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동네 바보로 불릴 만큼 생각 없이 살다… 주님 영접 후 복음 전도하는 멋진 삶으로
어렸을 때 잠결에 목이 말라 누워서 콜라를 마시다 온 얼굴을 덮고 방바닥에 흘러도 멍하니 누워 있던 적이 있었다. 옆에서 자던 엄마가 축축함에 깨어 “너는 생각이 있어? 없어?” 하며 한참 맞았다. 그런데 왜 맞는지 몰랐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 담을 넘어 들어가니 큰 개가 멀뚱멀뚱 쳐다보길래 강아지풀을 뜯어 개 코를 계속 톡톡 쳤다. 순간 화가 난 개에 물려 병원에 실려 갔지만 왜 물렸는지 알 수 없었다. 또 친구들과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도 시간이 다 되도록 멍하니 있었더니 언니가 “왜 안 나가냐”고 했다. 나는 “몰라, 언젠가 만나겠지” 하곤 끝이었다.
항상 이러니 동네 바보라는 의미로 ‘동박이’로 불렸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말했지만 나는 “아 진짜? 그래?” 하며 바로 놀러 나갔다. 이혼이 뭔지 알았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다. 교회도 친구들과 놀며 교회에서 기르던 동물들을 보는 즐거움으로 아무 생각 없이 다녔다.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사님께서 예수님을 말씀하셔도 ‘내가 2000년 전 제자였다면 당연히 믿었겠지!’하며 2000년 전 살았던 예수님을 지금 믿으라는 것이 너무 어이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도마가 예수님과 함께하며 수많은 기적을 보고서도 못 자국난 손과 발을 보여주기 전까지 절대 믿을 수 없다고 한 일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보고도 믿지 못했는데 그럼 무엇을 통해 믿어야 하는지 강한 의문이 생겼다. 마침 목사님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부활은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증거다” 하시며 말씀을 찾아 주는데 헉 소리가 나왔다.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성경과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내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3년간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이 수많은 기적을 보고도 죽음 앞에서 도망을 갔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180도 바뀌어 순교한 까닭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기 때문이 확실했다. ‘예수님이 실존 인물이고 부활이 사실이구나! 그럼 지금도 살아 계신 거잖아!’ 역사에 그 사실이 기록된 것을 보고 소름이 쫙 돋았다. 부활도 성경 말씀도 모두 사실이었고 천국과 지옥도 실제였다. 그때,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이유가 한눈에 보이며 바로 굴복하며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내가 주인 되어 살아온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때부터 전도의 열정이 불타올랐다. 집이 버스 종점 부근에 있어서 버스를 타면 마지막엔 버스 기사와 둘이 남는 경우가 많다. 나는 자리를 기사님 뒷자리로 옮겨 내릴 때까지 복음을 전했고, 학교에선 하루에 친구들 서너명씩 전도했다. 마침내 학교에 작은 교회까지 세워져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더욱이 오랜 기도 응답으로 우리 교회에 다니는 선생님 한 분을 보내 주셔서 기독교 동아리가 생기고 동아리 교실까지 마련됐다.
고3이 되어도 대학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부모님이 원하고 직업은 가져야 하기에 막연하게 진학을 생각했는데 담임선생님이 다른 지역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문제로 다음 날 새벽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그곳에서 주를 예배하리라. 누구도 증거하지 않는 그곳에서 나 주를 증거하리라’는 찬양 가사가 떠올랐다.
그때 하나님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회사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가 적다는 마음을 주셔서 다음 날 바로 면접시험장에 갔다. 면접관이 왜 지원했냐고 물었다. 마침 최근 교회에서 많이 들었던 ‘공동체에 틈을 메우는 자가 돼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회사의 틈을 메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고 다음 날 바로 합격했다.
회사에서는 신입사원 교육 후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것과 우주복 같은 특수복을 입고 컴퓨터 작업과 검사까지 하는 일 두 곳에 근무해 보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친구들은 고민 없이 사무실을 택했지만 나는 이곳에 온 이유가 생각나면서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라인을 결정했다. 친구들은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찼다고 했지만 나를 통해 예수님이 드러난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뻤다.
그런데 어느 날 기숙사에서 경력이 많아 자리도 높고 연봉이 6000만원을 넘던 어느 언니의 극단적 선택 소식을 들었다. 순간, 언니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회개가 되고 마음이 아팠다. 그 일 이후 나는 누구든 얼굴만 마주치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생각에 복음을 전했다. 그러자 예수를 믿는 직원들이 하나둘 늘어나 드디어 기숙사에도 작은 교회가 세워졌다. 꾸벅꾸벅 조는 분이 있어도 즐겁게 찬양하며 복음을 나누는 시간은 정말 꿈만 같았다.
그렇게 5년을 근무하고 퇴사해 원래 살던 춘천으로 이사하고 아이도 낳았다. 50일이 막 지난 아기를 기르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는 날마다 깊어진다. 삶 속에서 가끔 넘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새 힘을 얻는다. 아무 생각 없던 동네 바보를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는 멋진 삶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김은정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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