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토크]항구 크레인으로 정보 도둑질?…'스마트 크레인'이 촉발한 中스파이說
항구 감시·화물 추적도 가능해
일각선 "증거 없는 이야기" 반박
세계 1위 무역항 싱가포르 항구부터 국내 부산항까지, 대형 항만시설에는 어김없이 거대한 항만 크레인이 가지런히 정렬해 있습니다. 크레인은 수십톤(t)짜리 컨테이너를 화물선에서 하역하는 장비로, 현대 해상 무역에 빠질 수 없는 핵심 설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치권이 크레인 때문에 발칵 뒤집혔습니다. 중국산 최첨단 크레인에 탑재된 센서가 미국과 동맹국을 감시하는 '스파이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겁니다. 현재 전 세계 항구에 설치된 항만 크레인 10개 중 7개는 중국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中 국영 ZPMC, 글로벌 항만 크레인 시장 과반 점유
중국산 크레인이 미국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은 지난달 처음 제기됐습니다. 당시 미 금융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방첩기관 출신 관료의 발언을 인용해 "미군이 작전 지원을 위해 국내·외로 선적하는 화물 정보를 중국이 파악할 수 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매체는 중국산 크레인을 '트로이의 목마'에 비유하며 "제2의 화웨이(중국 통신장비업체)가 될 수 있다"라며 "(중국에 크레인 제조업은) 비밀 정보 수집을 감출 수 있는 합법적 사업"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실제 지난해에도 미 국방정보국(DIA)은 중국이 항만 물동량을 교란하거나 하역 정보를 염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진단한 바 있다고 합니다.
미 안보당국이 겨냥한 중국산 크레인은 중국에 본사를 둔 상하이전화중공업(ZPMC)제 크레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컨테이너 하역 크레인 및 관련 설비를 전문 설계, 제조하는 국영 기업입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크레인 종류에 따라 세계 시장 점유율 50~74%를 유지해 온 글로벌 1위 기업이기도 합니다.
카메라, 센서, 화물 정보 소프트웨어까지…'자동화 크레인'의 역설
크레인은 컨테이너를 오르내리는 '컨테이너 크레인', 배를 건조할 때 부품을 이동시키는 '갠트리 크레인' 등으로 나뉩니다. ZPMC는 두 분야 모두 세계 1위입니다. 하지만 크레인 자체는 거대한 도르래와 지렛대를 합친 기계에 불과합니다. 왜 미국은 중국산 크레인을 우려하는 걸까요.
크레인은 지난 20여년 간 디지털 기술을 이식해 빠르게 발전해 왔습니다. 우선 크레인 내부 기계 장치의 조작을 자동화한 '반자동화 크레인'이 발명됐고, 현재는 사람이 탑승하지 않고 원격 조종으로 간편히 화물을 옮길 수 있는 자동화 크레인이 상용화됐습니다. 일명 '스마트 크레인'입니다.
스마트 크레인에는 원격 조종을 위한 다양한 센서가 탑재돼 있습니다. 현재 스마트 크레인 1위인 ZPMC는 '스마트 코어'라는 기술로 크레인을 자동화하는데, 여기엔 고해상도 폐쇄회로(CC)TV, 이미지 센서, 화물을 붙드는 줄의 흔들림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반 진동(Anti-sway) 센서가 포함됩니다.
고지(高地)에선 시야가 넓어집니다. 높이 50~65m에 이르는 거대 크레인에 달린 CCTV는 국가 전략 시설인 항구 전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산 크레인을 경계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우려되는 기능은 스마트 코어에 추가된 모니터링 소프트웨어입니다. 입항하는 화물선의 화물 내역을 미리 추적해, 가장 효율적인 자리에 컨테이너를 위치시키는 기능입니다. 물류 최적화와 편의성 증진에 도움이 되는 기능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화주가 수송하는 물품 내역을 모조리 알아낼 수 있는 감시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 장악한 ZPMC 크레인, 현실적으로 대체 힘들어
'중국산 크레인 스파이 도구설'을 두고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큽니다. 현실적으로 중국 군사 당국이 '어떻게' 센서 정보를 자국으로 옮길지에 대해선 의문이 크기 때문입니다.
당장 미국에 설치되는 ZPMC 크레인의 스마트 코어는 미국 IT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합니다. 미국산 데이터베이스(DB)에 저장되는 정보를 중국으로 빼돌리는 백도어 프로그램을 심는 건 매우 어려운 작업일 겁니다.
이 때문에 미국항구협회(AAPA)도 스파이 도구설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내놨습니다. AAPA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간) "여러 미디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중국산 크레인이 보안 문제를 일으켰다는 증거는 없다"라며 "항만 크레인은 분명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이지만, 화물 컨테이너의 기원과 최종 목적지를 추적하는 능력까지는 갖추고 있지 않다"라고 해명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당장 ZPMC 크레인은 미국 항구 컨테이너크레인의 8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미국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 곳곳에 설치돼 있습니다. 미 해군은 지구상 모든 바다에서 작전하기 때문에 여러 나라 항구에 들러 물자를 보급받습니다. 설령 미국이 자국 내 중국산 크레인을 대체하는 데 성공해도, 세계 각지에 ZPMC 시설이 있는 한 '중국산 크레인 리스크'를 해소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부산항은 '스마트 크레인 국산화' 첫발
그렇다면 국내 상황은 어떨까요. 지난달 16일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실이 해양수산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10개 항구에서 운영되는 크레인 809개 중 427개(52.8%)는 ZPMC 제품입니다. 당시 안 의원은 "국가 기반 시설인 항구는 그 어떤 곳보다 철저한 보안이 유지돼야 한다"라며 "국내 항구에 설치된 모든 크레인을 대상으로 보안성을 점검하는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국내의 경우 장기적으로 크레인 리스크는 일정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최대 항구 부산항을 운영하는 부산항만공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항만하역장비 국산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외국산에 의존했던 컨테이너 크레인을 국내 기술로 대체하는 사업입니다. 실제 지난해 7월13일 부산항 신항엔 국내에서 제작된 첫 원격조종 컨테이너 크레인 1호기가 성공적으로 설치됐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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