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은 전성기를 놓쳐 본 적이 없다
Q : 부쉐론은 여성이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착용할 수 있는 최초의 하이 주얼리였어요. 그만큼 자유를 표방하는 브랜드죠. 배우 전도연의 커리어와도 닮은 점이 있나요?
A : 여성이 자유롭길 바란다는 의미가 있었군요. 저는 작품 선택에 있어서도 항상 스스로를 어떤 틀에 가두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런 점이 비슷하네요. 전 여전히 어떤 경계에도 갇히지 않고 더 많은 역할을 경험해보고 싶고, 아직도 저 자신이 궁금하거든요.
Q : 영화 〈길복순〉은 변성현 감독이 오랜 팬이었던 전도연을 위해 설계한 작품이에요. ‘길복순’을 만났을 때 어땠나요?
A : 감독님은 제가 계속 희생적이고, 수모를 당하는 캐릭터만 맡는 게 안타까우셨나 봐요. 그래서 액션을 해보자고 제안하셨죠.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고, 새로운 게 나온 것 같아 만족해요. 재미있는 작업이었죠.
Q : 본격적인 액션 연기를 해보는 건 어땠나요? 직접 액션을 소화했고, 몸을 던져 연기하다 부상을 입기도 했다던데.
A : 식당에서 킬러들끼리 붙는 신, 360도 도는 액션을 찍다가 다쳤죠. 정말 이 악물고 이건 죽었다 깨도 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액션 영화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웃음) 모든 걸 쏟아부어서 했죠. 제가 운동신경이 좀있거든요? 그런데 운동신경과 액션 연기는 또 다른 문제더라고요. 대역을 쓴건 연습실에서 ‘영지’(이연)와의 합 , 단 한 신이었어요. 상대의 액션을 받아주는 액션이었기 때문에 일부 스턴트 배우님이 연기한 컷이 들어갔죠. 제게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그것도 제가 하고 싶었지만.
Q : 쉽지 않은 작품을 어떤 마음으로 택했는지 궁금하네요.
A : 사람들의 시선은 그래요. 여성 배우 주연에, 액션 영화에, 예산이 100억이 넘는 영화. 어려운 프로젝트죠. 투자도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고, 감독님께 “괜찮으니까 더 젊은 배우와 하셔도 된다”라고 이야기도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그냥 “〈길복순〉은 선배님이어야 된다, 선배님은 할 수 있다”라고 끌고 가주셨어요.
Q : 액션만큼이나 중요한 게 모녀관계죠. 극 중 딸과의 서사를 위해 감독님이 집에 찾아와 딸과의 일상을 관찰하기도 했다고요.
A : 맞아요. 감독님이 저희 집에 오셔서 관찰한 저와 딸의 관계가 많이 투영됐죠. 그래서 영화 속 관계가 더 사실적으로 보였을 거예요. 제 딸이요? 이마와 코는 저를 닮았고 전체적인 느낌은 아빠를 닮았어요. 좀 많이 쿨한데, 이것도 아빠를 닮은 거예요. 저를 닮아 소심한 면도 없진 않지만.(웃음)
Q : 어머니와 딸. 가장 친밀하면서도 먼 관계잖아요. 연기하면서 모녀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점이 있나요?
A : 생각해봤어요. 〈길복순〉에서의 복순과 ‘재영’(김시아) 같은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어떨지. 저도 결국 복순이처럼 어떻게 살아갈지는 각자가 찾아가게 둘 것 같아요.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면서요. 실제로 저는 아이에게 많이 맡기는 편이에요. 제가 알아야 할 부분과 아이에게 맡겨야 할 부분을 명확하게 선을 긋고 지키려하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도록 하고요.
Q : 〈길복순〉은 결국 사랑에 대한 영화란 생각이 들었어요. 전도연은 언제나 사랑을 기막히게 표현하는 배우인데, 당신에게 사랑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A :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죠. 예전엔 “나의 모토는 사랑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때는 로맨스로서의 사랑을 말한 거지만 이제는 달라졌어요. 엄마와 딸의 사랑 같은, 더 많은 유형의 사랑을 받아들였죠. 그런데 저는 〈길복순〉에서 보여준 멜로는 길복순보다 ‘차민규’(설경구)가 만들어낸 로맨스 비중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설경구 씨에게 “산 같다”라고 이야기했어요. 산은 오를 때는 그 형태를 몰라요. 하지만 오르다 보면 그것이 어떤 능선과 언덕을 가지고 있는지, 종국엔 어떤 감정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알게 되죠.
Q : 마지막에 두 배우가 모든 걸 걸고 격투하는 신은 마치 탱고를 보는 것 같았죠. 배우 설경구와의 인연이 깊어요. 영화 〈생일〉로 부부 호흡을 맞췄고,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는 멜로를 했었죠.
A : 제가 세 번이나 같이 한 배우는 설경구 씨뿐인데, 설경구 씨는 이상하게 만난 시간의 갭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정말 멋스럽게, 잘 나이 들고 있잖아요. 네 번째 작품으로 만나도 새로운 시너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Q : 김시아, 이연, 이솜 등 여성 배우들과의 케미가 폭발하는 작품이기도 했는데 이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A : 그간 연기하며 수많은 제 딸들이 있었지만, 재영이 역할은 쉽지 않았어요. 제 딸일 뿐 아니라 독자적으로 재영이 서사를 끌어가야 했거든요. 그런데 그걸 훌륭히 해내더라고요. 연이양은 영지 그 자체였어요. 묘한 소년미가 있어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예요. 솜이양은 현장에서 감독이 주는 디렉션으로 바로바로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는, 보는 재미가 있는 배우더라고요. 촬영할 때 다들 케미가 좋았어요. 감독님도 우리 케미가 남자들의 케미보다 흥미롭다며, 다음에도 여성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하고 싶다시더라고요.
