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우박 맞아 처참해진 마당... 좀 두렵습니다

도희선 2023. 4. 1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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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게 뒤덮힌 꽃과 농작물 보며 애가 탔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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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선 기자]

핏빛 꽃잎이 떨어진다.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자 불을 밝히듯 활짝 피어나던 영산홍이 4월 한 달 앞마당을 환히 밝혀 주리라 생각했다. 16일 아침까지만 해도.      

봄꽃이 많지 않아 빈약하게 보이던 마당에 그나마 몇 그루의 영산홍이 체면치레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꽃잎이 반나마 떨어져 버렸다. 비명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피를 토하듯 무너져 내렸다. 다른 나무에 비해 늦어 애를 태우던 배롱나무 가지에도 이제 막 새순이 삐죽 고개를 내밀었는데 그마저도 시들하다.

텃밭의 상추며 쑥갓, 깻잎 모종들 역시 숨도 못 쉬고 처참한 몰골이 되어버렸다. 지난주 마당 곳곳에 뿌려둔 꽃씨는 또 어떻고.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4월 중순 울산 지역에 내린 우박
 
▲ 우박 앞 마당에 쌓인 우박
ⓒ 도희선
 
아침부터 우중충한 날씨에 어깨를 움츠릴 만큼 쌀쌀하기까지 했다. 점심 무렵 바람이 불면서 빗방울도 떨어졌다. 뒷마당에 놓인 집에 웅크리고 있던 반려견 두강이 비를 맞을까 봐 주차장에 들여보내고 들어 온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투닥투닥 굵은 빗방울 소리가 들렸다.

유리로 된 썬룸 지붕 위로 내리는 빗소리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나가보니 비가 아니라 우박이었다. 예전에 짧은 순간 내리는 우박을 몇 번 본 적이 있긴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세찬 바람과 함께 어른 엄지손톱 만한 우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우박은 잔디밭 위에서 통통통 튀며 춤을 추고 있었다.    
  
처음엔 신기한 마음에 탄성을 내지르며 구경했지만 점점 세차게 쏟아져 마당을 뒤덮는 우박을 보노라니 왈칵 겁이 났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썬룸 유리가 부서졌다. 크기는 작았지만 쉬지 않고 퍼부어대는 우박이 이번에도 혹시 하는 우려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루꼴라 씨를 뿌려 둔 화분이 생각났다. 플라스틱 화분에 루꼴라씨를 뿌려 두었더니 이틀 전부터 촘촘하게 싹이 올라왔다. 좀 더 자라면 밭에 옮겨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박이 하얗게 덮어 버렸다.

저대로 두었다간 꼼짝없이 다 얼거나 멍들 것 같아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우산을 썼지만 몰아치는 비바람에 소용이 없었다. 아주 잠깐 맞은 우박 알갱이는 제법 아팠다. 마당은 하얗게 눈이 내린 것처럼 잔디를 뒤덮었다. 멀리 보이는 앞산 위로 천둥 번개가 계속해서 내리쳤다. 
 
▲ 우박 마당에 쌓인 우박
ⓒ 도희선
 
가끔 뉴스에서 우박(雨雹 ; 큰 물방울이 공중에서 갑자기 찬 기운을 만나 얼어 떨어지는 백색 덩어리)으로 농작물에 피해를 입거나 차 지붕이 망가졌다는 소식을 보긴 했다.

이날 내린 우박은 지름 1~1.5㎝정도다. 알갱이가 작길래 망정이지 하마터면 농가에 큰 피해를 줄 뻔했다. 우박은 특정 지역에 소나기처럼 내리다 보니 피해도 크다고 한다. 좁은 지역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 보니 우박으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 8월 30일 스페인 카탈로니아에서  테니스 공만 한 지름 10㎝의 우박이 쏟아졌다. 10분 동안 마을을 강타한 우박은 마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지붕이 부서지고 전신주가 망가졌다. 생후 20개월 된 아기가 머리에 우박을 맞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다음 날 사망했다고 한다. 불과 10분간 쏟아졌지만 충분히 공포를 경험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1888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에서는 대형 우박이 떨어져 23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 2010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에서는 지름 20㎝, 무게 1㎏에 달하는 초대형 우박이 떨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까불지 말라는 자연의 경고?
 
▲ 우박 마당에 내리는 우박 ⓒ 도희선

눈앞에서 쏟아지는 우박을 실제로 경험하고 보니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싶겠지만 30분이었기에 다행이지 계속 쏟아져 내렸다면 집 앞에 세워 둔 차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 같다.
    
도심지의 아파트에 거주할 때는 억수같이 쏟아붓는 장마에도, 큰 위력을 과시하는 태풍에도 마음을 졸이긴 했지만 이렇게 애가 타진 않았다. 농사짓는 사람을 가까이 보면서 그들의 마음을 읽게 된다.

내 집 마당의 나무와 꽃을 가꾸고 손바닥만 한 텃밭을 돌보면서도 날씨에 민감해지고 조금만 큰비가 내리거나 세찬 바람에도 전전긍긍하게 된다.      

해마다 홍수, 가뭄, 태풍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불과 며칠 전에도 강릉지역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제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고 무력감 마저 느끼는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느낀다.

작은 위험은 노력하고 주의하여 피할 수 있지만, 순식간에 덮치는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때아닌 폭염, 폭설, 도시의 절반이 잠기는 폭우의 반대편에는 심각한 가뭄 등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이 늘어가고 있다.

지구촌을 덮치는 무서운 재난들은 인간에게 더 이상 까불지 말라는 자연의 경고처럼 들린다.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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