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이주민 처지에 관심 두고 어울리려 노력했으면”
러시아 태생 고려인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해 온 김미하일(10)군은 학교를 배경으로 그린 자신의 모습을 손과 발 없이 커다란 상자에 갇힌 존재로 묘사했다. 집에서,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해야 하는 낯선 환경의 답답함을 호소하고 싶은 듯했다.
국내 이주 러시아인을 상대로 목회하던 형진성(56) 순복음CIS선교교회 목사가 사역의 의미를 찾게 된 계기가 된 사연이다.
지난 6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의 순복음CIS선교교회 산하 레오센터에서 만난 형 목사는 “김미하일 학생은 이후 레오센터에서 진행한 한국어 교육과 수학 지문 이해하기 등의 수업을 거쳤고,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선 2년 연속 1등도 차지했다”며 “나중엔 자신을 손과 발이 있고, 상자 밖으로도 나온 모습의 그림을 그렸다”며 웃었다.
형 목사는 1995년부터 25년 가까이 러시아에서 사역한 선교사 출신 목회자다. 러시아 사하순복음교회와 하바롭스크순복음교회를 맡아 목회했고, 2015년 귀임한 후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FMTC훈련원감과 다문화센터장 등을 지냈다. 2019년 안산에 지금의 교회를 세우고 러시아어권 이주민들과 자녀들에게 영적인 필요를 공급해왔다. 같은 해 방과후학교인 레오센터를 세우고 러시아 이주민 자녀들이 낯선 타지인 한국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어 교육 등을 실시해왔다.
레오센터는 2016년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Love Each Other)”(요 15:12)의 영문 앞글자(LEO·레오)에서 따왔다. 형 목사는 “러시아에 살며 몸소 겪은 교육이나 비자, 의료 문제의 어려움을 거꾸로 한국에서 똑같이 겪는 러시아인과 고려인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형 목사는 한때 사역을 내려놓고 은퇴할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러시아 선교를 마무리 지을 때쯤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내가 깨끗하다”는 사도행전 말씀을 응답받고 은퇴를 준비했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무릎 수술을 받게 하셨고, 자연스레 국내 거주 러시아 이주민의 어려움을 보여주시며 다시 사역의 길로 이끄셨다. 처음에는 이주민 자녀들과 함께 캠핑도 하고 지방 여러 도시를 다니며 농활도 체험하게 하는 센터를 구상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본 아이들의 학습 수준은 심각했고 그렇게 교육 사역에 뛰어든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형 목사는 레오센터에 매일 드나드는 러시아 태생의 고려인 초·중학생 60여명을 돌보며 미래를 꿈꾼다. 그는 “레오는 작은 새끼 사자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며 “미래 주역이 될 인재를 키운다는 목표 아래 한국인이든 이주민이든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됨을 꿈꾼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북한 새터민 등이 모두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된 통일세대를 준비하는 것이 목표”라며 “오는 7월 이들이 강화도에서 서로 만나는 연합 사역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형 목사는 서두르려 하지 않는다. 그가 러시아 선교사로 살면서 갖게 된 목회철학이 있다면 바로 ‘오래 참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현지인을 보며 좌절도 많이 한 그였다. 한 번은 2004년 무렵 지인과 함께 러시아의 외딴 시골 교회를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한 성도가 그에게 그림 성경책을 보여줬다. 책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형 목사는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좌절하던 제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기다리심이었다”며 “마치 하나님이 ‘네가 여기서 한 사역이 다 없어진 것 같아도 네가 뿌린 씨앗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그런 그가 아이들과 교회 성도들에게 강조하는 신앙도 하나님의 사랑과 ‘오래 참음’이다.
형 목사는 “이주민들은 언어 스트레스가 상당히 커서 때론 그런 스트레스가 가족에게 비수로 향하는 경우도 많고, 아이들도 비교적 이른 나이에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그들에게 가족을 향한 사랑, 오래 참음과 인내를 바탕으로 한 신앙을 심어주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이주민 가정에 가져야 할 시각은 어떠해야 할까.
형 목사는 그들을 분리해서 생각하기보다는 곁을 내어달라고 당부했다. 형 목사는 “학교에서도 정부나 사회에서도 항상 한국인과 이주민을 분리해서 생각하려 한다”며 “한국교회 성도들도 물품 지원 등에만 그칠 뿐 옆자리를 쉽게 내어주려 하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본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국내 거주 이주민과 외국인이 250만명에 이른다고 하던데 선교사 파송이 점점 줄어드는 한국으로 하나님이 오히려 그들을 보내신 것은 아닌가 한다”며 “이주민들의 입장과 처지에 관심을 두고 함께 어울리려 노력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형 목사에게 현 사역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한국으로 이주한 고려인과 러시아인 자녀들은 이중언어와 이중문화를 경험한 세대다”며 “이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이들과 남한의 아이들, 북한을 떠나온 새터민 아이들까지 복음과 예수님의 사랑의 용광로 속에서 함께 어우러진다면 ‘민족의 대통합’은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안산= 임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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