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겼지?" 스트레스가 우울증이 되는 경로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원장 2023. 4. 17.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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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 우울증 클리닉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사람은 누구나 우울해진다. 나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이 우울의 고통을 겪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돈 때문에 걱정하고,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취업 때문에 압박받고, 건강이 나빠져서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이를 먼 곳으로 떠나보내고, 교통사고처럼 예상치 못한 트라우마를 겪으면 우울해지는 게 당연하다. 날씨가 우중충하거나 계절이 바뀌면서 기분이 변할 때도, 아무 이유 없이 기운이 빠질 때도 있다. 우울하다고 ‘나만 나약해 빠진 사람이다’라고 스스로를 탓해선 안 된다. 우울은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떼어낼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마음의 상처는 누구나 가슴 속에 한두 개쯤 품고 있기 마련이다. 백이면 백 우리는 모두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다 우울장애라는 질병에 걸리는 건 아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지?’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할 수밖에 없는 거야!’라고 골똘히 생각할수록 우울은 더 깊어진다. 우울증이 어디에서 시작됐고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 깊이 고민하면 질환의 뿌리를 뽑을 수 있을 거라 여기지만, 실제론 반대다. 이러한 반추는 기분을 더 우울하게 만든다.

행동 변화 없이 기분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힘들다고 잠만 자려고 하거나, 기분을 전환하려고 술을 마시는 것 등)을 멈추고, 해야 할 행동(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 꾸준히 산책하기 등)을 실천해야 우울에서 벗어난다. 생각만으로 이런 노력들을 대신할 수는 없다.

스트레스가 심하고 취미를 즐길만 한 상황이 아니라며 기쁨을 자아냈던 활동을 그만 두면 불쾌감은 더 쌓인다. 성취감을 느끼게 해줬던 활동을 의욕이 없다고 중단하면 우울은 깊어진다. 이것이 바로 우울증을 부르는 전형적인 행동 패턴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일컬어 ‘행동 비활성화의 덫(Behavioral Inactivation Trap)’에 빠졌다라고 부른다.

건강할 때 자신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떠올려보라. 그때는 운동하고, 친구를 만나고, 공연을 보고, 화초에 물도 제때 줬을 것이다. 하지만 우울해진 뒤부터는 이런 활동들을 멈춰 버렸을 것이다. 지금 우울하다면 우울하지 않았을 때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줬던 활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의욕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기분을 좋게 만들 거야’라고 굳게 마음먹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활동 후에 찾아오는 기쁨과 만족감이 기분과 의욕을 살아나게 한다.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행동 활성화’가 필수다.

우울증 환자들은 종종 “현실이 너무 버겁고 마음이 지쳤는데 어떻게 즐거움을 찾으란 말이에요?”라며 저항한다. “의욕이 생겨야 움직일 수 있어요”라고 무력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맞다.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그렇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뒤에서 하나, 둘 하고 밀어주면 처음엔 힘들어도 시동이 걸리면 쌩하고 앞으로 달려 나가게 되는 것처럼, 시작이 어려울 뿐이다. 하기 전에는 마음 내키지 않았어도 막상 햇볕 쬐며 산책하면 짧은 순간이라도 상쾌함을 느끼게 된다. 작은 행동이 기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루에 10분만 산책하세요” 진료할 때 내가 환자에게 자주 하는 조언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우울증 환자도 이 정도의 활동은 유지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것조차 힘들 다는 환자가 많다. 그러면 “하루 종일 잠옷 바람으로 있지 마시고, 집에 있더라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계세요”라고 말한다. 이것도 못하겠다면 아침에 일어나마자 샤워기 틀어 놓고 뜨겁게 쏟아지는 물 아래에 서있으라고 한다. 이마저도 못 하겠다고 하면 “누워있지 말고 소파에 앉아계세요”라고 부탁한다.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가 우울증 치료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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