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작은 고추는 맵다, 작은 제비꽃은 똑똑하다
온 세상이 꽃잔치입니다. 올해는 다른 해에 비해서 열흘 정도 개화 시기가 앞당겨졌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4월에 피어야 할 목련이나 벚꽃이 3월부터 앞다퉈 피기 시작했죠. 밝은 꽃들이 도심의 공원이나 숲에 잔뜩 피어 밝혀주니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나무 위 화려한 꽃들만 보다 보면 나무 아래 조그맣게 피어있는 들꽃들을 외면하거나 무관심해질 수도 있는데요. 냉이·꽃다지·민들레·제비꽃 같은 키 작은 풀들도 저마다 꽃을 피우고 자기만의 생존전략으로 나무와 경쟁하며 멋진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여러 풀꽃 중에 제비꽃 이야기를 할까 해요.
제비꽃의 학명은 'Viola mandshurica W.Becker'입니다. 바이올라(Viola)는 악기 비올라와도 철자가 같은데, 여기서는 제비꽃을 나타내죠. 영어로는 바이올렛(violet)이라고 하며, 제비꽃 외에 ‘보라색’이란 의미도 있어요. 보라색을 띠는 제비꽃에서 그 색깔이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드수리카(mandshurica)는 ‘만주지방의’라는 뜻으로 아마도 최초 발견된 곳이 만주지방이어서 붙여진 듯해요. 제비꽃 하면 이름도 그렇고 대표적으로 보라색 꽃을 떠올리지만 노란색·흰색 등 다양한 종류가 있어요.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제비꽃 종류만도 50여 종이 넘습니다. 사실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 팬지라는 꽃도 제비꽃 종류(제비꽃목 제비꽃과)예요. 유럽 원산으로 개량된 제비꽃으로 삼색제비꽃이라고 하죠.
우리가 제비꽃을 제비꽃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요? 제비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제비와 닮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봄이 되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때쯤 피어나 제비꽃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죠. 이외에도 장수꽃·병아리꽃·씨름꽃·오랑캐꽃 등의 이름이 있는데요. 오랑캐꽃이라고 부르는 데에도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릿고개를 맞아 먹을 게 없어진 오랑캐들이 곡식을 빼앗아 가기 위해 들이닥치는 시기에 꽃이 피어서 오랑캐꽃이라고도 하고, 꽃의 모양을 보면 오랑캐들이 했던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기도 한답니다. 어쨌건 오랑캐보다는 제비라는 단어가 붙는 게 좀 더 어감이 좋아 보이네요.
제비꽃은 형태도 특이합니다. 허니가이드(꽃에서 꿀이 분비되는 부분이 다른 부위와 구별되게 하는 빛깔이나 반점 따위)가 발달한 꽃잎이 한 장 있는데, 그 꽃잎에 벌이 찾아오고, 꿀주머니를 뒤쪽으로 길게 만들어서 벌을 안쪽까지 더 깊숙이 유도해서 꽃가루받이하는 작전을 사용해요. 제비꽃의 열매는 좀 더 특이합니다. 다 익은 열매주머니는 툭! 하고 갈라지면서 조이는 힘을 더 작용해 조그맣고 까만 씨앗을 튕겨 보내요. 하지만 그렇게 멀리 가지는 못합니다.
이때 나타나는 게 바로 개미예요. 제비꽃의 씨앗에는 엘라이오좀(elaiosome)이라는 지방산·포도당·단백질 덩어리가 붙어있는데, 엘라이오좀은 elaion(기름)과 soma(덩어리)의 합성어입니다. 애기똥풀·괭이밥·금낭화· 얼레지·깽깽이풀 등의 식물들의 씨앗에도 붙어있는 이 엘라이오좀을 식량으로 삼기 위해 개미가 찾아오죠. 개미들은 씨앗을 굴 속으로 갖고 가서 엘라이오좀만 떼어서 유충에게 먹이로 주고, 씨앗은 굴 밖으로 갖고 나와 바깥에 버립니다. 이때, 개미에 의해서 씨앗이 이동하고 번식도 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 제비꽃이라기보다는 개미꽃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죠.
제비꽃은 체격이 작은 풀이지만, 허니가이드를 활용한 모습으로 벌을 불러서 꽃가루받이하고, 씨앗은 개미를 이용해서 멀리 이동시키기도 하니 열악한 자신의 환경을 멋진 작전으로 극복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어디를 가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요. 그냥 말로만 하기보다 주변에서 용기를 얻을 어떤 대상 하나를 골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은 체격임에도 자신만의 매력과 전략으로 숲속 풀밭에서, 길목 한 귀퉁이에서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켜온 제비꽃의 지혜로움이 잠시 지치고 힘든 마음에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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