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4조원 벌었는데, 기부는 달랑 15억'…명품업계 배짱장사

김유리 2023. 4. 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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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국내 매출 3.93조
배당금 1170억~2950억 등 급증
기부는 루이비통 '0' 비롯 5억~10억 수준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가 지난해 한국에서만 4조원 가까이 매출을 올렸다. 잦은 가격 인상과 구매 과정·사후 처리 등에서의 소비자 불편에도 역대급 실적을 낸 데다, 배당은 큰 폭 늘린 반면 기부 등 국내 기여엔 여전히 인색한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 시장의 명품 짝사랑'이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루이비통, 1.7조 벌어 2200억 배당…기부는 '0'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에르메스코리아·루이비통코리아·샤넬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3조9338억원으로 직전해(3조2194억원) 대비 22% 증가했다. 국내 매출이 가장 높았던 브랜드는 루이비통이다. 루이비통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1조6923억원으로 직전해 대비 15% 늘었다. 영업이익은 4177억원으로 38% 증가했다. 샤넬은 매출·영업이익 상승률이 폭증했다. 지난해 샤넬코리아 매출은 1조5913억원으로 직전해 대비 30% 늘었고, 영업이익은 4129억원으로 66% 급증했다. 에르메스코리아 역시 지난해 매출 6502억원을 기록, 직전해 대비 23%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23% 증가한 2105억원을 나타냈다.

역대급 실적에 해외법인으로 보내는 배당금 규모도 크게 키웠다. 샤넬코리아는 지난해 배당금 2950억원을 지급했다. 직전해 대비 327% 급등한 수치다. 루이비통코리아의 지난해 배당금은 2252억원으로 직전해 대비 44% 증가했다. 에르메스 역시 직전해 대비 22% 늘어난 1170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반면 한국에서의 기부에는 인색했다.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거나, 아예 없었다. 샤넬코리아는 10억1584만원, 에르메스코리아는 5억6100만원을 기부했고 루이비통코리아는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 3년째 기부금이 '0'원이다.

명품 브랜드 '샤넬'이 다음 달 미국에서 가격을 올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 인상 임박을 추측하고 있는 28일 서울 한 대형백화점 명품관 앞에 시민들이 명품관 개점을 기다리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코로나19로 명품 인기 가속화…1년에 4차례 가격 인상 '배짱장사'

국내 명품 수요는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더 크게 늘었다. 유동성 확대로 자산 규모가 커진 이들이 증가하면서 명품 수요가 늘어난 데다, 해외여행·명품구매 등 굵직한 소비처에 대한 선택지가 다양했던 이들의 시선이 명품으로 쏠리면서 인기가 급증했다. 해외 신혼여행길이 막히면서 결혼 선물에 힘을 싣는 예비부부도 늘면서 특정 브랜드의 상품을 '반드시 지금 시기에 사야 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여기에 명품 브랜드의 잦은 가격 인상 정책이 '언젠가 살 거라면 지금이 가장 싸다'는 인식을 심으면서 소비 심리에 불을 지폈다. '오픈런(상점 문을 열기 전에 미리 와서 줄을 서는 행위)'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입장 전날 밤부터 줄을 서기 위해 텐트나 침낭이 동원되는 기현상도 발생했다. 오픈런에 대신 줄을 서주는 아르바이트가 횡행하고, 되팔 목적으로 제품 구매에 나서는 리셀러가 판을 키웠다. 명품에 크게 관심이 없던 이들까지 '대체 뭐길래' 하는 마음으로 관심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웃는 건 명품 브랜드뿐이었다. 명품 브랜드들은 이같은 심리에 파고들어 일 년에 많으면 네 차례까지 가격을 올렸고, 가격 인상 전 구매 고객이 급증하는 효과를 누렸다. 루이비통은 지난해 두 차례 가격을 올렸고 샤넬은 네 차례 가격을 인상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도 한 차례 더 가격을 인상했다. 잦은 인상에 이미 오른 가격에 수요 욕구가 시들해지기보다, 다음 인상 전 구매하려는 욕구가 커졌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경기 침체가 예고됐던 지난해에도 명품 소비가 크게 늘었던 이유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141억6500만달러(약 18조7400억원)로 세계 7위권이다. 그러나 1인당 소비는 전 세계 최대 수준이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약 43만원)로 미국(280달러), 중국(55달러)을 넘어섰다.

업계는 올해 경기 침체 우려가 더 짙어지면서 명품 업계의 성장세가 주춤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명품 업계는 기세를 몰아가기 위해 상징적인 매장을 추가로 선보이는 한편, 국내에서 패션쇼를 준비하는 등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 여력이 커진 상황에서 가격 인상에 대한 부담감보다 소유 욕구가 여전히 크다"며 "명품 소비는 결국 심리적 작용에 따른 것이므로 잦은 가격 인상과 가격에 따라오지 못하는 대우(서비스), 사후 처리 등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고 이같은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커질 때 잦아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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