행 및 수사보고'는 10월 7일 작성되었다.
진실화해위는 1)제주도에서 연행되어 서울로 이동하여 조사를 받다가 10월 8일 발부된 구속영장에 의해 인치되기 전까지 피의자가 석방 또는 귀가조치 되었다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는 점, 2)그 당시 형사소송법상 긴급구속 또한 48시간 내에 '사후' 구속영장을 발부받아야 하지만 피의자에게 발부된 영장은 '사전'구속영장이라는 점을 근거로 불법구금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그 당시 법원이 임의동행이 적법하다고 판단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하였으며, 1심, 항소심, 상고심 모두 유죄가 선고되었다며 불법구금을 인정한 진실화해위 결정을 끝내 외면한채 그 당시 아홉살이었던 한경훈씨, 열세살이었던 한혜정씨 등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날 재심 심문기일을 진행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3단독 양진호 판사는 검찰의 증인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심문을 종결했다.
제주에서 서울까지... 구금인가? 임의동행인가?
검사는 이 날 법정에서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1970년 10월 8일까지의 과정을 적법한 '임의동행'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피고인이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불법구금 등의 주장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러나 진실화해위 결정문에서도 지적하듯이 임의동행 형태를 취하여 연행했다고 하더라도 조사 후 귀가시키지 아니하고 그의 의사에 반하여 경찰서 조사실 또는 보호실 등에 계속 유치함으로써 자유를 속박하였다면 구금에 해당한다. 다만 이 당연한 법리가 명명백백 확인된 건 1985년이다.(대법원 1985. 7. 29. 85모 16 결정)
따라서 고 한삼택씨가 조사를 받았던 1970년에는 임의동행을 빙자한 불법구금이 용인되어 왔다는 사실, 시민들이 수사기관의 이런 불법구금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임에도 이제 와서 불법구금 주장을 하지 않은 피해자를 탓하는 검찰의 억지스러운 주장에 동의를 할 사람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검사는 의견서의 '결론'부분을 이렇게 장식했다.
우리나라 법조인들은 그 시대 상황에서 법조인의 양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수사, 기소, 재판을 하였으며, 이러한 전통 위에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체계가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대법원 판단까지 받아 확정된 이러한 판결은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사소한 의심으로 부정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념을 반영하여 형사소송법에서는 재심사유를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엄격하게 해석, 적용하도록 한 것입니다.
검사의 주장처럼 진실화해위 진실규명결정은 그저 '사소한 의심'일까? 진실화해위 진실규명결정 보다 1970년에 내려진 판결이 더 존중받아야 하는 것일까?
진실화해위법 제1조(목적)는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우리나라 법조인들은 그 시대 상황에서 법조인의 양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해당 검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진실화해위는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법조인이 양심을 져버리고 시대의 상황에 타협하는 등 최선을 다하지 못해 왜곡되고 은폐되었지만 뒤늦게나마 규명된 진실을 그저 "사소한 의심"으로 치부하는 검사에게 우리는 다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공익의 대표자 검사님!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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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최정규 기자(변호사)는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의 구성원이며, 위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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