Q :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는 오랜만에 밝고 사랑스러운 배우 전도연의 로맨틱 코미디를 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A : 저는 오래전부터 밝고 가벼운 작품을 하고 싶다고 계속 얘기했는데, 그런 작품이 안 들어왔죠. 그러다 처음 〈일타 스캔들〉 대본을 받았을 때 ‘정말 오랫동안 기다린 작품이지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작품을 하고 나서 알았어요. 사람들도 나 자신도, 이런 전도연의 모습을 되게 많이 보고 싶었다는 걸.
Q : 전도연이라는 이름의 무게 때문에 가벼운 작품은 선뜻 못 내밀기도 했겠죠.
A : 그렇겠죠. 그래서 저는 감독님들께 배우를 이미지로 가두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드려요. 배우들은 늘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있거든요.
Q : 〈일타 스캔들〉 팀이 제대로 배우님을 알아봤네요.
A : 양희승 작가님이 저와 하고 싶다고 하셔서, 조문주 CP님이 “어? 여기에 선배님을?” 하고 의아해했대요. 그런데 작가님의 생각은 확실했어요. 판타지 같은 로맨틱 코미디라도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기본이 돼야 너무 붕 뜬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그런 배우로서 제가 필요했던 거죠.
Q : 배우 전도연은 여전히 전성기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늘 성큼성큼 나아가면서요.
A : 찔끔찔끔 나아갔어요.(웃음) 하고 싶은 작품을 하기 위해 인내하며 기다린 시간도 있었고, 견뎌내야 하는 시간도 있었고요. 사람들은 전도연은 성큼성큼 나아갔다고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그러지 못했다고 생각했죠. 물론 그럼에도 저는 항상 최선을 다했고, 저 자신을 칭찬해주곤 했지만요.
Q : 전도연의 전성기는 바로 지금인가요?
A : 전도연은 항상 전도연이었어요. 사람들은 〈일타 스캔들〉도 잘되고 〈길복순〉도 잘돼 마치 제2의 전성기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저 스스로는 남들 생각과는 상관없이, 제 전성기를 놓친 적이 없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에게 떳떳하게 살아왔고요.
Q : 이름이 무겁고 명예가 드높은 사람일수록 그 무게를 지고 가는게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전도연은 그 순간마다 대담한 선택을 하면서 그 무게를 넘어서는 모습을 항상 보여줬죠. 사실 과거의 자신을 이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A : 칸에서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고 오면서 이제부터 내가 견뎌야 하는 무게가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후로 어마어마하게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사실 그렇지는 못했죠.(웃음) 그저 그 부담과 무게감을 견뎌내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사실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내가 무언가를 깨야지’ 하고 인지하지는 않잖아요? 단지 해내고 싶고, 열망하고, 어느 순간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무언가 새로운게 나오고, 그렇게 저만 느끼고 저만 알 수 있는 저만의 속도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거예요. 버티고 견뎌내면서.
Q : 그제, VIP 시사 뒤풀이 자리에서 〈무뢰한〉을 함께 작업한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가 배우 전도연에 대해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는 걸 보여주는 멋진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이 명제에 동의하나요?
A : 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셨다니 감사하네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릴 때 박근형 선생님께 혼나면서 연기를 배우며 느낀건, 연기라는걸 사람들은 가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안엔 진심이 있다는 거예요. 연기는 기본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되게 중요해요. 그래서 연기자로서 제가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평소의 나를 바꿔야 하죠. 저는 저 자신에게서 인물들을 찾아가거든요. 그런 리얼리티가 필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네,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는 것. 동의합니다.(웃음)
Q : 전도연은 어떤 걸 멋지다고 생각하나요?
A : 그냥, 있는 그대로. 내가 생긴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잘 받아들이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살다 보면 자기에게 주어진 것, 환경,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하게 될 때가 오잖아요. 그런 걸 잘 끌어안는 게 멋지죠. 그냥 그게 전도연이니까요.
Q :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건 전도연에게도 쉽지 않군요.
A : 그렇죠.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고 또 비워야 해요. 저 역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고 계속 노력한답니다.
Q : 전도연의 프로페셔널한 면모는 어디에서 드러나나요?
A : 매 순간 집요하고 치열하게 해요. 그런 순간이 매번 있잖아요. ‘오늘은 너무 추우니까, 내가 아프니까’라고 아주 작게라도 포기하는 부분이 생기면 나중에 꼭 후회하게 되더라고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요. 사람의 일이란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놓치는 것이 생기니까, 더 치열하게.
Q : 타협이 없군요.
A : 일을 하면서 성격이 이렇게 바뀌었어요. 연기를 하기 전에는 ‘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케세라세라’ 하는 사람이었다면, 일을 하면서, 어느새 이 일을 꿈 이상으로 사랑하게 되면서 더없이 치열해졌죠.
Q : 배우로서 가장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A : 현장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순간. 그때 제일 저다워요. 그리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강하게받아요.
Q : 전도연다운건 뭔가요?
A : 개인적인 전도연은 누구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지 않아요. 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내가 단 하나의 거짓도, 꾸밈도 없이 온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을 할 때의 제가 가장 나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개인 전도연도 일할 때의 전도연을 좀 닮고 싶기도 하죠.(웃음)
Q : 당신은 무엇을 믿나요?
A : 저는, 그냥 저를 믿어요. 한 번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깨진 적이 없었죠. 이건 선택이 아니에요. 저에 대한 믿음은 제 일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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