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3년, 일본에 생긴 새 호텔들의 화두: 지속가능성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아직도 하루 1만 명은 나오고 있지만, 세계는 이미 역병과의 공존을 택했다. '팬데믹 이전의 삶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악담 같은 이야기가 멎어 들고, 위기에 내몰렸던 각종 산업들도 회복 중이다. 다만 팬데믹 기간 시간이 멈춘 건 아니기에, 각 업계도 분주히 자구책을 찾았을 터다.
재미있는 건 이 시기 세운 대책이 엔데믹 이후에도 주효한 모습을 볼 때다. 그 가운데서도 하늘길이 막힌 동안 해외 관광객을 받지 못했던 숙박 업계는 각국 공히 국내 여행 수요 활성화를 도모했는데, 이와 함께 탄생한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들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이동 시간까지 고려했을 때, 휴가가 적은 한국인에게 최고의 가성비 해외 여행지인 일본에서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졌다.
3년 만의 일본 여행에서 첫 숙소로 택한 웨스틴 요코하마는 특히 그랬다. 이 호텔이 위치한 요코하마는 도쿄 근교의 항구 도시로, 하네다 국제공항 기준으로 보면 넉넉 잡아 1시간 정도 걸린다. 1970~80년대의 일본 음악이 목놓아 자랑했던 요코하마항과 도쿄 만, 차이나타운을 품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웨스틴 요코하마는 이 유명한 지역 상징들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오지 않았다.
문을 연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 호텔은 요코하마 도심 재개발로 조성된 미나토미라이21 내에 있다. 비교적 새로 생긴 고층 빌딩들이 늘어선 이 곳은 지금 일본 열도를 통틀어 봐도 가장 현대적인 장소 중 하나다. 웨스틴 요코하마는 새로 태어난 도시의 모던함을 입되, 지역 역사를 내부 콘셉트에 녹였다. 호텔 곳곳에 깔린 카펫의 문양은 각각 요코하마의 상징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레스토랑의 이름도 요코하마의 역사를 반영한다. 23층의 아이언 베이(Iron Bay)와 슈가 머천트(Sugar Merchant), 포트 23(Port 23) 등이 그 예다. 미나토미라이21 조성 전까지 조선소가 있던 요코하마항의 모습은 아이언 베이, 설탕 무역이 활발했던 스토리는 슈가 머천트라는 이름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벤트 홀도 콜롬버스, 다 가마, 마젤란, 디어스, 타츠키 등 바다를 가로질렀던 탐험가들의 성(姓)을 따서 명명했다. 3층의 이자카야 스타일 레스토랑 킷스이센(喫水線)은 인테리어부터 그 옛날 요코하마항을 드나들던 배의 모습을 본땄다. '선박과 수면의 경계선'을 뜻하는 '끽수선(흘수선)'이라는 이름도 왠지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웨스틴 요코하마는 지역 생산 식재료를 사용하며 이 항구 도시와의 깊은 연결과 상생을 꾀한다.
최상층 코드 바의 콘셉트도 흥미롭다. 요코하마 곳곳의 우편번호를 이름으로 붙인 오리지널 칵테일은 해당 장소의 특산품으로 맛을 냈다. 이를테면 예전부터 오다와라 성 부근 동네의 팥빵이 유명하다는 점에서 착안, 앙금을 활용한 칵테일에 우편번호 250-0014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식이다. 이 같이 스토리텔링이 확실한 자체 엔터테인먼트는 굳이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충만한 '호캉스'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요코하마에서의 독특한 경험 이후 여행의 마지막 밤 묵기로 한 숙소는 팬데믹 초기에 오픈한 도쿄 에디션 토라노몬. 에디션은 메리어트 인터내셔널과 '부티크 호텔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안 슈레거가 합작한 럭셔리 호텔 브랜드다. 결코 적지 않은 투숙 비용에도 늘 80% 이상의 만실률을 자랑할 만큼, 에디션 토라노몬은 지금 도쿄에서 가장 '핫'한 호텔이기도 하다.
에디션 토라노몬은 각 호텔 프랜차이즈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각축을 벌이는 미나토구에서도 눈에 띄는 콘셉트를 나타냈다. 엔트리부터 '나 호텔이요'라고 주장하지 않는 프라이빗한 콘셉트와는 달리 르 라보의 트렌디한 향이 후각을, 세계 각국에서 공수한 식물들과 작가들의 아트 피스가 시각을 자극한다. '도쿄타워 뷰'를 내건 근방의 호텔들과 다른 점은 31층 이상의 높은 위치에서도 녹음에 둘러싸인 도쿄타워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쿠마 켄고가 자신의 특기를 살려 디자인한 호텔 내부는 다양한 소재감의 목재를 활용했는데, 객실에 들어서면 향긋한 나무 냄새가 난다. 웨스틴 요코하마가 지역의 과거를 콘셉트화했다면, 에디션 토라노몬은 '지금, 도쿄'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느낌이었다. 낮에는 로비 바의 애프터눈 티, 밤에는 골드 바의 칵테일이 현지인들의 인스타그램에 빈번히 등장하는 이유다.
팬데믹 기간 새로 문을 연 일본의 호텔 두 곳은 콘셉트의 방점을 각 지역과 시점에 찍으며 자체 엔터테인먼트를 강화했다는 공통점을 나타냈다. 이는 '스테이케이션', 즉 '호캉스'의 개념을 팬데믹 이전으로 회귀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팬데믹 기간의 '호캉스'가 바이러스나 인파로부터의 도피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그저 온전히 머무름을 통한 휴식으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이 두 호텔의 또 다른 공통점은 내부에 환경과 관련한 지속가능성 전략들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호텔에 일회용 어메니티 대신 고체 비누와 대나무 칫솔, 대용량 디스펜서를 도입한 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샤워 용품 역시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이는 호텔 스파 트리트먼트 제품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웨스틴 요코하마는 금방 시드는 생화 장식으로 인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 이끼 분재를 활용했으며, 에디션 토라노몬은 플라스틱 객실 열쇠를 나무로 만들고 호텔 근처를 탐방하려는 투숙객에게 자전거를 대여한다. 친환경 정책으로는 범용성을, 지역색 강화로 차별성을 획득한 두 곳의 호텔은 해외 관광객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가기 충분해 보였다.
배순억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한국·일본·필리핀·괌 마케팅 담당 상무는 〈엘르 코리아〉에 이 같은 일본 내 숙박업 트렌드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친환경 호텔 서비스에 대한 의식은 팬데믹 이전에도 있었으나,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이 이를 발 빠르게 도입했다. 웨스틴 요코하마와 에디션 토라노몬 두 곳 모두 미니 바에 플라스틱 용기를 없앴는데, 기본으로 제공되는 물 역시 각각 유리병과 종이에 담았다는 점도 좋은 예시였다.
팬데믹 기간의 지역색 강화가 엔데믹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현재 일본의 숙박업 경향이라고 배 상무는 짚었다. 한국이 코로나19 유행 당시 국내 관광객 확보를 위해 힘쓴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 인구가 약 1억3000만 명으로 내수가 충분하지만 그만큼 포화 상태인 일본 숙박 업계에서, 지역과의 상생 전략은 차별화와 동시에 지속가능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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