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왜 中 삼성·SK 반도체로 가지 않았을까

조인영 2023. 4. 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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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지리적 한계·대외협력 고려해 반도체 대신 디스플레이 선택
삼성·SK 반도체 패싱은 실익 없다 판단한 듯…반도체 독자생존 자부심 시각도
12일 중국 광저우의 LG 디스플레이 공장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생산 현황을 살피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2일 LG디스플레이 생산공장을 찾으면서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갈수록 격화되는 미·중 패권 다툼 속 한·중 우의를 강조하기 위한 행보였다는 분석이 제기되지만, 그게 목적이었다면 첨단전략산업인 반도체가 더 적절해 보인다. 그렇다면 시 주석은 왜 삼성·SK 반도체를 마다했을까.


17일 업계 의견을 종합하면 시 주석의 광둥성 광저우 소재 LG디스플레이 사업장 선택은 정치·경제적 상황을 모두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방문은 지방 시찰 중 일정 중 하나로 이뤄졌다. 이날 시 주석은 LG디스플레이 광저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공장 뿐 아니라 중국 신에너지차 업체 광치아이온 등을 두루 돌며 국내외 기업들의 기술 혁신 추진 상황 등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찰 지역이 광둥성에 집중됐던 만큼 동선상 외자기업 중에서는 LG디스플레이 사업장을 방문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LG디스플레이 광저우 패널공장은 이 회사의 해외 주요 생산기지이자, 광저우의 주요 외자기업 중 하나로 손꼽힌다.


코트라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광둥성 총 GDP(국내총생산)는 전년 대비 8% 증가한 12조4000억 위안으로 중국 총 GDP(114조4000억 위안)의 11%를 차지한다. 중국 성시 중 최초로 12조 위안을 돌파하는 등 성장세가 가파르다.


시 주석측 입장에서는 광둥성이 글로벌 제조업의 메카로 꼽히는 만큼 이 지역을 시찰하면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LG디스플레이를 찾아 격려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날 시 주석이 "외국 투자자가 기회를 잡아 중국에 오고, 광둥성에 와서 중국 시장을 깊이 경작하고 휘황찬란한 기업 발전을 이루길 희망한다"고 언급한 것은 한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강조함으로써 한·중 간 우의를 중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방문 다음날인 13일 외교부도 "한·중 경제협력 필요성, 한·중관계가 개선되는 추세 등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다만 최근의 국제정세를 고려하면 다른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미·중이 그 어느 때 보다 반도체, 전기차 등 첨단전략산업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 경고성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시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시진핑, 지리적 한계·대외협력 고려해 반도체 대신 디스플레이 사업장 방문

미·중 패권 경쟁을 염두에 두고 한국 정부 및 기업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는 갈등의 중심에 있는 반도체 기업을 방문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규모는 전체의 절반에 가깝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중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에서 D램과 낸드를 40%, 20% 생산하고 있다. 전공정 설비 외에도 양사는 각각 쑤저우와 충칭에 패키징(후공정) 공장을 두고 있다.


역으로 미국 반도체 보조금,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등으로 가뜩이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삼성전자와 SK에 부담을 더 주지 않기 위한 판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는 첨단전략물자로 미·중이 하루가 다르게 압박 수위를 높이는 분야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반도체는 미·중간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한국에 부담을 많이 줄 수 있지만, 디스플레이는 양국간 격차도 적고 경쟁을 통해 서로 발전하고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면서 "시 주석이 부담없이 한·중간 협력 관계 중요성을 언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디스플레이 분야는 한·중 '투톱'으로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 BOE, CSOT 등이 중소형 OLED에 공격적으로 투자중이며 이에 질세라 삼성디스플레이도 8.6세대 투자를 발표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OLED는 일단 미국의 제재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만큼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런 차원에서 이번 방문은 구애적 측면이 더 가깝다"고 언급했다.


앞서 지난달 전국 양회(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중국은 올해 중점 과제로 내수 확대, 대외개방 등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외자 유치 확대로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고자 하는 만큼 이 같은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SK 반도체 패싱은 실익 없다 판단한 듯…반도체 독자생존 자부심 시각도

시 주석이 'K반도체' 생산기지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것으로 미루어, 향후 중국 반도체의 행보를 가늠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 메모리 반도체 대표주자인 창신메모리와 양쯔메모리의 기술 수준이 우리 기업들의 중국 내 주력 생산 제품에 빠르게 근접하고 있다"면서 "미국 제재가 날로 강해지는 가운데 미국 투자 가능성이 높은 삼성에 방문하는 것은 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제적으로 민감한 반도체 대신 대외협력 상징인 디스플레이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을 중심으로 한 한·미 협력이 갈수록 긴밀해지면서 시 주석이 추가적으로 한국 사업장을 또 다시 방문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다만 외자 기업 방문은 말 그대로 이례적 행보인 만큼 당분간 성사 가능성은 적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정 교수는 "향후 시 주석의 일정이 나온 것이 없고, 반도체 사업장 방문 자체도 중국은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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