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대북 무력감을 경계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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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무력 시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 북한 핵위협에 대해 경계하는 것과 그들의 거침없는 핵무기 개발을 보며 무력감에 빠지는 것은 별개 문제다.
수년 전부터 한국 사회와 미국 내에서는 북한 비핵화는 사실상 물 건너간 목표이고 북한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대북 제재와 압력으로 위기를 조장하기보다는 북한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핵무기 위협을 차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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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무력 시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3월 잠수함발사 장거리순항미사일(SLCM)과 신형 핵탄두 ‘화산-31’을 선보인 데 이어 지난 13일에는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발사하는 등 새로운 무기체계 역시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무기체계 성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2021년 8차 노동당대회에서 그들이 제시한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른 수순을 착착 밟아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김정은의 핵무기 집착과 수령의 명령에 대해 결사옹위를 다짐하는 북한의 군사력은 우리에게 비상한 경각심을 요구한다.
그런데 북한 핵위협에 대해 경계하는 것과 그들의 거침없는 핵무기 개발을 보며 무력감에 빠지는 것은 별개 문제다. 수년 전부터 한국 사회와 미국 내에서는 북한 비핵화는 사실상 물 건너간 목표이고 북한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대북 제재와 압력으로 위기를 조장하기보다는 북한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핵무기 위협을 차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논리는 특히 워싱턴의 정책서클 내에서 비확산 및 군축론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데, 그들은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 요구를 충족시켜 주면 북한 역시 핵을 실제 사용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중요한 논리적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첫째, 제재나 압력이 통하지 않으므로 북한 핵능력을 기정사실로 인정해야 한다면 규칙을 어기는 쪽이 언제나 유리하다는 나쁜 교훈을 남기게 되고, 국제비확산체제나 ‘규칙 기반 세계질서’는 무망한 것이 된다. 둘째,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 요구가 겨냥하는 것은 결국 한국의 안전과 정체성 해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들은 한·미 연합훈련 등에 대해 북한도 안보 불안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하지만, 그렇다면 주한미군 주둔과 한·미동맹, 더 나아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융성한 경제 자체도 북한엔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셋째, 체제 안전을 보장하면 북한이 그에 만족하리라는 전망 역시 지나치게 안이한 것이다. 체제 안전 보장은 북한 입장에선 자신들의 전술이 먹혀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협상 국면의 우위에 선 평양이 그 단계에서 멈춰야 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한반도판 ‘뮌헨 신드롬(Munich Syndrome)’이 생겨날 수 있다. 이런 논리적 함정에 빠지면 북한 역시 혼신의 힘을 쥐어짜 버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김정은이 딸 김주애를 동반하는 등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해 새로운 상징조작에 매달리는 징후가 있는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물론 협상도 상대방이 있기에 우리 주장만을 고집할 순 없지만, 우선은 북한의 의식과 행태가 먼저 바뀌어야 하며, 그래야 반복되는 약속 위반과 기만 행위를 막을 수 있다.
이달 하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은 자칫 흔들릴 수도 있는 동맹국 미국을 설득하고 자신감을 공유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북한이 짐짓 건재한 모습을 보이지만 한국은 제재 효과를 믿고 있고, 제재와 압력이 촘촘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면 북한 역시 변화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는 손해가 훨씬 크다는 점을 절감할 수 있게 하려면 북한 핵위협에 대한 억제태세 강화와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구체화가 필수적이라는 점도 부각해야 한다. 북한 핵위협을 가상한 한·미 간 실제 기동훈련, 한·미 간 고위급 협의기구 설립, 전술핵의 비상 및 상시 재배치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해 열린 접근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도 개진할 필요가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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