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요주의 국가? 윤 대통령 때문에 망신살 뻗쳤습니다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이봉렬 기자]
▲ 2022년 2월 3일 서울 영등포구 KBS 공개홀에서 열린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 합동 초청 대선후보 토론에서 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RE100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묻자 윤 후보는 “그게 뭐죠?”라고 되물으며 구설에 올랐다. |
ⓒ 국회사진취재단 |
대통령님을 위한 반도체 특강, 오늘 강의는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해 망신을 샀던 바로 그 단어, RE100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 당시 워낙 화제가 됐으니까 RE100이 뭔 지는 이미 잘 아실 거라 생각했는데, 대통령님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기존 30.2%에서 21.5%로 8.7%포인트로 낮추는 걸 보고 아직도 RE100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신 것 같아 이렇게 따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RE100은 Renewable(재생) Electricity(전기) 100%의 줄임말입니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로 시작된 국제 캠페인인데, 영국의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 주도로 2014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캠페인이기 때문에 회원 가입도 자발적으로 이뤄지며 이걸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유엔이나 세계무역기구 WTO 같은 곳에서 불이익을 주지도 않습니다.
연간 100GWh 이상,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기업 또는 세계 1000대 글로벌 기업이 RE100 주요 참여 대상 기업들입니다. 이미 가입한 회사를 보면 미국의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 우리에게 익숙한 회사가 많습니다. 일본의 소니와 엡손도 회원사이며, 독일의 BMW와 지멘스도 가입되어 있습니다. 2023년 4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401개 기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습니다.
올해 1월에 발간된 RE100 2022년 연차보고서에 의하면 그 RE100 회원 기업들의 연간 전력 총 소비량은 376테라와트시(TWh)로, 이는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의 1.5% 수준이자, 세계에서 12번째로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영국 전체의 연간 전력 소비량보다도 더 많습니다. 그 중 49%인 184TWh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했습니다. 2016년의 32%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숫자입니다. 캠페인의 성과가 있는 겁니다.
한국 회원사들, 재생에너지 사용율 2% 불과
▲ RE100 2022년 연차보고서 요약 페이지.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가 가장 시급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적었습니다. |
ⓒ RE100.org |
그래서 보고서는 맨 앞 요약 페이지에 한국(2%), 중국(32%), 일본(15%) 및 싱가포르(26%)가 재생에너지 사용이 가장 시급한 나라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한국의 2%는 32%의 중국과 26%의 싱가포르와 나란히 적어 준 게 민망할 정도로 낮은 수치입니다.
▲ 애플이 글로벌 공급망에 2030년까지 탈탄소화를 촉구한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공식 공급망 업체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
ⓒ 애플 |
지난해 10월 애플은 자사 홈페이지에 "Apple, 글로벌 공급망에 2030년까지 탈탄소화 촉구"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올렸습니다. 소제목은 "Apple은 Apple 관련 생산의 탈탄소화를 위한 협력업체와의 협력을 가속화하고, 청정 에너지 및 기후 솔루션에 대한 투자를 전 세계로 확대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전체 내용을 쉽게 요약해 드리자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회사로부터는 아무 것도 사지 않을 수 있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 삼성전자 2022SUSDP RE100 가입을 선언하고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 삼성전자 |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삼성전자도 작년 9월 RE100 가입을 선언하고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사용율은 얼마일까요? 삼성전자가 펴낸 '2022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2021년 한 해 삼성전자가 사용한 재생에너지는 5278GWh로, 전체 에너지 사용량 대비 17% 수준에 그쳤습니다.
▲ 삼성전자는 미국과 중국 사업장에서 이미 재생에너지로 100% 대체했습니다. 한국 사업장 때문에 전체 재생에너지 사용률이 20%가 안되는 겁니다. |
ⓒ 삼성전자 |
얼마 전에 대통령님은 용인에 국가산단을 조성하고 삼성이 거기에 300조 원을 들여 웨이퍼 팹 다섯 개를 지을 거라고 발표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반도체 팹은 엄청난 양의 전기와 용수를 사용합니다. 그 전기는 어디에서 끌어오실 건가요? 원자력발전소? 석탄화력발전소? 그럼 안 그래도 낮은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사용율은 또 떨어질 겁니다.
거기에 파운드리 팹을 다섯 개를 지어 놔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며 자발적으로 RE100 회원사가 된 기업들(애플,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은 RE100을 달성하지 않은 삼성전자에 반도체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기후위기를 막겠다고 RE100에 가입해 놓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회사의 부품을 계속 사용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자사의 목표를 달성한 회사들은 공급사에도 RE100 기준을 맞추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할 겁니다.
삼성전자, 과연 어디에 투자할까
▲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에 향후 20년 동안 2,000억 달러(약 260조 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 11개를 짓는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
ⓒ 월스트리트저널 |
실제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삼성전자가 미 텍사스주에 세제 혜택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향후 20년 동안 2000억 달러(약 26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11개를 짓는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미국에서는 260조 원을 들여서 팹을 11개나 지을 수 있다는데 한국에서는 왜 300조 원을 들여서 팹 5개 밖에 못 짓는지, 2022년 1분기 영업이익이 6천억 원에 불과해서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빌려야 하는 삼성전자가 어떻게 그 많은 투자금을 감당할 수 있을 지 같은 건 여기서 따져보진 않겠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신규투자 협약식에서 주제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이게 좀 감이 오시나요?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제때에 공급해 주지 않으면 한국 기업들이 해외 유수의 고객들로부터 주문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기업이 우리 나라에 공장을 짓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겁니다. 취임 후 지난 1년 동안 보여주신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에 더 이상 대통령님께 많은 걸 바라지는 않습니다. 해외 유수의 기업 유치를 못한다고 뭐라 하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최소한 우리 기업들을 외국으로 내쫓는 경우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 RE100 홈페이지 첫 화면에 있는 세 개의 보도자료. 그중 두 개가 한국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
ⓒ RE100.org |
시간 되시면 RE100 홈페이지에 한번 가 보세요. 첫 화면에 보도자료가 세 개 떠 있는데 그중 두 개가 한국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이 기사를 쓰게 된 RE100 2022년 연차보고서 출간에 대한 내용이구요. RE100이 보기에 재생에너지 관련해서 한국이 가장 요주의 국가입니다. 썸네일로 태극기가 있어서 반가웠는데 내용을 읽어 보고 민망했습니다.
RE100이 뭔지 몰랐던 그 때는 그래도 대통령 후보 시절이라 망신만 당하고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이잖습니까. 그리고 이젠 RE100이 뭔지, 재생에너지가 뭔지, 이거 제 때 못하면 우리 기업들 어떤 일을 당할 지 잘 알지 않습니까. 용인에 300조 반도체 팹 짓겠다는 발표 전에 거기에 쓸 재생에너지 어떻게 공급할 건지부터 생각하셨어야죠. 지금이라도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재생에너지 사용과 기후위기 대응, 지금 시작해도 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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